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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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지


흔히 하는 말이고,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럴 수도 있지. 이 말은 문제 삼지 말라는 말이다. 주로 힘이 있는 자들이나 그들 편을 드는 사람에게서 나오면 우리 역시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이 말이 가끔은 약한 사람, 또는 피해자 편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면 억장이 무너진다.


그런데 정말 그럴 수도 있지 또는 너도 잘못한 것 아니냐 라는 말이 너무도 흔하게 나돈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우선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쉽게 해서는 안 될 말이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 이 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 단지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용납되지 못하는 말이 아니라 범죄에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성(性)'에 관해서는 이 말을 더 해서는 안된다. 자칫 하면 이 말은 이차 가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 읽으면 불편하다. 상당히. 그런데 읽어야만 한다. 눈을 가린다고 사라지는,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없는 그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범죄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냥 심심풀이로 또는 욕망을 사이버 공간에서 표출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실제로 육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고? 정신이 죽어가고 있는데, 또 그 피해로 인해 실제로 몸이 앓고 있는데...


사이버 성폭력, 이 말도 너무 순화시킨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범죄다. 그냥 처벌받아야 할. 아직은 양형기준이 강한 처벌을 하지는 못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파탄낼 정도로 심한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으니... 


이 책이 나오기 전과 나온 다음,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성착취에 대해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아니 기대를 한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공권력이 - 정말로 힘없는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공권력이 아니라, 민중의 지팡이라는, 파수꾼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이러한 범죄로부터 지켜주는, 더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그런 공권력이었으면 하는데 - 제대로 개입했으면 한다.


이 책은 텔레그램이라는 플랫폼에서 일어났던 - 이렇게 과거형으로만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 성착취 범죄를 추적한 '불꽃'이라는 단체의 활동과 그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읽으면서 사이버 공간의 성착취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 이것이 문제가 된 이후에 언론들의 보도 행태가 흥미 위주이지, 이 문제를 근본으로부터 해결하려는 자세는 많이 부족했음도 알게 되었다.


여기에 우리나라 경찰, 검찰들의 무능함도.. 텔레그램은 수사할 수 없다라든지, 이들을 잡을 수 없다라든지,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는 모습이라든지, 경찰에 신고를 해도 내 일이 아닌 양 하는 모습이라든지.. 참으로 답답함을 느끼는 장면이 많다.


그럼에도 공권력이 살아 있으니 성착취방을 운영한 자들을 체포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아직도 근절시키지 못했다는 점, 경찰이나 검찰이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려면 점점 진화하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폭력, 성착취에 대해서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 제목을 다르게 읽으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인데, 여자가 남자를 우리라고 부르기 힘든 사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삶 자체에 위협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것도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런 위협을 느끼면서 지내야 하고, 불안감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것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무마하고 눙치려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


결국 지금은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기' 힘든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성별로 인해 어떤 성별이 또는 소수의 성적지향을 지닌 사람들이 위협에 시달려서 불안감을 늘 안고 살아가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이런 사회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성착취물을 공유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안일한 생각, 그것이 범죄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양산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럴 수도 있지가 아니라 그건 명백한 범죄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범죄로 인해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사회가 어찌 행복한 사회겠는가.


그래서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감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는 안돼라고 하면서 엄중한 처벌을 하고, 그런 일이 모방 또 재발, 확산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 중에 법안을 정비하는 것도 포함되니... 이 책은 다양한 방면에서 성범죄를 예방해야 함을 생각하게 해준다.


특히 이 책을 읽는 것이 나도 '우리'에 속한다는 연대의 표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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