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 환상문학전집 23
크리스타 볼프 지음, 김재영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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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이아를 아는가? 들어본 사람도 있겠지만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겠다. 그렇다면 아리아드네는? 아리아드네를 모르면 아리아드네의 실 또는 끈은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을까? 이들은 신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된다.


그만큼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적다. 있어도 금방 사라지거나 악역을 맡거나 한다.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잘 알려진 오디세우스의 모험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꽤 있는데, 이 여성들은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부각시키는 역할에 그치고 만다. 그들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한다.


오디세우스와 관련 있는 여성들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우선 그의 아내 페넬로페, 마녀로 나오는 키르케, 칼립소, 또 세이렌들, 그리고 나우시카.


이 중에 오디세우스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여성이 있을까 이들은 모두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방해하거나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신화 속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자리를 비켜주게 되는데...


아르고호를 타고 모험에 나선 사람들, 그 배의 선장인 이아손. 그리고 이아손을 도와 그가 황금양털을 가지고 가게 하는 메데이아. 그렇다. 메데이아는 이 장면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아손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그와 함께 길을 떠난다.


마법이 힘을 지녔다고 나오고, 마법으로 이아손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동생을 죽이고, 왕을 죽이고, 공주를 죽이고, 심지어 자식들까지 죽인 마녀로 낙인찍힌다.


이아손 신화에서 메데이아는 악녀로, 마녀로 나온다. 그보다 악독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모가 키르케라고 하고, 마법의 힘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과연 그럴까?


이아손은 메데이가가 없었다면 황금양털을 가지고 갈 수 없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을 내지 않는다. 메데이아는 쫓겨나고, 이아손 역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왜 메데이아가 자의식이 강한, 주체적인 삶을 살려고 한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메데이아의 이야기를 이렇게 신화 속에서만 만나면, 그냥 그렇게 사악한 존재로 메데이아를 인식하고 만다. 다른 이야기는 없을까? 


이 소설이 바로 메데이아를 다른 관점에서 판단하고 썼다. 이아손과 메데이아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읽으면 그 이야기가 이 소설에서 어떻게 변형이 되었는지를 비교할 수 있다.


차이점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데... 작품은 철저하게 메데이아를 옹호하는 쪽으로, 당당한 삶의 주체로 서술하고 있다.


여성이 주체로 살아가는 모습을 참지 못하는 사회, 그 사회에 동조하는 세력들. 그런 세력들에 의해서 쫓겨나는 메데이아. 


그런 메데이아의 모습을 소설은 메데이아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이아손과 다른 인물들의 관점을 빌려서 이야기한다. 서술자로 '메데이아-이아손-아가메다-메데이아-아카마스-글라우케-로이콘-메데이아-이아손-로이콘-메데이아'가 나온다. 메데이아가 4번, 이아손이 2번, 로이콘이 2번 나온다. 이들이 서술하는 비중이 크다고 하겠는데, 당연히 주인공인 메데이아가 제일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떻게 남성들에 의해서 메데이아가 악녀로 변해가는지를 서술하기 위해,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얻기 위해 다른 인물들, 즉 메데이아에게 호감을 지닌 인물 로이콘을 2번 등장시킨다. 자신이 메데이아를 구하지는 못하지만, 메데이아를 파멸시키는 역겨운 음모에 가담하지 않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전달해주는 역할.


또 신화 속에서는 메데이아에게 살해당하는 쪽으로 나오는 글라우케 역시 메데이아에게 인정받는 처지로 나온다. 그리고 메데이아를 옹호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이런 인물들의 말을 통해서 메데이아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가 있다. 신화와는 전혀 딴판인 메데이아를 만나게 해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악녀로 또는 마녀로 낙인찍힌 여성 이야기를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려다 탄압을 받고 쫓겨난 사람의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재탄생된 이야기를 통해서 알려진 이야기의 이면을 상상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이야기의 재구성을 통해서 우리 역시 눈에 보이는 것들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소설은 메데이아 이야기의 재구성을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 또는 전해내려온 이야기의 가려진 면, 보이지 않던 면을 보아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진실은 어쩌면 감춰진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강자의 언어가 살아남지만, 강자의 언어 속에 숨겨져 있는 약자의 언어를 발견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메데이아, 악녀로만 알고 있던 인물을 여러 목소리를 통해서 다른 면이 있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라고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덧글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미로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을 퇴치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끈을 이용해 나오는 방법을 알려준 크레타 섬의 공주다. 테세우스와 결혼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와 함께 가는 도중에 섬에 버려지게 된다. 디오니소스와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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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8-07 18: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 변신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메데이야야 말로 잔혹하다는 생각 또 다시 했는데
이 소설을 먼저 읽었더라면 다른 관점에서 그녀를 볼 수도 있었겠어요...

kinye91 2022-08-07 19:25   좋아요 0 | URL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메데이아와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메데이아는 너무 달라요. 먼저 변신이야기를 읽으셨다면 이 소설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