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그린 사람 -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18인의 이야기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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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인터뷰집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해주는 책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을 인터뷰할까?


그 대상에서 인터뷰 하는 사람의 관점이 드러난다. 그래서 은유는 '인터뷰는 삶과 삶의 합작품이(299쪽)'다고 말한다.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한다. 또다른 듣는 사람에게. 그렇다면 어떻게 들려주어야 할까? 어떻게 들어야 할까?


조지아 오키프의 말을 인용한다. '내 눈에 보이는 걸 그리련다. 그 꽃이 나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련다. 엄청나게 크게 그려 그 꽃 한 송이를 보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리면 모두가 놀랄 것이다.'(7쪽) 


이 말에 이어 자신의 인터뷰가 어찌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나는 인터뷰가 사람의 크기를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혹은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워서 사람을 보지 못한다. 세상이 축소해서 못 보고 지나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좋은 인터뷰는 안 보이던 사람을 보이게 하고 잘 보이던 사람을 낯설게 하는 것 같다.' (7쪽)


이렇게 이 책에서는 은유가 만난 18명이 크게 그려져 있다.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비록 분량은 몇 쪽씩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지만, 이들의 인터뷰 내용이 그 몇 쪽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인터뷰 내용은 엄청 크다. 커서 안 볼 수가 없다. 자연스레 은유가 들은 말에 우리 역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분야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 그렇게 특별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 특별하지 않음이 오히려 더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는 사람, 인터뷰어. 인터뷰이는 말하는 사람이지만, 사실 그들을 크게 그릴 수 있는 이유는 이미 그들이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에서 들여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듣고 그것을 자신 안에 가두지 않고 남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은유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이렇게 먼저 듣는 사람이다. 인터뷰어보다 먼저 듣는 사람이 되었던 사람들. 그들이 말을 한다.


그 말을 인터뷰어가 듣고 우리에게 전달한다. 자신이 잘 듣고, 자신의 말과 함께 전달하면 우리는 다시 듣는다. 우리는 이중의 목소리를 듣는다. 인터뷰어의 목소리와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그들이 하는 말을 동시에 듣는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크게 그렸기에 인터뷰집에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다.


이렇게 그 소리들을 들으면서 자신의 소리를 덧붙인다. 자신도 듣는 사람이 된다. 듣고 말을 한다. 결국 인터뷰집을 읽는다는 말은 세 목소리가 합쳐진, 은유의 말대로 하면 삶과 삶의 합작품을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집을 읽은 다음에는 읽기 전과 같을 수가 없다. 이미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없던 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과는 다른 사람, 행동이 확 변하지는 않더라도 바뀌어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18명의 인터뷰이들도 듣는 사람이었고, 이들은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듣고 말하는 사람인 은유의 책을 읽은 우리도 듣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인터뷰집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결국 연결이다. 사람과 사람, 삶과 삶이 연결되어 사는 사회임을 명심하게 한다.


이 책에 나온 사람들 기존에 책을 읽었거나 해서 한번쯤은 들어본 적도 있지만 생소한 사람들도 있다. 이 책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크게 그린 사람, 그래, 안 보이던 것을 보이게 했으니 안 들리던 것이 들리는 경험을 하게 만든 책이다.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글을 맺는다. 누군가는 또 그들과 연결이 될 것이므로.


홍은전(인권기록활동가), 조기현(청년 예술가), 원도(과학수사대 경찰), 김용현(자연주의자), 임현주(아나운서), 김미숙(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의 엄마), 시와(가수), 김중미(소설가), 이영문(국립정신건강센터장), 김혜진(소설가), 민금채(지구인컴퍼니 대표), 신영전(한양대 의대 교수), 김진숙(민주노총 부신지역본부 지도위원), 수신지(만화가), 김혜정(한국성폭력상담소장), 박선민(국회의원 보좌관), 김도현(청년 노동자 고 김태규의 누나), 김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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