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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없는 노동 - 플랫폼 자본주의의 민낯과 미세노동의 탄생
필 존스 지음, 김고명 옮김 / 롤러코스터 / 2022년 11월
평점 :
'미세노동(microwork)'이라는 말이 나온다. 마이크로(micro)를 작다는 뜻의 미세라는 말로 번역을 했는데, 주를 보면 이 용어에 대한 통일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microwork는 아직 우리 사회에 합의된 용어가 마련되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미세노동'이라고 번역한다-옮긴이. 12쪽)
그런데 미세노동이라고 번역을 해서인지 이 의미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주 작은 또는 세세한, 아니면 사소한 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아주 작은 단위로 잘라서 전체를 볼 수 없게 만든 노동이라고 해야 한다.
즉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일을 왜 하는지, 그 일이 누구에게 어떻게 필요한지, 쓰임새는 어떠한지를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동이라는 말이다. 그냥 주어진 대로 아주 간단한 일을 짧은 시간에 해내야만 하는 노동. 그것도 적절한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적은 액수의 보수만을 받을 뿐이다.
왜 이런 노동이 만연하게 되었는지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선 플랫폼 자본주의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플랫폼 기업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수많은 정보를 얻어야 한다.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사업을 운영한다.
다만 정보를 얻은 다음 그 정보들을 분류해야 한다. 이 분류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자동화, 또는 인공지능, 로봇들을 활용할 수가 있다. 자동화된 기계들이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이런 정보를 분류하고, 라벨링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확보할까? 두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잉여 인력의 양성이다. 자동화로 실직한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로 전락시킬 작업을 한다. 실직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적은 보수에도 일을 할 수밖에 없다.
플랫폼 노동은 이렇게 잉여 인력을 기반으로 운영이 된다. 미세노동 역시 잉여 인력이 없으면 유지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화, 기계화로 인해 실직한 사람들이 다시 그런 자동화, 기계화를 강화하는 일에 투입이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처지를 더욱 열악한 환경으로 몰아가는 일을 자신들이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 책에서는 잘 지적하고 있다.
'지금 가난한 피박탈자들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그들의 공동체를 겁박하기 위해, 혹은 노동 과정에서 그들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들을 부지불식간에 훈련시키고 있다. 이른바 마르크스의 생생한 악몽보다도 더 악몽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기계학습 시스템에 원료를 공급하는 것이 노동의 일차적 혹은 이차적 목적이 되는 세상이다. 따라서 미세노동은 매우 심각한 노동의 위기를 불러일으킨다고 볼 수 있다.' (128쪽)
이런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야 할까? 당연히 노동자들의 단결이 필요하다. 단결을 통한 집단 행동이 필요한데, 미세노동은 노동자들이 모일 공간과 시간을 제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상황이 더욱 안 좋아지면 이들은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들과 더불어 이런 자동화-기계화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이것을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쪽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미세노동은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일들을 최소한의 노동력을 투입하는 쪽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노동을 적게 하면서 삶의 다양한 면들을 추구하는 생활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생산성이 발달해서 사람들의 생활이 최소한의 노동으로 최대한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미세노동'이란 말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일 수 있을 것인데, 이는 바로 임금노동에서 벗어났을 때나 가능하다.
이는 사회가 임금 사회가 아닌 무임금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것이 가능할까? 저자는 희망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지만, 무임금 사회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기본소득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최소한의 생활을 기본소득이 책임져준다면 그때는 임금노동에 목숨을 걸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임금노동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는 사회에 꼭 필요한 노동을 미세노동으로 만들어 한 사람이 4시간 할 일을 4사람이 한 시간씩 또는 40 명이 6분씩 할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저자 역시 이런 노동방식을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자는 지금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보이지 않는 미세노동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들이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쪽이 아니라 더욱 나빠지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근거를 들어서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을 토대로 저자는 미세노동이 반대로 사람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쪽으로 작동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겠지만, 이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미세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단결이, 그들의 행동이 필요함도 간과하지 않는다. 이 책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우리의 편리 속에 다른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혹은 노동력 착취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사회적 전환이 필요한 때임을 주장하고 있는데... 우선은 보이지 않는 면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춰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