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앰 아이 블루? ㅣ 곰곰문고 101
브루스 코빌 외 지음, 조응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11월
평점 :
인간은 패턴을 찾아내려고 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무질서에서도 특정한 질서를 찾아내고, 모양을 찾아내려고 하는 인간. 그래서 우리는 무작위로 펼쳐져 있는 별들에서도 온갖 모양을 발견한다. 별들을 이어서 궁수자리, 사자자리, 오리온자리, 카시오페이아, 북두칠성 등등 이름을 붙인다.
특정한 패턴을 발견하지 못하면 불안해 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 그래서 미지의 존재에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패턴을 만들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잘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때서야 안심하는 존재. 그런데 패턴에서 어긋난 존재가 있으면? 무시하거나, 없애려고 하거나 한다. 자신의 틀로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다름도 자신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때 적용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성소수자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반대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소수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데 있다. 성소수자는 사회에서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은 '더럽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비정상적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더럽다고? 무엇이? 깨끗함의 반대로 쓰이는 더러움이라는 말을 사람의 성정체성에 쓸 수 있는 말일까? 또한 성정체성을 정상, 비정상으로 나눌 수 있을까?
요즘은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는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들다.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기도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에게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두려움도 많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를 둔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가족 중에 성소수자가 있으면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볼까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두려워한다. 사회에서 배척받을까 봐. 사회의 패턴에서 떨어져 나오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이 성소수자에게 향한다. 그래서 성소수자는 사회는 물론이고 가족에게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거리두기를 당한다. 커밍아웃을 하든, 아웃팅을 당하든, 성소수자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된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한 상태로. 이 소설집에서도 이런 문제를 다룬 소설들이 있다.
다행히도 이 소설집에 나오는 소설들은 대부분 희망을 주는 결말을 맺고 있는데... '다름'을 말로만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받아들이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인물들을 통해서 소설을 읽으면서 '성소수자'를 받아들이는 또다른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집이 2005년에 초판본이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읽은 기억이 없다. 아마 그때에는 이런 소설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나 보다. 아님 홍보가 덜 되었던지...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더 심했을 땐데, 그럼에도 책이 출간되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우리 사회도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할 때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때 왜 읽지 못했을까? 성소수자 이야기는 나에게는 여전히 남 이야기였을까? 내 주변에서 나 성소수자야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냥 다름을 인정해야지 하면서도, 가까이 여기지 못했던 일이었다. 내 삶의 패턴에 성소수자는 들어와 있지 않았다. 좁은 분야에만 국한되어 있었던 내 삶의 패턴.
그렇다면 16년이 지나서 출판된 이 복간본에 있는 이야기들은 이미 과거에 묻힌 이야기들일까? 아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의미 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성소수자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책이 내 눈에 띤 건, 내 삶의 패턴에 성소수자들의 삶도 들어올 수 있게 많은 성소수자들 이야기를 만났고 이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을 발간하기도 한 작가가 한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차별금지법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작가의 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성소수자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글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은 성소수자만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주제를 품격과 권위를 가지고 다룰 수 있으리라 믿는 작가들, 이들이 참여한 작품이라면 모든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싶어 하는 유명 작가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제발 게이나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이야기 한 편만 써 주세요."
딱 그렇게만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동료가 그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그 결실로 얼마나 다양하고 정감 있고 멋있는 이야기들이 쏟아졌는지요. 얼마나 진실한 이야기들이! (9쪽)
오늘날 미국 어느 곳에서든 남성은 남성을 사랑할 자유가 있습니다. 심지어 결혼도 할 수 있습니다. 여성 또한 여성을 사랑하고 배우자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젠더로 정체성에 꼬리표를 붙이는 관념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과거에는 없었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청소년은 다양한 경로로 지원받고 건강한 롤 모델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쪽)
이 말이 남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도 이런 작품집이 나오고(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설로 많이 나오고 있다), 편견을 지니지 않고 이런 작품들을 읽고, 또 '자아를 찾는 청소년이 다양한 경로로 지원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목숨을 끊는 그런 사람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 사회.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 한편 한편이 다 소중하고, 또 읽으면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책 제목이 된 "앰 아이 블루?"라는 소설은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만하다.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또는 우리 옛이야기에서 차용한 소원을 들어주는 이야기를 들어서 자신의 성적 지향을 표시하는 파란색이 보이게 해달라는 소원... 이 소원을 통해서 사람들은 파란색에도 다양한 농도의 색깔이 있으며, 자신의 말과 전혀 다른 지향을 지닌 사람도 있음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웃팅되게 만든 사회... 아웃팅이지만 비장하지 않다. 오히려 웃음이 나온다. 그래서 더 좋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서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남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살지만, 그렇다고 고립되고 배제된 상태에서 살아가고만 있지는 않다는 사실. 남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잘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라는 말을 쓰지만,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다른 성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음을, 또 자신조차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잘 몰라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음을, '앰 아이 블루?'라는 소설을 통해서, 그리고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패턴을 인식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패턴을 만들고 인식하고, 아주 오래 전에는 동성애라는 사랑도 하나의 패턴이었다. 그러다 중세를 거치면서 동성애는 사랑의 패턴에서 배제되었다. 다시 세월이 흘러 근대에 들어서, 현대에 들어서 동성애는 다시 사랑의 한 패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패턴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사회에 따라서 우리의 인식에 따라서 변해간다. 변함, 이것 또한 사람이 세상을, 인간을 이해하는 패턴 아니겠는가.
'성소수자'를 다룬 소설집이지만 무겁지 않다. 칙칙하지 않다는 말이다. 가볍게,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이 점이 더 좋다. 성소수자를 다룬 소설이 꼭 비장해야 할 필요는 없다. 박상영 소설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이젠 이 소설집을 엮은 작가가 말한 것처럼 변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