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시대 -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제자백가의 귀환 1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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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전환의 법칙이라고 하던가. 물이 끓어오르다가 일정한 온도에 이르면 자신의 존재를 다른 존재로 바꿔버리는 현상, 그리고 쌓이고 쌓인 지식들이 어느 한 순간부터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현상.

 

일정한 양이 되지 않으면 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는 운동선수들이 처음에 기본기를 충실히 익히는 자세와 같다. 일류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기가 철저한 상태에서, 그 기본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방법을 지녀야 한다. 이도 역시 양질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양이 충족되지 않으면 질적인 저서가 나올 수가 없다. 공부가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제는 내 안에만 쌓아놓지 않고,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한다. 내 공부를 남과 함께 공유하게 된다. 이도 역시 양질전환이다.

 

최근 강신주는 많은 책들을 내놓고 있다. 자신의 안으로 쌓았던 공부를 이제는 남들과 공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반갑다. 그 많은 지식을, 생각을 자신만 지니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번에 강신주가 내놓은 책은 무려 12권으로 기획되어 있는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다. 춘추전국시대, 그 혼란한 시기를 온몸으로 감당해나갔던 사람들이, 혼탁한 세상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 그것이 바로 제자백가다.

 

여기서 우리는 김춘수의 꽃이란 시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전문

 

아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이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라는 구절이 주목을 한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말이지만, 우리는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그 많은 학자들을 제자백가라는 이름으로, 또는 유가, 묵가, 도가, 법가라는 이름으로 불렀을 때 그들 고유의 사상을 놓칠 수 있다.

 

즉 우리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의 고유성은 이름이라는 형식에 귀속되어 버리고 만다. 이를 '꽃이 되었다'고 이 시에서 표현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의미없는 존재를 나와의 관계를 통해서 의미있는 존재로 바꾸는 모습, 이것이 김춘수의 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언어는 존재를 의미있는 존재로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그 존재를 의미에 구속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사상사의 측면에서 보면 이름을 지어 규정하는 순간, 고유성보다는 보편성이 더 확연하게 다가오게 된다. 그래서 강신주의 말처럼 같은 유가라도 공자와 맹자와 순자는 다른데, 이들을 하나의 개념인 유가로 묶었을 경우 우리는 차이점보다는 동일성에 더 주목하게 되고 만다. 이것이 제자백가를 다루는데 있어서 우리가 지니는 커다란 위험성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유가, 묵가, 법가 등은 그 시대 그 사람들이 자신들을 그러한 학파로 인식하고, 행동하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그들을 생각할 때 그 틀 내에서 생각하도록 우리를 강제하기 때문이다.

 

이 책, 철학의 시대에서 강신주가 강조하는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후대에 붙여진 이름에 얽매이지 말자. 우리는 그들이 무슨 학파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그들의 사상이 어떤 경로를 통해 나왔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고 강신주는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제자백가들 각자를 고유명사로 보고, 그들의 삶과 사상을 살피자고 한다. 그러한 작업을 2권부터 하겠다고 한다.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중 첫 번째 권인 이 책은 그래서 우리에게 제자백가를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혼탁한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 이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지금 이 세계에서 우리는 어떠한 철학을 지녀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단지 지식욕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그 시대를 극복하려는 철학을 통해, 우리 시대를 잘 살아낼 수 있는 철학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제자백가 시리즈를 읽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강신주의 책을 읽으면서 늘 느끼는 점이지만, 글이 쉽게 읽힌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읽기 쉽게 전개하는 그의 글쓰기 솜씨에 감탄을 하게 된다. 이는 오랜 동안 쌓였던 내공의 힘이 드디어 바깥으로 발현되어 그러리라 생각한다.

 

우리도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게, 지금을 중심에 놓고, 나는 어떻게 사유하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고민하면서 이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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