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콥스키, 나는 마야코프스키로 알고 있던 사람. 러시아 이름이 길기도 하지만, 풀어서 쓰기도 하고 붙여서 쓰기도 하니, 어떤 글을 읽었느냐에 따라 사람 이름이 약간은 달라지기도 한다.
마야콥스키 하면 러시아 미래파 시인이라는 기억만 남아 있다. 그의 시를 읽은 적도 없고. 우리나라에서 카프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용이 되기도 했다는 기억은 있는데...
중고서점에서 그의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이제는 소련도 해체되고,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는 거대한 실험을 하는 나라들이 하나둘 사라져 갔고, 그에 따라 사회주의를 주요 내용으로 삼던 문학가들도 문학사에서 하나둘 이름이 지워지기 시작했는데...
왜 마야콥스키인가? 그냥 단순히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까? 아님,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꼈을까? 사회주의 혁명을 열렬히 찬양했던 시인이 사회주의 국가가 실현되자 자살을 한다? 이런 모순된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하는 호기심.
그러다 이 선집을 읽으며 마야콥스키가 사회주의 국가 소련에서 견딜 수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선집에 실린 시 중에 그런 생각을 강하게 하는 시들이 있다. 이런 생각을 지닌 사람이 어떻게 혁명 이후 사회에서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그 시들 제목을 들면 회의광(1922년), 관료주의(1922년), 수뢰자(1926년), 관료주의자의 공장(1926년), 자아비판에 대한 비판(1928년), 아첨꾼(1928년)이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때부터 나타난 현상. 혁명의 배반. 그것은 혁명의 지속, 또는 혁명의 유지라는 이름을 걸고 나타난다. 마야콥스키는 그 점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시를 통해서.
그는 러시아 혁명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뒤로, 뒤로 복고로 가고 있다고 보았다. 그렇게 보았기에 이런 시들을 썼을 것이다.
혁명은 순식간에 전 사회를 뒤집는다. 그런데 뒤집은 다음이 문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그냥 과거를 뒤집을 뿐이다. 그러니 혁명을 이룬 사람들은 초조해 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혁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고, 자칫하면 혁명은 실패하고, 혁명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만이 혁명을 완수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아첨꾼을 낳고, 관료주의를 낳는다. 오로지 회의를 통해서 결정하려고 하는 회의광들이 생기게 되고, 자아비판이 무슨 만능인 것처럼 판치게 된다. 마야콥스키는 그 점을 보았다. 그래서 시를 통해 이렇게 변해가는 사회가 과거 사회와 어떻게 다른지를 꼬집고 있다.
혁명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는 참 힘들다. 그래서 마야콥스키가 쓴 시는 지금도 유효하다.
혁명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전 정권과 다른 정권이 집권했을 때 그들이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전철을 밟는 모습이 너무도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집권한 정당, 또 사람은 더욱 어려운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길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길에 나타날 수 잇는 장애들이 무엇인지, 마야콥스키의 시를 통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마야콥스키의 시가 지금도 유효한 것이다. 한 시대만을 대표하고, 그 시대로 끝나는 시가 아닌, 우리들 삶에서 반복되기 쉬운 점들을 시로 표현하여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선집에 실린 비록 마야콥스키와 실제로 대담한 것은 아니지만, 가상 대담이 실려 있다. 번역한 이가 여러 책을 참조해서 마야콥스키의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마야콥스키의 이름을 빌려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마지막에 나온 말.
그래서 마야콥스키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말...
'나의 유토피아는 숨 막히는 완전 사회에 대한 꿈이 아니며, 독일의 철학자 블로흐가 주장한 것처럼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지향입니다. 여기 번역된 나의 시가 지금의 한국 독자들에게는 '언젠가 그 안에 담겨 있었을 진정성과 절실함은 휘발되어버리고 단지 우스꽝스러운 기표로만 남겨진' 시대착오적인 구호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믿고 있습니다.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시도 문학도 새로운 힘과 사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