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귀'보다는 '입'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나 하고.


  '귀'가 듣기와 이해를 대표한다면, '입'은 말하기와 표현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말하기와 표현이 있어야 듣기와 이해가 있을 수 있다고 하면, 입이 참 중요하기는 한데, 입에서 나온 말들이 과연 의도대로 귀에 도달하는지는 의문이다.


  입에서 나와 귀까지 도달하기 위해 말은 엄청난 모험을 한다. 자신의 전 존재를 건 모험일 수도 있다. 자신을 제대로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이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귀로 들어가 입을 통해 나오지 않는 한, 말은 두 존재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입에서 귀까지 가는 과정, 말에게는 엄청난 모험이다. 자신의 전존재를 건 모험.


이런 '귀'는 그래서 예전부터 중요하게 여겼다. 듣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해 왔다. 듣기를 강조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듣기가 힘들었다는 얘기가 되고, 듣기가 중요하다는 얘기도 된다.


듣기를 통해 공동체가 원활하게 유지될 수 있는데... 듣기가 망가지는 사회는 평화보다는 갈등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이상국 시 '귀를 위한 노래'가 마음에 와닿는 요즘이다. 잘 듣기 위해서...


  귀를 위한 노래


귀처럼 우스꽝스러운 것도 없다.

멀쩡한 얼굴에 괜히 바퀴처럼 붙어서 빈둥거리는 꼴이라니,

생기기를 대문짝처럼 생겨서 양쪽에 달고 다니며

원래는 머리통을 씻어내는 바람의 통로였으나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생이 저 아래 있으므로

붓다의 귀는 땅바닥까지 내려왔고

말 많은 서라벌 사람들 때문에

경문대왕의 귀는 도림사 대숲만 했다.

그는 상상력이 없다.

그러므로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고

온몸을 달고 다니는 귀도 있고

사랑의 고백을 기다리는

꽃이파리 같은 처녀들의 귀도 있다.

그러나 내 귀는 겨우 귀때기에 걸려서

겨울날 마스크를 걸어주거나

안경다리를 잡아주는 일이 고작이다.

그렇다고 그를 안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

밤낮 헛간 문짝처럼 열어놓고

떠도는 바람 소리나 들었으면 하는데……


이상국,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창비. 2021년 초판 2쇄. 58-59쪽.


수많은 말들. 넘쳐나는 말들. 그 말들이 귀에 닿아서 사람들 마음으로 들어가기까지... 열려 있는 귀도 있겠지만 닫혀 있는 귀도 있으니...


다시 지금, '귀'에 대해서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