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꿈 이청준 문학전집 중단편소설 3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가끔 이런 비평을 만나면 절망한다. '해설'이란 이름을 달았지만, 해설이 더 어려운 경우. 대학교수들이 소설에 대해서 해설을 쓸 때 왜 그리도 현학적인지. 도무지 모를 말들을 나열하면 그것이 잘된 해설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학자들이라서 그런 어려운 말들이 자신에게는 쉬운 말이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해설'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해설이란 그 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청준 소설은 결코 쉽지 않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 번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해설'의 도움을 빌리려 하는데, 이 놈의 '해설'이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집의 경우를 보자. 이렇게 '해설'에 쓰여 있다.

 

... 이 소설집의 텍스트들은 대개 세 가지 측면에서 주목에 값한다. 1. 탈난 세계의 한계 억압 체증 양상의 재현 가능성. 2. 탈난 세계에서 탈난 개인의 탈의 한계 효용 체감 양상의 재현 가능성. 3. 억압의 한계 체증과 탈억압의 한계 체감 사이의 대립 상황에서 소설의 한계 체험에 대한 반성적 질문의 유효성 등 셋이 바로 그것이다. (370쪽)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 언뜻 물리학 법칙 같이 정리를 해서 간명해 보이기는 하나, 도무지 '한계 억압 체증'이라든지, '한계 효용 체감 양상'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말을 한번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어렵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가면의 꿈>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작가의 문제의식과 마주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의 의미와 그 서사적 형상화 양상, 그리고 그런 문제의식과의 새로운 비판적 대화 등이 이 소설집 독서의 핵심사다. (370쪽)

 

하여간 소설 속에 나타난 내용을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파악하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인데, 여전히 어려운 말들이 나열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또 한번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이런 질문들이다. 자유롭기를 열망하는 개인을 억압하는 탈난 세계의 억압 기제는 어떻게 작동되는가, 그 억압 기제는 허구적 현실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억압의 구성적 상징은 어떤 서사 효과를 묘출하는가, 탈난 억압 현실에서 개인은 어떤 탈을 쓰게 되는가, 그 탈은 '환부다운 환부가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인가, 개인의 탈마저 억압되는 상황에서도 개인의 탈주는 가능한가, 이런 문제적 현실에서 소설은 무엇을 어떻게 꿈꾸고 재현할 수 있는가…… (370쪽)

 

'해설' 시작이 이렇다. 시작에서 어려운 말들이 다 나왔다. 그 다음부터는 구체적인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 때문에 이렇게 현학적인 말들보다는 훨씬 이해하기 쉽다. '해설'의 앞부분도 좀 간결하고 쉬웠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만큼 이청준 소설을 이해하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가 사용한 표현방식이나 소재가 다양하기도 하고.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이 1960년대에서 70년대 창작되었기 때문에 지금으로 보면 좀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 당시 상황을 잘 모르고 있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이 소설집 소설을 읽으며 몇 가지는 파악할 수가 있다.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것이 사회적인 것이든 개인적인 것이든 책임은 개인이 질 수밖에 없다는 것.

 

첫소설 '굴레'에서부터 그렇게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 개인이 그러한 굴레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표현한 작품들이 있다. '굴레'를 비롯하여 오히려 제목을 굴레라고 붙였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가학성 훈련' 그리고 자신은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말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막상 자신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보너스'라는 소설. 이런 굴레에 속한 소설로 '가면의 꿈'과 '엑스트라'와 '들어보면 아시겠지만'을 들 수 있겠다.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자라 성공가도를 달리던 주인공이 등장하는 '가면의 꿈'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굴레(짐)은 너무도 무거워 가면을 써야지만 안심하게 된다. 하지만 가면도 쓰면 쓸수록 효용성이 떨어진다. 효용성이 덜어지는 가면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파멸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가면의 꿈'

 

더 많은 소설들이 있지만, 남북관계를 의미하는 듯한 소설(새를 위한 악보 중 돌담 이야기)도 있고, 당시 비틀어진 사회 모습을 비판하는 소설 (새를 위한 악보 중 웃음 선생)도 읽을 만하다.

 

무엇보다도 이 이청준 소설집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개인이다. 결국 소설은 사람의 이야기 아니겠는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소설이다. 그러니 해설에서 말한 탈난 세상이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돕고 사는 평화로운 공동체가 무어진 세상이라는 뜻이고,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청준 소설은 그런 세상에서 개인들이 굴레에 매여 있으며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것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확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

 

문제는 있는데, 그 문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해야 해결이 되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고 나름대로 궁리를 하는 인물들이 바로 이청준 소설의 인물들이다.('배꼽을 주제로 한 변주곡'에서 이런 점이 잘 나타나 있다)  

 

이청준 특유의 문체가 있어서 거기에 익숙해지면 읽기에는 무리가 없다. 편하게 읽을 수는 있다. 그렇게 읽어가면서 이청준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는 생각해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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