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유대인, 몸 - 「변신」과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3
최윤영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몸과 정신. 둘로 보느냐 하나로 보느냐 논쟁이 많은데... 이런 논쟁을 떠나 인간은 몸과 정신, 둘 다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니 여기서는 구분을 하지 말자.

 

난해하다는 카프카의 소설을 '몸'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는 책이다. 카프카의 많은(?) 작품 중에 "변신"과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두 작품을 중심으로 카프카가 바라본 '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몸'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몸'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은 서양에서는 '유대인'이라는 특징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몸'으로 차별을 받았고, 이들이 이런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 서구화되려고 노력을 하는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유대인'이라는 차별성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는데, 이것이 나중에 유대인학살이라는 비극으로 나타나게 된다.

 

'몸'으로 나타나는 '차이'를 '차별'로 치환하는 모습이 지금도 종종 발견되곤 하는데, 이는 장애인에 대한, 또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아직도 인종에 대한 차별로 나타나곤 한다.

 

이런 몸에 대한 차별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와 "변신"을 들고 있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즉 진화의 모습을, 변신은 인간에서 갑충(벌레)으로 즉 퇴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둘 다 행복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몸"이 다름이 "차별"로 귀결됨을 이 소설들이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유대인이 서구인에 동화되려고 했지만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잃고서도 그들과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없었던 모습을, 그들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다른 방면에선 자유를 잃고, 또한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으며(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서구화되지 못하고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동구유대인들의 모습은 서구인들에게 또는 서구화되려는 유대인들에게 혐오감, 공포감을 주어 사라져야 할 존재일 뿐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는(변신) 것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문학의 다의성에서 이렇게도 해석이 될 수 있고, 이런 해석이 타당성을 얻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카프카 자신도 유대인이며, 그는 서구화된 유대인에 속하지만 나중에 유대의 전통을 지키는 동구유대인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가지 못하게 되니 말이다.

 

'몸'으로 표현한 이 소설들을 당시 시대현실에 비춰보면 유대인의 모습으로 해석이 될 수도 있지만, 자유 또는 실존에 대한 인간 보편적인 모습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고,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하려고 하지만 결국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카프카 자신의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몸"의 "차이"가 "차별"로 나타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도록 해준다는 기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작품이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이 되고, 우리에게 다양한 관점으로 다가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카프카의 소설에 들어 있는 풍부한 요소 중 '몸'에 관해 천착한 이 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