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전기 - 세계 사랑을 위하여
엘리자베스 영 브륄 지음, 홍원표 옮김 / 인간사랑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아렌트의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온 지도 꽤 오래되었고, 그의 거의 모든 저서가 번역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물론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있다. 그러나 그의 주요 저작들은 이미 다 번역되었다고 봐야 한다.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정신의 삶과 같은 책들을 우리는 한글로 읽을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아렌트는 영어보다도 독일어로 사유하고, 독일어로 글을 썼다고 봐야 하는데, 그의 사상들이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이 될 때도 많은 과정을 거쳤을텐데, 이 저작들이 다시 한글로 번역이 될 때 우리는 아렌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나 하는 의문.

 

워낙 고대 그리스 사상부터 로마, 그리고 중세, 또 칸트, 헤겔에 맑스에 이르기까지 사상의 편력이 다양한 사람이라서 어느 한 면으로 아렌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인데, 우리나라 학문 풍토에서 이들 서양철학자들을 전면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서양철학에 서양정치사상사까지 훑은 학자는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공부가 아니라 그 정도는 공부해두어야 아렌트 사상의 핵심을 이해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하여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이는 읽는 나 자신의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에, 한글로 된 책을 읽으면서도 글자는 한글이되, 그 글자들이 모여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렌트 전기도 마찬가지다. 전기문이라서 쉽게 생각하고 덤벼든 것이 우선 잘못이었다. 우리는 전기문을 학생들에게 권할 정도로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하지 않나. 그냥 그 사람의 일생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접어든 이 책은 우선 분량에서부터 주눅들게 했다. 아니 무슨 책이 이렇게 두꺼워.

 

여기에 만만치 않은 가격. 이렇게 비싼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책에 매겨진 값만큼은 읽고서 남겨야 하지 않나 하는 부담감. 전기문을 집어들었는데, 가격과 분량에서 우선 부담을 지니고 들어갔으니...

 

내용도 만만치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 읽기가 힘들다. 이건 전기문이 아니다. 굳이 전기문이라고 한다면 출생에서 죽음까지 다루었다는, 전기문의 시간적 형식을 갖추었다는 점에서만 전기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기문 중에 평전이라고 하면 된다.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는 전기문.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평전과 또 전기문과 자서전과 다르게 다가온다. 아렌트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일생에 대해 알기 위해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그것은 실수다. 곧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망설이게 된다. 끝까지 읽을 것인가, 중간에 그만둘 것인가?

 

전기문이라고 하기보다는 아렌트 사상 해설서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이 전기문 자체가 아렌트 사상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고, 아렌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러한 사상을 지니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렌트 사상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나온다. 따라서 아렌트의 책을 미리 읽지 않았다면 이해하기가 힘들다. 아니, 읽었다고 하더라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것은 아렌트 자신의 해설도 아니고, 아렌트의 책을 읽은 우리들의 해설도 아니고, 이 전기문을 쓴 영-브륄의 해설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읽으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해내었다는 마음. 그런 마음이 든다. 정치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은 도전해볼 만한 책이다.

 

나는 여기서 아렌트의 삶이 사회 전반의 문제에서 인간의 문제, 그리고 사유의 문제로 계속 더욱 정교하게 발전되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직접 자신이 겪었던 무시무시한 세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나타난다면, 그 세계에서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인간의 조건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다면 세계속의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이 정신의 삶. 즉 사유-의지-판단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아렌트는 결국 무국적자였다는 생각. 무국적자였기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관찰하는 사람에 가까웠고, 관찰하는 사람이었기에, 사유-의지-판단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런 고민이 결실을 맺었으면 우리가 그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기문이 아니라, 철학사상서를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이 두꺼운 책은, 끊임없이 우리의 머리를 괴롭힌다. 제발 생각 좀 하라고. 그냥 따라 읽지 말라고. 네 생각을 정립하면서 따라오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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