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리커버 특별판)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아마도 우리가 경험하기 힘든 곳이 정신병원일 것이다. 우선 정신병원 그러면 정상적이 아닌 이라는 생각부터 한다. 온전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있는 곳. 비정상이 판치는 곳. 그들에게는 권리도 제한된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해 그곳을 경험하기는 참 힘들다.

 

정신병원이라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쳐서 들어왔거나 들어와서 미쳤거나'라는 말이 있듯이 이곳에서는 소위 정상적이라는 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어보라. 그들도 정상인들과 똑같이 협력하기도 갈등하기도 한다. 그들이 있는 곳도 세상일 뿐이다.

 

작가는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물론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래도 정신병원이라는 곳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다. 환자로서가 아니라 환자를 지켜보는 사람의 처지에서. 아마도 그런 경험을 통해 정신병원도 사회의 일부임을 자각했으리라.

 

소설은 환자의 처지에서 쓰였다. 그럼에도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정신병원에서 하는 환자의 말. 믿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 서술자의 진술을 신뢰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특히 이 소설은 심사위원회에서 자신이 여기서 어떻게 지냈는지를 진술하는 내용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것이 감정을 이입하는데 도움이 된다.

 

소설 말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는 세상에 나오기 위해 준비를 한다. 이제 그도 당당한 존재로 자신을 인정하고 세상에서 함께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글을 쓴다. 나갈 준비로. 하지만 쓰면서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닫는다는 것, 자신 속에 갇혀 있는 또다른 자신을 밖으로 내보내고 그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면에서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그런 힘을 이야기가 주고 있다.

 

승민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볼펜 한 다스가 사라졌다. 노트는 열 권으로 불어났다. 그 사이 나는 무한히 자유로웠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온전히 나 자신이었다. 인생의 표면을 떠돌던 유령에게 '나'라는 형상이 부여된 것이었다. 그것이 내 안에서 나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333-334쪽)

 

이렇게 내 안에 있던 또다른 나로 인해 고통받던 나에서, 그를 또다른 나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신의 여러 모습을 확인하고 인정하게 된 것.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나'에게는 '승민'이라는 자신의 길을 가는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와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설은 정신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들끼리 맺는 관계들이 소위 정상인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그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규정짓는 것이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아무리 가두어 두려고 해도 가둘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 인간은 본래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 따라서 자유를 잃은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은 존재가 되는 것. 정신병원에서 끊임없이 말썽을 부리는 것은 그들이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승민. 그러나 자신이 글라이더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았던 기억을 버리지 못하는, 다시 한번 완전히 실명하기 전에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승민을 통해, 자신 속에 자신을 가두었던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얻게 된다.

 

승민과 함께 탈출한 다음 주인공인 '니'는 자신을 가두었던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더이상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또 왜곡하지도 않고 그 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젠 더이상 사회에서 도피할 필요가 없다.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하던 것들에게 가슴을 쫙 펴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내 심장을 쏴라" 그렇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두려움 속에 자신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추어진 자신을 계속 가둘 수만은 없다. 그런 자신을 대면해야 한다. 물론 두렵고 어렵겠지만 대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여 이 소설은 정신병원에 갇혀 있던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펼쳐가지만, 정신병원을 사회로 확장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나'를 바로 우리 자신으로 바꾸어서 읽으면 좋다. 우리들 삶도 이렇게 비틀려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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