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자 신데렐라
리베카 솔닛 지음, 아서 래컴 그림,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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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앞에 '해방자'라는 말이 붙었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방자를 썼다고 본다.


수많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있는데 또 하나의 이야기를 보태는 이유가 뭘까? 이야기는 시대와 상황에 맞게 변형이 된다. 변형된 이야기는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다.


신데렐라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왕자에게 의존해서 잘 먹고 잘살았더라로 끝나는 이야기도 있지만, 굳이 신데렐라가 잘사는데 왕자와의 결혼이 필요할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결혼이 남녀의 동등한 결합이 아니라 한쪽에게 의존하는 결합이었던 시대와는 이야기가 달라져야 하니, 솔닛이 자신의 후대들에게 들려줄 신데렐라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신데렐라 이야기는 나이가 든 아이들보다는 좀더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보다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아니면 그보다 좀더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경우가 많다. 한글을 익히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이야기로, 한글을 익힌 아이들에게는 책을 읽게...


솔닛이 쓴 이 해방자 신데렐라는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다. 물론 들려줘도 좋다. 그렇지만 읽게 하면 그림을 볼 수 있다.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그 이야기책을 찾아 읽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림책을 좋아한다.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를 글로 읽기도 하지만, 그림을 보면서 들은 내용을 떠올리기 때문에 아이들이 읽는 책에는 삽화가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실린 그림이나 사진을 꼼꼼하게 살피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젠더 관점에서... 교과서 삽화에 대해서 다양한 비판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눈으로 본 그림, 사진들이 학생들에게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림책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림도 중요하다.


솔닛이 다시 쓰는 신데렐라 이야기에 삽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이런 점에서 당연하다. 솔닛은 고민을 하다가 아서 래컴의 그림을 보고 아, 이거다 했단다. 다른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이 점까지 생각했다는 점에서,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고 본다.


'실루엣을 이용했기 때문에 다른 이미지처럼 인종이 결정되어 있는 것처럼느껴지지 않습니다'(46쪽)

'래컴이 실루엣으로 그린 소녀의 기백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신데렐라는 누더기 옷을 입었지만 활기가 넘치고 씩씩하게 노동을 하고 진심을 다해 뛰어놉니다. 곤경에 처했지만 좌절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에 맞게 신데렐라 이야기를 하려면, 혹사와 모멸적 노동의 해결책이 왕자비가 되어 다른 사람의 노동에 기대어 일을 안 하고 사는 것일 수는 없고, 대신 존엄을 지킬 수 있으며 스스로 하고 싶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47쪽) 


이 점이다. 솔닛이 쓴 내용에 걸맞는 그림이다. 당당하다. 그리고 활기차다. 또한 특정한 인종을 연상할 수가 없다. 실루엣만 나오기 때문에... 이 점이 좋다.


그림과 마찬가지로 솔닛이 다시 쓴 신데렐라는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신데렐라는 의붓언니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다. 의붓언니들 역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왕자 역시 궁궐에만 갇혀 지내지 않는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농부처럼 일을 하기도 하고, 신데렐라와 친구가 된다.


말로 변한 쥐들(도마뱀들)도 마찬가지다. 쥐(도마뱀)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지닌 쥐들(도마뱀들)도 있지만, 자신은 계속 쥐(도마뱀)로 살겠다는 쥐(도마뱀)도 있다. 이렇게 이 이야기는 자신의 처지보다는 좋아 보이는 하나로 모두 달려가지 않는다. 신데렐라도 자신이 활동하기엔 화려한 옷은 필요없다고 말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유리구두를 들고 찾아온 왕자. 시종을 시키지 않는다. 혼자 나와 직접 사람들에게 묻는다. 묻고 묻고, 신데렐라 집에 와 언니들이 신발을 신을 때 장면이 사라지지 않는다. 


보통은 구두가 작고, 언니들 발이 커서 간신히 발을 끼워넣으려고 애쓰는 장면들이 많은데 여기서는 반대다. 구두는 크고, 언니들 발은 작다. 왜? 


'언니들의 발은 구두에 비해 너무 작았어. 종일 집에 앉아 있기만 하고 강가로 달려가거나 시장에서 장을 잔뜩 봐서 바구니에 담아 들고 오거나 하지 않으니 발이 튼튼하게 자라지를 못한 거야'(30쪽)


솔닛이 하고 싶은 말이 여기에 있다. 해방자 신데렐라라는 말을 이 표현에서 찾을 수가 있다. 활기차게 삶을 사는 일... 그런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 그것이 먼저 세상에 나와 살아가는 사람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해줘야 할 일.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노동이, 놀이가 사라진 생활이 아니라, 노동을, 놀이를 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그래야 유리구두의 당당한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바로 세상의 평화다.


'신데렐라는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이 그 전쟁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도 있게 되었어. 신데델라는 대모 요정은 아니지만 마법 능력이 없어도 해방자가 될 수 있었어. 해방자란 다른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도록 돕는 사람이야.' (39-42쪽)


이렇게 신데렐라는 자신의 해방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해방을 돕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솔닛이 다시 쓴 신데렐라 이야기다.


역시 솔닛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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