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좀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과연 녹색평론 174호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김종철 선생이 돌아가시고 이 잡지가 지속될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지속된다. 아니 지속되어야만 한다. 아직도 김종철 선생이 주장했던 것들이 진행형이기 때문에. 우리들 삶이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에. 이 불안함 속에서 그래도 길을 비춰주는 빛 역할을 할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에라도.
녹색평론은 이런 빛이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그런 빛. 단지 그런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따스함을 전해주는 온기 역할도 했다. 빛은 밝기와 열기를 함께 지니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도 녹색평론이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나마 위안을 삼으면서 이번 호를 읽었다. 이번 호는 김종철 선생을 추모하는 글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녹색평론이 해온 일을 정리하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한 세대 넘게 녹색평론을 이끌어 오면서 우리들에게 끊임없는 죽비를 내렸던 김종철 선생에 대한 추모글을 통해 그 죽비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어른 한 분을 잃었다.
하지만 그 어른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녹색평론을 통해 그분이 했던 말들을 잊지 않는다면.
읽으면서 '꼰대와 어른'이라는 두 단어를 떠올렸다. 김종철 선생은 분명 어른이었다. 그런데 이분이 어떤 사람들에겐 꼰대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하는 불경한 생각. 이분을 꼰대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생각. 하지만 이 분을 어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에서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
꼰대는 자신의 경험만을 중심으로, 오로지 자신이 옳다는 신념으로 그것을 끝없이 남에게 강요하는, 그것도 자신의 권력을 기반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정의가 김종철 선생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어른은 바로 이런 꼰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넘어 세계로, 또 타인에게로 나아가는 자세, 내 이익이 아니라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사람, 결코 권력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 행동함으로써 그점을 보여주는 사람. 김종철 선생은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어른이었다는 생각. 우리는 또 한분의 어른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지만, 이제 우리도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번 호였다.
언제까지나 우리는 김종철 선생을 어른으로 모시며 그분에게 배움을 요청하는 존재로만 남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어른이 되어야 한다. 꼰대가 아니라. 그러니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할 수 있는 시야를 갖자. 자신의 틀에만 갇히지 말자. 그 점을 생각한다.
이번 호에서 김종철 선생에 대한 추모글도 좋았지만, 농업과 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근행과 정형철의 글도 좋다. 코로나19로 농업과 교육에 대해서 근본적인 성찰을 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피상적으로만 흐르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는데, 이번 호에서 그 점을 잘 지적해 주고 있다.
그린뉴딜이라는 말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 그린뉴딜에서 농업이 과연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가 보면 농업은 여전히 뒷전이다. 이근행은 그 점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녹색성장'을 내세우며 4대강을 파헤치고 보를 쌓는 데 세금을 낭비하고 물난리를 초래한 토건세력과, '그린뉴딜'을 내세우며 데이터와 스마트 산업에 100조를 투자해 '똑똑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치세력은 얼마나 다를까? 포클레인이 컴퓨터로 바뀌면 우리는 '더 보호받고 따뜻한 나라'에서 살 수 있을까? '사람이 중심인 나라다운 나라'는 각자도생의 사회는 아니지 않겠는가. (이근행, 그린뉴딜의 본류는 농(農)이다에서. 163쪽)
그러니 농업 정책에 대해서 농민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 농업을 등한시하면서 우리들 삶이 유지될 수는 없다. 우리는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 그리고 농업은 우리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가장 기본이니까.
여기에 온라인수업이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앞으로 교육은 온라인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데, 정형철은 그 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다.
어떠한 형태나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도, 온라인교육으로는 '교습'이나 '강습'이 가능할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아이들이 '배움'에 도달할 수는 없음이 명확해진 것이다. ...
스크린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게 배움을 차단하는 장벽이다. ...
온라인을 통한 스크린교육은 배움의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잇는 자질구레한 모든 배움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정형철, 코로나 시대에 교육을 생각한다에서. 189쪽)
교육이, 한 사람의 민주시민으로 성숙해가는 아이들의 '배움'에 그 목적이 있지 않고, 지금 우리 사회의 입시교육처럼 '성과'를 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우리 교육이 온라인교육으로 대체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여전히 대학입시 제도가 우리 사회의 모든 교육과정을 짓누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아무런 성찰과 변화 노력 없이 교육의 미래를 이야기한다면, 온라인교육이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대체해나간다고 해서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정형철, 코로나 시대에 교육을 생각한다에서.190쪽)
미래교육이라는 이름을 달고 지속적으로 교사와 학생, 학부모를 현혹하는 전문가들이나 관계자들의 배후에는 에듀테크 자본이 자리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기술자본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거나 아니면 놀아나는 교사들이나 교육전문가들이다. 이들은 현실의 교육문제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오인하고 잘못된 길로 유도한다. 지금도 지나친 기술주의와 교육시장화가 우리 교육을 좀먹고 있음에도, 이들은 점점 더 강력한 기술주의 해법과 비즈니스 전략을 들고 미래교육을 떠들고 있다. (정형철, 코로나 시대에 교육을 생각한다에서. 193쪽)
더 많은 내용이 있지만, 온라인수업의 병폐가 드러나고 있는데, 그것을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스스로 교육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코로나19가 심각해지는데도 고3들은 입시하는 이유로 등교를 해야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이지 않은가.
여전히 대학입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 목표다. 이런 대학입시에 대한 변화가 없으면 온라인수업은 성공이다. 성공할 수밖에 없다. 교육이 지니고 있는 다른 모든 면들을 제외하고, 오로지 문제풀이에 집중할 수 있을테니.
하지만 그로 인한 격차들, 또다른 문제들, 그리고 '관계'를 통한 배움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농업과 교육, 코로나19로 근원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고, 개혁을 할 수 있는 분야일텐데, 그것을 엉뚱한 쪽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 호에서 지적하고 있다.
좀더 깊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렇게 농업과 교육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야 할 것이다. 농업과 교육은 분명 '생태'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