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


  식민지 유산을 청산해야 하는데, 해방 된 지 70년이 넘었음에도 문제가 남아 있다. 가해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그런 일본에 책임 묻기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상황.


  여기에 식민지로 인해 분단이 되었는데, 통일로 가는 길이 보이기는 커녕 오히려 더 캄캄해지고 있는 현실.


  또 식민지로 인해 세계 여러 곳으로 흩어진 우리 동포들 문제도 남아 있다. 여러 곳으로 흩어졌던 동포들 중에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또 후손들에 대한 관심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지 않나 싶다. 이동순이 쓴 이 시집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다 구 소련 땅에 남아 있던 우리 민족 사람들이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삶터를 잃고 쫓겨나는 과정이 형상화되어 있다.


일본 스파이가 될까봐 또는 일본에 협조할까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우리 민족들. 그들 중에는 강제 이주를 비판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 또 강제 이주 당해 중앙아시아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는데...


이 시집에는 그런 사람들 중에 홍범도 장군이 나온다.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임에도 강제 이주의 칼날은 그를 피해가지 않았다. 그 역시 극장의 경비원으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는데...


엄청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 간에 인류애는 살아 있음을 이 시집에서 보게도 된다.


지금의 카자흐스탄으로 이주된 사람들. 소련 당국에서는 고려인들에게 도움을 주지 말라고 했는데도, 많은 도움을 준 사람 이야기도 나온다. 


밤새도록 가족들과 빵 구워 담은 자루 / 식지 않도록 이불로 덮어 / 나귀 등에 싣고 온 / 카자흐 사내 막심 이크바로브 / 내 가족을 위해 자기 집도 냉큼 비워준 / 친형제보다 더 깊이 정든 / 카자흐 사내 / 원동에서 온 고려인에겐 / 말도 붙이지 말고 / 음식도 베풀지 말고 / 최소한의 접촉도 하지 말라던 / 당국의 지시 묵살하고 / 무엇보다도 인간의 도리 막중히 여기던 / 막심 아크바로브

('내 친구 막심' 중 일부. 96-97쪽)


그렇다. 당국과는 달리 민중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려고 한다. 자신들도 어렵게 살기 때문에 어려운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국적을 떠나서.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집단도 있다. 바로 군대라는 집단. 군인이 되면, 군복을 입는 순간 인간성, 인류애는 군복 속으로 사라진다. 오로지 명령만이 남는다. 그들에겐 명령뿐이다. 명령으로 사람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지금 미얀마에서처럼.


열차 바닥에 / 뜷어놓은 작은 구멍 / 거기 쪼그리고 앉는다는 게 / 죽기보다 싫었다 / 여자니까 / 내가 무슨 짐승인가 / ... / 여인들은 철로 옆 깔밭으로 뛰어들었다 / 하나가 뛰니 여럿이 우르르 / 한꺼번에 들어갔다 / 흰옷 입은 여인들 깔밭 사이로 보였다 / ... / 그때 돌연 총소리 탕탕 들렸따 / 탈주로 착각한 소련 병사 / 따발총 갈겨버린 것/ ('깔밭의 참변' 중. 62쪽=63쪽.)


이렇게 '깔밭의 참변'이란 시를 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군인들과, 인간적인 면을 지키려는 여인들 사이에 벌어졌던 비극이 잘 표현되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들의 존엄은 지키기 위해 참고 참았다가 깔밭(갈대밭)에 들어가 볼일을 보던 여인들.


그런 여인을 탈출하는 것으로 오인하여 총을 쏴버리는 군인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군인들이 인간성을 군복 속에 집어넣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소련 군인들의 만행은 도처에서 나온다. 그냥 사람을 죽이거나, 버려두거나 하는 모습들. 과연 인민의 조국이라고 한때 자부했던 소련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이 민중을 위한 군대라고 할 수 있는가? 소련 역시 우리나라 비극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식민지가 된 조국, 전체주의자에 의해 강제 이주 명령을 받은 힘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인간성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노력마저도 항거로 받아들여지는 현실.


그런 비극. 이 시집에는 그러한 비극이 너무도 잘 표현되어 있다. 나라를 잃는 민족이 어떤 설움을 겪는지, 지금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살아가는 고려인 3세, 4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곳에서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이 시집을 읽으면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비극이 왜 일어났던가. 도대체 이 비극에 누가 책임을 졌던가. 아직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그렇다. 책임은 끝까지 지지 않으면 언제고 책임을 다할 때까지 물어야 한다. 그것을 회피하거나 무시하거나 없는 걸로 칠 수는 없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겪은 이 비극. 이동순의 '강제이주열차'를 읽으며 다시 되새기겨 본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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