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 - 교육사회학 관점
성열관 지음 / 학이시습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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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목을 보면 우리나라 학교 교실의 모습이 떠오른다. 눈을 초롱초롱 뜨고 교사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흐리멍텅한 눈으로 칠판을 바라보거나, 딴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엎드려 자는 아이들의 모습만 떠오른다.


상록수에서 영신이 일제의 탄압으로 교실에서 배울 수 있는 아이들의 인원수를 제한하자, 창문에 매달려 공부하겠다고 애를 쓰는 아이들의 모습은 더이상 없다. 어쩌면 사토 마나부의 말처럼 배움으로부터 탈주하는 아이들이 많아진 세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책임을 학생들에게 지울 수 있을까? 학생들 개인의 심리적 요인으로, 의지박약으로, 성취 의욕의 상실로 돌릴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가장 단순하고 쉬운 일이다.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효과적이기도 하다. 너희들의 의지 문제야! 하려고만 해봐, 다 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하기는 쉽다. 말하기는 쉽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이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에 책임을 묻는다. 교육에 관계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존 사회를 담당하고 있는 기성세대 모두에게 책임을 묻는다.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은 당신들 책임이야 라고.


이 책의 맨 마지막에 이런 말이 있다.


교육은 한 학생도 소외됨 없이 모든 학생들이 잘 배울 권리를 보장하는 공공의 책임이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소외되는 학생들이 있다면 그것은 인권이나 교육권 측면에서 큰 훼손이다. 그러므로 학생이 수업 시간에 소외는 것은 전적으로 공교육의 책임이라 볼 수 있다. 이에 수업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의식적 회복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단지 활성화된 수업에 만족하는 수준을 넘어, 수업 소외를 인권, 사회정의, 인정, 권리 옹호의 문제로 인식하고 수업 자체가 평등의 잠재적 교육과정이 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 언제나 수업을 바꾸려는 행위는 변별 시스템으로서 학교를 바라보는 사회와 대결을 벌이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358쪽)


책임이 학생에게 있지 않고 공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 아니 사회를 이끌어간다고 하는 기성세대들에게 있음을 명확히 한 것에 이 책의 장점이 있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자는 것은 기존의 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예측불가능의 세계에서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학습량이나 학업 목표때문에 자연스레 소외된다는 것이다.


그런 소외를 막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는데... 왜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자는가에 대해서 번스타인의 이론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는 앞부분에 이어,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노력해온 우리나라 교육 현장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교육이 이런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번스타인의 이론에서 학업에 대한 질서와 생활에 대한 질서로 학교가 운영된다고 하는데, 둘 다 잘하는 학생을 '성실'의 분류 항목에, 학업 성취는 어느 정도 이루지만 생활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분리'에, 생활 질서에는 적응하지만 학업 성취에는 부족한 학생을 '간극'에, 그리고 둘 다 안 되는 학생을 '소외'라는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런 분류의 장점은 수업을 재조직할 때 고려할 사항을 찾기 쉽다는 것이다.(그만큼 분류는 문제를 단순하게 할 수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그래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한다. 물론 이런 단순화는 문제의 모든 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왜 학생들이 생활 질서에, 또는 학업 성취에 문제를 보일까를 생각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가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책임을 학생에게 묻게 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번스타인 이론이 지닌 장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 책의 저자인 성열관은 여섯 가지를 제시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 당연이 당연이 되지 않음이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교육이었으니...


교실사회학적 관점 취하기

모두가 존엄한 사회를 위해 모두가 존엄한 수업을 운영하기

국가교육과정 난도를 낮추기

1교시에서 6교시까지 협력의 매개로 수업하기

절대평가를 중심에 놓기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에서 데모크라시(민주주의)로 전환하기


이 여섯 가지를 보면 학생들이 책임져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교육관료들이나 교사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즉,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교육관료, 교사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단지 교육 분야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것은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적인 책임은 교육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져야 한다. 이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문제를 사회에 자꾸 제기해야 할 책임은 바로 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교사들은 어느 정도는 수업 시간에 자는 책임이 학생에게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는 학생들을 대할 때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고. 또 그런 학생들이 수업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협력 수업을 조직하는 등, 다양한 혁신학교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


다만, 교사들 역시 교육이라는 큰 체제에서 영향력 있는 발언권을 지니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교육관료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그대로 통보하는 관행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저자가 제안한 여섯 가지가 요원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메리토크라시가 판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이런 제안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당연하지 않게도 하지 않고 있는, 이런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려고 하지도 않는 관료들. 교사들이 혁신학교 운동으로 수업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을 막기 위한 노력은 전체 틀을 바꾸지 않는 한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은 결코 학생들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기성세대 책임이다. 그러니 기성세대가 책임지고 한 학생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이 되도록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 이 책은 그것이 시급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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