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바통 3
강화길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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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라니? 남자와 여자가 함께 일을 해도 빛을 보는 건 남자들이고, 늘 남자들 뒤로 사라지는 게 여자들이라는 의미일까?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한 만큼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형상화한 작품집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제목이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아니다. 이 정도면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라는,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주장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겪는 일들이 전개되어야 하는데, 이 소설집은 그 방향과는 다르다. 여성들이 겪게 되는 고통이나 공포를 다루고 있지만, 그들에게 이런 고통, 공포를 유발하는 존재는 기존 관념과는 달리 여성들이다.

 

여성이 여성에게 고통을 일으킨다. 여성에게 공포의 존재는 여성이다. 이런 소설이 나오게 된 것은 이제 여성도 어느 정도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 실질적으로 여성은 아직도 약자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몇몇 남성의 자리를 차지한 여성이 권력을 지닌 것처럼 보여, 여성이나 남성이기 전에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착시현상에 불과할 뿐이다 -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집에는 8편의 소설이 실려 있고, 모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집에서 여성을 괴롭히는 존재로 엄마를 들고 있는 소설이 있고(강화길, 산책. 최진영, 피스. 지혜, 삼각지붕 아래 여자), 엄마를 살해하는 딸의 모습을 그린 소설(천희란, 카밀라 수녀원의 유산)도 있다. 여성의 적은 여성인 소설, 여성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는 존재로 등장하는 여성들을 표현함으로써 이 소설은 여성들의 공포가 외부에서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내부에서도 일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겉으로는 온화한 여성지도자이지만 알고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짓밟는 존재가 등장하는 소설(임솔아, 단영), 또 자기처럼 희생당하는 여성들을 지켜보는 소설(손보미, 이전의 여자, 이후의 여자)도 실려 있다.

 

거기에 여성을 질투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여성과 여성이 함께 유대하지만, 그런 모습을 질투하는 유령을 등장시키는 소설(최영건, 안(安)과 완(完)의 밤)이 있으며, 여성들이 실종되지만, 그에 대해서 무관심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허희정, 숲속 작은 집 창가에)이 있다.

 

모두들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이야기하지만, 이 소설들에서 여성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남성이나 또는 사회적 제도라기보다는 그 사회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일 수도 있다는 것을 공통 주제로 하고 있다.

 

소설의 소재를 더 넓힌 소설집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여성 스릴러물이라기에는 조금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공포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에 유령이 등장한다든지, 개연성이 없는, 도대체 죽은 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든지 하는 장면들이 나와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무언가 생각하지 못했던 반전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세상의 절반이라고 하지만 여성들이 그동안 받아왔던 차별과 억압들이 그들의 삶에 극적인 상처를 남기지 않더라도 은연중에 두려움으로, 공포로 새겨졌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 소설집은 그렇게 드러내놓고 공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그동안 내재되어 왔던 억압과 차별들이 그들 몸에 박혀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무서운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억압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억압, 그래서 상대의 동의를 얻어 행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여성들의 삶은 어쩌면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 안으로 안으로 쌓인 차별과 억압들이 그들에게 공포로 다가왔음을, 이제서야 그런 공포를 소설로 표현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이 소설집은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여성 억압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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