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 나는 이렇게 본다 보리 한국사 3
김용심 지음 / 보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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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고마워 하면서 더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런가? 지금 우리나라를 보자. 3D업종이라고 하는 데에는 주로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는가? 고마워 하는가? 아니면 없는 나라에서 왔다고 무시하는가?

 

그들을 존중하지 않더라도 평등하게 대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여전히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차별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결혼으로 우리나라에 온 사람들 역시 차별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이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오랜 전 옛날 우리 조상들은 도살하는 일에 서툴렀다. 그래서 동물을 잡아 먹기 위해서 북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그들을 양수척, 화척, 재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와 함께 살게 했다. 함께 살게 했으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어야 하는데,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멸시와 차별이었다.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대우하지 않고 사회에서 격리해서 그들만의 공간에서 지내게 하는, 자신들은 그들이 생산한 물품과 잡은 고기를 먹으면서도 정작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천시하고, 멸시했다. 그것이 고려 시대에 동물을 도축하는 과정이 이랬다고 서긍이 전한다고 한다.

 

잡을 때는 먼저 네발을 묶어 타는 불 속에 던져 넣고 숨이 끊어지고 털이 없어지면 물로 씻는다. 만약 다시 살아나면 몽둥이로 쳐서 죽인 뒤에 배를 가르는데 위장이 다 끊어져서 똥과 오물이 흘러넘친다. 따라서 국이나 구이를 만들더라도 고약한 냄새가 없어지지 아니하니 그 졸렬함이 이와 같다. 서긍, <고려도경> 권23 '도축' (140쪽)

 

이렇게 고기조차도 제 맛을 모르게 먹던 사람들이 백정들의 도움으로 제대로 맛을 낸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마워 해야 하는데, 그들을 오히려 천시하고, 자신들이 그런 일에 종사하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 조선시대에는 군대조차도 소를 잡지 못했다니 하니 그 한심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양수척, 화척, 재인 등등은 백정으로 용어가 통일된다. 일반 백성으로 대우하겠다는 의도로 백정이라는 말을 쓰도록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멸시받는다. 하다못해 노비에게도 무시를 당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일에 나름의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

 

소는 그냥 짐승이 아니라 극락의 태자.

그러므로 소를 잡는 일은 극락에 가고자 도를 닦는 일이다, 따라서 소를 잡는 백정 또한 고귀하고 신성한 존재라는 믿음은 백정들에게 하나의 구원과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소도 그냥 부르지 않고 하늘나라 왕자라고 소 우牛를 붙여 '우공태자'라 불렀다. 소를 잡는 칼도 영험한 칼로 여겨 소중히 대했고, 소를 잡기 전에는 늘 몸가짐도 정결히 했다. ... 백정들은 하늘에 오르면 왼쪽이 극락이, 오른쪽에 지옥이 있다고 믿어 왼쪽을 특히 신성하게 여겼다. 그래서 소를 잡을 때도 왼손만 썼다. (151쪽)

 

천시받던 그들의 대표적인 예가 중종반정에 참여한 당래와 미륵이라는 사람이다. 특히 당래는 벼슬까지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무시. 결국 다시 강도짓을 하게 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공신이 되어도 또 벼슬을 해도 백정은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한다. 이렇게 천시받던 백정들이 가끔 집단적으로 저항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저항이 조직적이고 지속적이 되는 것은 일제시대에 벌인 '형평사'운동이다.

 

이 운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강상호의 이야기를 통해서 백정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양반임에도 백정들의 권리를 위해 평생을 살았던 강상호. 그가 받은 멸시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지만, 그가 죽었을 때 전국의 백정들이 와서 그를 저세상으로 보낼 때의 모습을 보면 강상호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강상호와 같은 사람의 행동을 보면 평등이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평등을 추구해야 함을 백정들의 삶을 보여주는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자, 지금 우리 시대에 '백정'들은 없는가? 주위를 살펴보라. 우리 주변에 아직도 '백정'들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런 존재들을 찾아낼 수 있는 눈, 그리고 그런 차별을 바꿀 수 있는 행동. 그것이 사회를 조금 더 평등한 사회로 이끌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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