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인간 - 좋아하는 마음에서 더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정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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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본다. '다른 노선이나 교통수단으로 갈아탐.'이라고 나와 있다. 쉽게 말하면 갈아탄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환승'이란 말이 긍정적으로 쓰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쓰일 때가 있다. 


'환승 연애'라고 할 때. 상대를 갈아타는 연애라고 부정적인 의미로 쓴다. 상대를 비난할 때 이렇게 '환승'이라는 말을 쓴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대사가 있다고 한다. 이 대사를 사랑이라는 말과 연결시키는 사람들에겐 '환승 연애'란 긍정적일 수가 없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우리 사랑 변치 말자고 맹세했지만 변했다는 내용의 가사도 있지 않은가. 영화에서도 사랑은 변하지 않았는가. 이 영화에 또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말도 있다고 하니. 사랑은 불변하지 않는다. 변화한다. 다만, 그때 사랑했던 때의 감정, 그 사랑만은 진실한 사랑이었음을 기억하면 되지 않을까. 즉 사랑에서 사랑으로, 대상은 변하지만 사랑은 계속 존재한다. 마치 우리들의 삶처럼.


그러니 '환승 연애'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상대를 이용하기 위해서 했던 연애라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과연 그런 이용을 사랑이라고, 연애라고 할 수 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사랑을 잠시 제쳐두고, 대중교통을 생각해 보자. 대중교통에서 '환승'은 꼭 필요하다. '환승'이 없다면 목적지까지 더 힘들게 가야 한다. 환승은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번에 죽 가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환승을 해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삶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많은 환승을 한다. 우리가 환승해야만 하는 역들이 있다. 그 역은 우선 태어날 때이다. 비존재에서 존재로 환승을 한다. 그것이 태어남이다. 그러다 부모 곁을 떠날 때가 있다. 이것 역시 환승이다. 이때 환승하지 않으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 다음 사람들의 관계도 그렇다. 자라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닌다. 학교라는 환승역이다. 국민의 95% 이상이 고등학교까지 다니니, 굳이 다니지 않더라도 적절한 때에 환승을 한다. 대학, 대학원도 있고, 아예 학교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역시 인생에서 환승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그러한 환승은 한두 번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환승을 한다. 그때마다 밀려서 환승을 하지는 않는다. 내가 가야할 곳을 바라보고, 그곳을 향해서 환승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삶에서 마지막 환승역은 죽음이다. 존재에서 다시 비존재로, 즉 기억의 존재로 환승을 해야 한다. 이때 환승하지 않겠다고 버틸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 인생에서도 환승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이런 환승들을 통해서 삶을 풍부하게 하고 있다.


결국 우리 삶은 수많은 환승역들을 거쳐야 한다. 그 역들이 많고 적을 수는 있지만 환승을 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한정현 수필집이라고 해야 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정현의 작품들을 다시 만날 수도 있었고, 한정현이 보면서 생각한 영화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한정현이 생각하는 환승도. 그런 환승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임을,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일임을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소설과 마찬가지로 한꺼번에 읽기에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냥 천천히 자주 오랫동안 읽고 싶었다. 환승을 해야 하는데, 환승하기 싫어서 다음 환승역까지 더 가게 되는 경우처럼, 한정현의 이 책도 그렇게 환승을 머뭇거리게 한다.


'환승 인간'을 읽고 환승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한정현 작가에서 다른 작가로 '환승'하기는 망설이는 상태. 그런 상태를 경험하게 한 책인데...


덕분에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작가가 소개하는 작품 중에서 읽지 않은 작품들 찾아서 읽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이것이 바로 '환승'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


작가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글도 있고, 이 책에서 작가는 소설은 진실이고, 이 수필에서는 진실이 아닌 것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진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수필은 사실이니 그 점을 명심하면 되고.


여러 사실들을 허구와 섞어서 진실된 세계를 창조해 낸 것이 소설이라고 보면, 소설은 허구의 세계이자 진실의 세계이다. 그러니 작가가 살아오면서 자신이 추구했던 것들을 진실되게 형상화한 세계가 바로 소설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소설은 작가의 말대로 진실의 세계일 테고, 이 책은 수필집이니 진실을 추적하는 사실들의 세계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다양한 경험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그런 경험들을 읽은 소설과 비교할 수도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품을 쓴 작가가 이야기하는 다른 작품들을 만날 기회를 줘서도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나에게 다른 작가, 다른 작품들로 넘어갈 수 있는 '환승역'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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