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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단편전집) ㅣ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199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카프카의 작품을 다시 읽다.
지금껏 읽은 작품이라고는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책을 찾아보니 세계 도서전을 서울에서 했을 때 그 때 할인된 가격으로 산 잠언집과 변신만이 있었을 뿐.
한데 그의 단편집을 읽으면서 많은 작품들이 유명해질 수 있겠단 생각을 했고, 아니 많은 작품이 유명한데, 그것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구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기억에 남는 작품만 하더라도, 유형지에서,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마을 선생, 굴이 있다. 나머지 작품들은 소품이라고 할 수 있고, 어떤 작품은 몇 쪽씩 사라져 있으며, 미완성의 작품들도 많이 있는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카프카란 사람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세 가지 정도가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는데, 우선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읽으면서는 그 작품의 의미라든가, 여기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하는 것보다는, 먼저 추송웅이라는 사람이 떠올랐으니. 그가 "빨간 피터의 고백"이라는 일인극을 열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데, 워낙 언론에서 많이 다뤄줘서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다.
두 작품을 연결짓지 못했는데,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에서 원숭이의 이름이 바로 빨간 피터라는 사실을 알고는 어라, 이런, 하는 생각이 들어 검색을 해보니 두 작품이 같은 거였다. 그만큼 카프카가 우리게에 깊숙히 다가와 있었다는 얘기다. 이 문화적인 결핍. 부끄러움.
두 번째는 에셔의 그림이 생각이 났다는 것. 아마도 '법 앞에서'와 '황제의 칙명'을 읽을 때였을텐데, 에셔의 그림 중에서 분명 밑으로 흐르는 것 같은데, 따라가보면 다시 위로 올라와, 그 길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인 그림이 생각났다. 그는 작품에서 우리 인간의 운명을,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도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얘기하고 있지는 않는지...
일종의 뫼비우스의 띠. 안으로 돌고 있었는데 돌다보니 어느덧 밖에 있게 되고, 밖으로 돌고 있었는데 어느덧 안에 있게 되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어지는 세상.
우리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무자르듯이 안팎을 나눌 수 없음을, 세상에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음을 이 작품들이 말해주고 있단 생각.
"굴"이란 작품에서 이거 혹시 카프카 자신의 문학에 대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 아냐란 생각을 했다는 것이 세 번째 든 생각이다.
자신이 열정을 다해 굴을 파고, 그 굴 속에 광장까지 마련해 놓고 안심을 하고 즐거워하지만, 곧 불만족함을 느끼고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지만, 또한 만족하지 못하고, 이 굴에 다가오는 다른 소리들에도 민감함을 느끼는 자신, 이것은 바로 자신의 인생을 문학에 걸었지만, 늘 만족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한 카프카의 삶을 자신이 "굴"에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고전이 된 그의 작품들이고, 많은 해석이 이루어졌기에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석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의 작품을 읽으며 무엇을 느끼게 되었는가, 내 삶에 무엇인가를 더 덧붙였는가를 생각하면 된다.
최소한 우리네 인생은 단순하지 않으니, 그의 작품을 통해서 삶의 복잡성, 환상성을 생각하고, 그러한 삶을 영위해가는 나를 조금은 떨어져서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카프카 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