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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평점 :
소설은 개인적인 체험을 보편적인 경험으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한 소설이 오랫동안 읽힌다. 소설을 읽으면서 작중 인물이 겪는 개인적인 체험이 자신의 삶 어느 부분과 일치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즉 개인적인 체험이 보편적인 경험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소설가의 일이다. 오에겐자부로의 이 작품도 그렇다.
작가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이 작중 인물인 버드가 겪은 일들이 작가 오에겐자부로가 겪은 일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오에겐자부로는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작중 인물 버드로 하여금 소설 속에서 다시 개인적인 체험을 하게 하지만, 그럼으로써 독자들에게 보편적인 경험을 안겨준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아이가 정상이 아니다. 수술에 성공해도 정상적으로(?) 살 수가 있는지 의문이다.
소설은 여기서 시작한다. 그리고 주인공 버드는 아이를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아이로부터 도피하고 싶다. 아이가 차라리 죽었으면 한다. 아이가 자신에게 준 비극을 받아들을 수가 없다. 그는 대학교 때 친구 히미코에게로 도피한다.
히미코와 함께 지내며 아이를 잊으려고 한다. 아니, 아이를 없애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어느 순간, 그것은 도피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이 도피의 끝은 자신의 망가진 삶뿐이라는 것을.
소설의 끝부분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아기 괴물에게서 도망치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는, 속임수 없는 방법은 자기 손으로 직접 목을 조르거나, 아니면 받아들여 기르는 것, 두 가지뿐이야. 애초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걸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거지." (271쪽)
이런 버드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이 삶에서 도피하고 있는지 또는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소설의 거의 끝까지 계속 도망만 치는 버드의 모습에서 고난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생각하게 된다.
불현듯 버드는 자신이 도망만 치고 있음을 깨닫는 듯이 보이는데, 이것은 그동안 그가 자신이 처한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런 과정 속에서 고민하던 그가 그 고민을 떨쳐버리는 것은 한 순간에 불과하다.
그가 술이든 히미코든 관계없이 현실을 잊으려고, 벗어나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그는 그가 처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는데... 그런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현실과 마주서는 것밖에는 없음을 알게 된다.
그가 술을 토해내는 것과 히미코와 가기로 한 아프리카 여행을 포기하는 것이 바로 그렇다. 그렇지만 그가 받아들인 현실이 결코 녹록치는 않으리라.
소설은 그가 '인내'라는 낱말을 찾아볼 작정이었다(276쪽)고 끝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쉽지 않음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버드. 그는 긴긴 방황과 도피를 끝내고 이제는 현실로 돌아왔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바로 희망과 인내다. 소설은 이렇게 희망과 인내로 끝난다. 가능성으로 끝나는 것.
버드의 며칠이 어두운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아니다. 그가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댈 때 만났던 젊은 불량배들을 대하는 모습과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는 불량배들을 대하는 모습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가 불량배들을 알아보지만 불량배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버드는 도피의 늪에서 빠져나왔던 것이다. 늪에서 빠져나왔다고 해도 그 길이 결코 평탄치는 않겠지만, 그 길을 똑바로 걸어가겠다는 버드의 의지가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버드라는 [개인적인 체험] 속 인물이 겪는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서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일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경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