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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희랍어'
한자어로 적혀 있으면 어느 나라 말인지 알기 힘들다. 사실 한자로 나라 이름을 적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오래 전이었으니...
독일을 덕국으로, 프랑스를 법국으로 불렀던 시대, 희랍은 그리스다. 그러므로 희랍어는 그리스어다. 우리와는 관계가 없을 언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코로나19로 인해서 희랍어를 조금씩 만나게 된다. 변이 바이러스들의 이름을 그리스어 알파벳의 순서대로 붙이고 있다고 하니.
이런 것을 떠나서 희랍어는 우리와 상관없는 언어다. 우리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희랍어로 읽으려고 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리스 문학을 전공하거나, 그리스에 관심을 가져 그 나라와 교류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 또는 특별한 학문적(언어적) 호기심으로 배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소설 제목이 희랍어 시간이다. 생소한 언어를 배우는 시간이 소설 제목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생소한 이야기여야 한다. 우리와는 결이 다른 사람들 이야기.
두 축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한강 소설이 보여주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술자가 교차되어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에서는 희랍어를 가르치는 강사인 남자와 희랍어를 배우는 학생인 여자가 서술자가 된다.
남자는 점차 시력을 잃어간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는 시력이 나빠지고, 안경을 쓰고도 잘 보지 못할 정도의 시력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시력을 잃을 수 있는 상태. 그는 외부로부터 오는 시각적 정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즉 외부의 세계와 어느 정도는 단절이 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닫혀간다는 의미가 된다.
여자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의식적이 아니라 어느 순간 말이 자신에게서 사라진다. 눈이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면, 말은 내면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표출하는 역할을 하는데,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는 자신의 내면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물론 글을 쓰면 되지만, 순간순간 이루어지는 대화의 장에서 글로 의사소통하기는 힘드니, 소통의 창구가 어느 정도 닫혔다고 보면 된다.
이렇듯 남자와 여자 모두 관계가 단절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런 상황이 소설 속에서는 여자의 말을 빌려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시선만큼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접촉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느꼈다. 접촉하지 않으면서 접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에 비하면 언어는 수십 배 육체적인 접촉이었다. 폐와 목구멍과 혀와 입술을 움직여, 공기를 흔들어 상대에게 날아간다. 혀가 마르고 침이 튀고 입술이 갈라진다. (55쪽)
이 표현을 보면 남자도 여자도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을 잃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둘은 모두 사회에서 접촉을 잃어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존재를 잃어가는 사람들이 희랍어라는 낯선 언어로 만나게 된다.
접촉을 잃어간다는 공통점. 그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 낯섬을 통해서 익숙함의 세계로 갈 수 있을까? 그것이 쉽지 않음을, 여자와 가장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아들과의 만남 장면에서 추측할 수가 있다.
'그녀가 붙들려고, 팔을 붙들려고, 손을 잡으려고 하자 물고기처럼 재빨리 빠져나간, 지느러미처럼 부드러운 살갗을 모른다.' (183쪽)
아들마저도 이렇게 그녀를 떠나가는데, 남자가 알 수는 없겠다. 이는 보거나 말로 듣거나 해야 하는데 여자는 남자에게 말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묘하게 한강 소설은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운을 남긴다.
제목이 희랍어 시간 아닌가. 낯선 언어를 배우는 시간. 왜 낯선 언어를 배우는가? 바로 낯섬을 통해서 자신이 겪는 일들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 아닌가. 그리고 남자 역시 자신과 비슷한 절망을 안고 사는 사람이고.
그렇기에 한강이 다른 소설들에서 절망의 끝자락에 서 있다고 하지만,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려는 인물들을 만들어냈듯이. 세상을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듯이 이 소설 역시 절망으로 어둠 속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마침내 첫 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뜬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듯이.' (191쪽)
이렇게 쓰인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그렇게 되겠다는 진한 여운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