미야자키 하야오 출발점 1979∼1996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황의웅 옮김, 박인하 감수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무엇이 그에게 열광하게 했을까? 처음에 본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나? 아니, 미야자키 하야오란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방영해 준 "미래소년 코난"부터였을까?

 

어른이 되어, 무언가 생각할 수 있고,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야 보게 된 애니메이션, 아이들이 보는 장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어른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작품은 아무래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인 듯하다.

 

이 작품으로 하야오도 자신의 스튜디오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을테고.

 

이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도 역시 '나우시카'다. 그가 나우시카에 대해서 보게 되고, 또 영화로 만들게 되고, 만화로도 그리게 된 일들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는데...

 

단지 나우시카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이웃집 토토로"에 얽힌 이야기도 많고.

 

무엇보다도 그의 애니메이션 역사에 대한 자료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인 듯하다. 그러니까 어떤 작품이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빠져들게 했는지 찾기보다는 그의 작품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그가 어떤 식으로 작품활동을 해왔는지를,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록들을 통해서 읽는 사람이 스스로 확인해가도록 하는 방법을 이 책은 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이거다라고 단순하고 명료하게 해석이 되지 않는다는 점, 그에게 계속 작품의 주제를 물어도 속 시원히 대답해주지 않는 모습이 이 책에 나와 있고, 그 자신도 무엇이다라고 정하고 작품 활동을 했다기보다는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그것이 자연스레 이루어졌다고 하고 있기에 결국 작품에 의미를 채우는 일은 우리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500여쪽의 방대한 책이다. 그런 분량 속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했던 대담들과 작품 기획서, 또 어떤 작품을 보고 난 뒤의 느낌을 쓴 글 등 정말로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다양한 글들이 나와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1979년부터 1996년까지의 활동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래서 미야자키는 이렇다라고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기보다는, 그의 글들을 직접 읽고 그를 알아가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한 생각 두 가지.

 

하나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이들에 대해서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 '인간은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는, 그런 사회에서 그나마 가능한 것은 어쩌면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하고, 시사회에서 아이들이 좋아했을 때 그도 기뻐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품, 그것은 거짓이지만 진실인 작품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다. 그는 대놓고 이야기한다. 그의 애니메이션은 거짓이라고. 거짓인데, 있을 수 있는 거짓, 영화 속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거짓.

 

작품을 만들 때 작품이 현실성을 띠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주변의 풀들도 하늘도, 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또 걷는 모습, 뛰는 모습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이기도 하다. 여기에 덧붙이면 3살 이전의 아이들이 "이웃집 토토로"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그의 태도. 세 살 이전의 아이들은 자신의 몸으로 움직이면서 촉각을 최대한 활용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그런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여주고 움직이지 못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이 나이 때의 아이들은 직접 손으로 만지고, 맛보고 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우리들은 어떤지, 반성하게 하는 말이고... 이런 단계를 넘으면 이제 아이들은 시각을 활용하는 영화를 봐도 된다고. 그 때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수 있는 영화. "이웃집 토토로" 같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점에서 그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었고, 그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영화를 보고나서 감통을 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또 하나는 일제 시대 김동인이 한 주장. 어느 글인지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말은 그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비교하면서 자신은 '톨스토이'가 좋지 '도스토예프스키'는 싫다고 한 점. 아니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가로서 실패했다고 한 점인데... 

 

이유가 톨스토이는 신의 입장에 서서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을 자신이 조정하면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에 자신이 끌려다니고 말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책을 읽다보니 미야자키 하야오는 톨스토이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 쪽에 가깝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그는 작품의 전체적인 구상을 다한 다음에 작품을 만들지 않고 직관적으로 생각이 떠오르면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인물들이 이끄는 대로 나아간다고 하니까 말이다.

 

따라서 그에게 어떤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습니까? 이 작품의 주제는 무엇입니까?란 질문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만화로 완결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그래서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작품에 나타나는 주제의식이나 의미 역시 우리가 작품을 보면서, 읽으면서 스스로 찾아나가야지 작가에게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사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다양하게 해석이 될 수 있고,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으며 이 다양함이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방대하다. 그러나 재미있다. 그의 작품을 어느 정도 본 사람이라면 그 작품을 떠올리면서 이 책을 읽을 수 있기에 작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떠올릴 수도 있고, 또 그 작품에 얽힌 이야기, 그를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생각들도 다시 할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으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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