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시대라고 한다. 또는 패스트푸드의 시대라고도 한다. 일회용이 넘치는 사회. 코로나19로 인해 일회용 사용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졌다.


  일회용 사용만큼이나 빨리빨리가 더 심해지고 있다. 배달이 많아지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참지 못한다. 더 빨리 배달해야 한다. 과속은 기본이다. 신호위반도 기본이다. 


  그러나 사고가 나면 책임은 그렇게 만든 사회에 있지 않다. 책임은 오로지 개인이 져야 한다. 개인으로 하여금 빨리빨리, 늦으면 비난을 받고, 거기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하게 하면서, 혹 사고가 나면... 참.


  그런데 이런 모습이 사랑에서도 나타난다면... 우리 심장이 너무 빨리 뛰면 사람은 살 수가 없다. 심장은 적당한 속도로 뛰어야 한다. 왜 사랑하면서 심장? 우리는 사랑의 표시로 심장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 얼굴이 달아올랐다는 표현도 있지만, 심장이 뛴다는 표현도 있지 않은가. 심장이야 당연히 뛰는데,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당신을 보면서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든지, 심장이 뛴다는 말을 하는 이유는, 사랑과 심장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심장이 울렁거린다. 심장이 뛴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심장은 마음이고, 마음이 움직이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랑에 빠지는 일, 심장이 뛰는 일이다. 권혁웅 시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 제목은 '뛰다'가 아니라 '떨다'지만.


  떨다

        - 심장3


네모난 기름통 안에서 굳은 선지를 퍼내듯

마음을 덜어 내야 할 때가 있다네

떠낸 자리에 서둘러 모여드는 물도 없이

천천히 다독이는

저 수평의 손길도 없이

떼꾼한 구멍을 들여다봐야 할 때가 있다네

각 잡은 마음이 슬며시 갖다 댄 딜도처럼

부르르 흔들릴 때가 있다네

잘못 퍼다 준 숟가락이 있었나?

풀 죽은 우거지는 누구 얼굴이었나?

양철 판에 어룽대는 신열(身熱)은

지나는 발자국 소리에도 벌건 제 몸을 

바람벽에 기댄다네


권혁웅,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민음사. 2007년. 37쪽.


사랑은 떨림이다. 이 떨림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공명해 떨린다. 몸이 떨린다. 사랑이 마음의 일이라고 하지만, 아니다. 몸이 떨린다. 마음 떨림이 몸의 떨림으로 이어진다. 바로 '마음을 덜어 내야 할 때'다.


내 마음을 덜어내야, 빈 곳이 있어야 다른 존재가 들어올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런 존재나 들어와서는 안 된다. 바로 내 마음 빈 곳에 딱 맞는 존재, 그 존재는 이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덜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각 잡은 마음이 ... 부르르 흔들릴 때가 있'고, '지나는 발자국 소리에도 벌건 제 몸을 / 바람벽에 기대'게 된다.


마음 떨림. 사랑의 울림이다. 심장이 뛴다. 심장이 떨린다. 떨림은 사랑이다. 일회용 시대에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그 마음과 함께 떨릴 수 있는 존재를 찾는 일. 그런 사랑을 하는 일.


하긴 사랑에 일회용이 어디 있는가? 모든 사랑은 이런 떨림을 받아들여 함께 떨 때 이루어지지 않나. 그 기간이 길고 짧음은 중요하지 않다. 함께 떨 수 있는 존재, 그런 사랑이니, 앞에서 언급한 일회용 사랑이라는 말은 취소하자.


사랑은 모두 떨림이고, 떨림의 시간과 상관없이 모두 소중한, 아름다운 사랑이다. 


그래도 우리나라 종처럼 길게 그 떨림이 울림이 되는 그런 사랑이면 더 좋겠다. 떨림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함께 더 길게 울리는, 떨리는 그런 사랑이면 좋겠다. 권혁웅 시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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