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시'가 과연 설 자리가 있나 싶다. 참 시적이지 않은 세상이다.


  '이전투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진흙탕에서 서로 뒹굴고 있으면서, 서로가 상대가 더럽다고 말한다.


  서로에게 묻은 진흙만 보고, 제 몸에 붙은 진흙은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싸움은 멈추지 않는데...


  자신들이 진흙탕 속에서 싸우고 있음을 깨달아야 진흙탕에서 나오려는 노력을 할 텐데, 전혀 모르고 있다.


  왜? 멈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멈춤! 여기서 자신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다. 시선을 바깥에서 안으로 돌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시 안에서 바깥을 볼 수 있게 한다.


멈출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관성의 법칙을 거스를 염두도 두지 못하고, 그냥 가는 대로만 가려고 한다. 멈추고, 성찰하고, 질문하고, 다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친다면, 진흙탕 속에서 싸울 이유가 없어질 텐데.


이렇게 해서 '시'는 요즘 세상에 필요하다. '시'는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잠시 멈춰서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시들이 좋은 시다. 신미나 시를 읽다가 '시'라는 제목을 단 시를 발견했다.


이 시에서 '멈춤'을 생각했고, 시는 곧 생명을 주는 피라는 생각, 그러나 자신의 안에 머무는 피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영양을 주는 피인 선지와 같은 피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에만 고여 있어서는 안 된다. 피는 밖으로 나와 응고되어서 다른 사람의 영양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시들은 그냥 안에만 고여 있든지, 또는 나와도 응고가 되지 않고 뿔뿔이 달아나버리고 만다.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응고되어야 하는 피, 시들. 그렇게 잠시 멈춰서 성찰을 할 수 있게 하는 시들. 하지만 세상은 '한쪽 귀가 흔들리는 냄비'와 같아서 자칫 잘못하면 넘어져 버리고 만다.


응고되기 전에 쏟아져 흩어지게 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잠시 멈추게 하는 것, 바로 시다. 이 시를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닷새면 피가 상한다고 했다


     선지피 받아온 날

     한쪽 귀가 흔들리는 냄비를 들고 가다

     눈 쌓인 마당에 자빠졌다


     돈벌레의 작은 발처럼 

     수백갈래로 퍼져서

     흰 눈을 갉아 먹는 붉은 다리들, 붉은 이빨들


     응고된다는 것은

     누군가 잰걸음을 멈추고

     문득 멈춰 선다는 것이다


     내 머릿속에 지금 고인 것은

     한사발의 붉음인데

     처음 본 붉은빛은 다리를 달고 달아났다

     뿔뿔이 흩어져 천만갈래 비슷한 붉기만 번지고 있다

   

신미나, 싱고,라고 불렀다, 창비. 2016년 초판 3쇄.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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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03-01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 저도 좋아해요^^

kinye91 2023-03-01 09:58   좋아요 0 | URL
가끔 시를 통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돼요. 이 시집도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