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까오량 가족 대산세계문학총서 65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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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홍까오량 가족.

 

제목만으로는 낯설다. 그러나 이 소설 제목인 홍까오량이 우리말로 풀면 '홍고량 - 붉은 수수'라는 것을 알고 나면 바로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영화 '붉은 수수밭'

 

아주 오래 전에, 정말로 오래 되었나 보다, 본 영화다. 기억에 많은 장면은 남아 있지 않지만, 화면이 온통 붉은 색이었다는 것과 이들이 항일 투쟁을 했다는 것 정도는 기억이 난다. 게다가 일본군에 의해 껍질이 벗겨 죽음에 이르게 되는 장면은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는데...

 

(영화 정보를 찾아보니, 세상에 1989년에 개봉이 되었다고 한다. 햐, 정말 오래 전이구나! 붉은 수수밭 하면 두 인물만 기억에 남는다. 영화 속 인물 이름이 아니라 배우와 감독. 배우는 공리, 감독은 장예모.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 헷갈렸다. 중국 사람들 이름, 한자로 읽으면 두 글자에서 세 글자라 머리 속에 잘 들어오는데, 중국 발음으로 표기를 하면 도통, 길기도 하지만 의미가 머리 속에 안 들어오니... 서술자의 아버지인, 항일기에는 아들로 나오는 또우꽌은 한자어로 하면 두관豆官이란다.)

 

모옌의 소설이라는 것, 모옌이 중국 작가로는 노벨문학상을 탄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모옌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에게 관심이 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붉은 수수밭'의 원작이라는 점이 이 소설을 읽게 했다.

 

읽으면서 영화는 이 소설의 첫번째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소설은 첫번째 부분을 중심으로 하면서 그 사이 사이에 빈 시간과 사건을 다른 부분에서 채워주고 있다. 홍까오량 가족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서술자가 고량주를 만들어 파는 집의 자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동네에는 수수로 술을 만들어 파는 일을 주업으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홍까오량 가족 하면 지식인 계열의 집안도 아니고, 또 권세가 있는 집안도 아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아니니 도덕, 윤리, 체면에 얽매여 있지도 않다. 이들은 자신들 감정, 욕망에 충실한데,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을 옭아매려 하는 일제에 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옌 소설의 장점이라고 하면 환상적인 장면들이 나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좀더 풍요롭게 하는 미신적인 요소들, 민중적인 요소들, 또는 환상적인 요소들이 소설 속에 담겨 있다.

 

이것에 더해서 모옌 소설은 좀 수다스러운 느낌을 주는데, 이 수다스럽다는 말은 부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설을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들려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점을 여러 가지로 바꿔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 그 역할을 하기도 하겠지만, 참으로 할 말이 많은 소설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영화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1장은 '붉은 수수'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리고 사건의 전개가 영화와 비슷하다. 그래서 영화를 본 사람이면 너무도 친숙한 장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영화를 먼저 본 사람은 영화 속 장면이나 인물들이 뇌리에 각인되어 있어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영화에서 표현된 것을 넘어서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의 서술과 소설의 서술은 엄연히 다르다. 그러므로 영화는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면 소설은 많은 것을 감추고 있으니, 그 감추어진 것을 찾는 재미가 소설 읽기에서 발동될 수 있다. 영화를 보았더라도 이 부분은 그래서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2장은 '고량주'다. 과거 회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1장 사건 당시도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여러 시간이 겹쳐진다. 그럼에도 주인공 집안에서 주인공인 또우꽌의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된다. 1장에서 빠진 부분이 2장에서 채워지는 것이다.

 

3장은 '개들의 길'이다. 개들의 길. 항일을 하던 시기, 사람들의 삶이 개들의 삶과 비슷하기에 이렇게 표현했나 했더니, 개들의 길. 사람으로서 대우받지 못하는, 보통 때라면 장례를 치러 다른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했으련만 그것이 불가능하고, 또 집에서 기르던 개들이 야생 개가 되어 시체들을 먹으며 지내는 장면.

 

그야말로 참혹한 장면이다. 시체를 뜯어먹으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개들과 그를 지키려는 애들의 싸움. 이렇게 마을은 평상시의 삶을 잃어버린다. 사람도 개들도...

 

4장은 '수수 장례식'인데... 1장에서 2년 정도 경과했을 때를 기본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간은 다시 1장의 시간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시간은 자주 겹치고, 사건들은 순서대로 나오지 않고 뒤죽박죽 섞여 있다. 그 섞여 있음이 바로 중국인들이 항일의 어려운 시기를 거쳐 왔음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 민중들의 모습이 나온다. 주인공인 위잔아오와 또우꽌은 팔로군에도 국민당군에도 가입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둘을 다 불신한다. 다만, 팔로군 쪽에 좀더 마음이 가 있을 뿐이다.

 

이들은 민중에게는 또다른 억압 세력에 불과한 것이다. 소설에서 항일을 하는 가운데서도 갈등을 벌이는 팔로군과 국민당군, 그리고 이 둘에 거리를 둔 민중들을 보여주고 있다. 항일 전쟁 시기라고 해서 어느 한쪽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그렇게 민중들의 삶은 자신들의 고유한 삶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5장은 '이상한 죽음'이다. 그 시기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사건들이 표현되어 있다. 지금도 일본은 난징에서 자행한 학살을 부인한다고 한다. 그들은 그냥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 소설에서는 그러한 점을 민중의 시각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그들이 작은 향촌인 이 마을에서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짓들을 저질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장에서 5장까지 동일한 인물, 동일한 지방, 비슷한 시기가 나온다. 어느 하나를 읽으면 다음 소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모두 연결이 된다. 연작소설이라고 해도 좋고, 장편소설이라고 해도 좋다. 결코 짧지 않은 소설이지만 흥미롭게 읽힌다.

 

게다가 우리는 중국과 비슷하게 일본에게 맞서는 시기를 거쳐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어떤 동질감 같은 것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소설을 통해서 전쟁이 일으키는 비극을 알게 되니, 식민주의 정책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이러한 제국주의로 인해 인류가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이것이 소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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