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시들이 많다. 아마도 청소년들이 읽으면 맞아, 맞아 하면서 읽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청소년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시를 어렵게 쓰려고 하지 않고, 또 예쁘게 쓰려 하지 않았다. 그냥 청소년들의 말을 시에 그대로 가져왔다.


  모든 말이 시가 될 수 있음을, 청소년들의 고민이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시를 읽으며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만나게 되리라. 그런데 단지 청소년 시집이 청소년들에게만 읽혀야 할까?


오히려 청소년기를 거쳐온 어른들이 읽어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의 망각곡선... 끝에 위치한 청소년기를 이 시집이 다시 불러와서 기억으로 만들어놓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을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자기 생활에 적용되는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린 개구리로 살아간다. 그러면서 올챙이에게 왜 개구리처럼 행동하지 않느냐고 다그친다. 자신이 올챙이 시절에 그렇게 하지 못했으면서...


이 시집에는 이 말을 뒤집는다. 올챙이 개구리 적 생각 못한다. 그래, 올챙이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개구리 적 생활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냥 올챙이로 살아갈 뿐인데... 겨우 다리가 나오기 시작했을 뿐인데, 걷거나 뛰라고 하니, 물에서 나와 더 넓은 세상을 보라고 하니...


올챙이는 올챙이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올챙이 시절을 만끽해야 한다. 먼 미래, 개구리가 되어 살 세상을 준비하느라 올챙이가 누려야 할 것들을 놓치면 그 올챙이는 행복할까?


개구리가 올챙이에게 자꾸 개구리 적 생각하면서 살아가라고 하지 않나 하고 어른들은 수시로 자신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시집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절로 난다. 특히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시.


그래서 어쩌라고


엄마!

'올챙이 개구리 적 모른다'가 맞을까?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가 맞을까?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가 맞지. 그치?

그런데 올챙이도 개구리를 알 리가 없잖아.

'올챙이 개구리 적 모른다'도 맞잖아. 그치?


사실 엄마 심정, 나 잘 이해 안 돼.

말을 하지 않고 참았다가는 그냥 폭발할 것 같아서

"그래서 어쩌라고?" 한마디 했더니

엄마 속을 긁는다고 버럭했잖아.

나 급실망해서 아무 대답도 못 했어.


엄마가 이야기하는 거

다 억지 같고 강요 같았어.


엄마, 나 아직은 올챙인가 봐.


양영길. 궁금 바이러스, 창비교육. 2017년 초판 2쇄. 59쪽.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 그래서 개구리들은 올챙이에게 개구리처럼 말하고 행동하라고 강요한다. 자신이 올챙이 적에 과연 그랬는지 생각도 하지 않고, 망각 속에 올챙이 시절을 집어넣어 버리고.


그러나 올챙이는 개구리 시절을 모른다. 그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자신이 올챙이였을 때 개구리 시절을 몰라서 올챙이로서 말하고 행동했음을 다시 깨달아야 한다.


이 시는 그 점을 알려주고 있다. 이 땅의 어른들에게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사람이 보내는 호소다. 받아들여야 할 호소. 시인은 그러한 청소년들의 호소를 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이 전달이 잘못되지 않게 하는 일. 그건 우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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