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 - 우리가 ‘여신’ 칭송을 멈춰야 하는 이유
이충열 지음 / 한뼘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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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등장하는 그림이 많다. 특히 누드화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누드화에서 여성들은 서 있기보다는 (물론 서 있는 그림도 있지만 많은 그림에서 여성들은 옷을 벗은 상태에서 누워 있다) 누워 있는 그림이 많다.

 

왜 그럴까? 여성의 몸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시선으로 남성의 성적인 욕망을 극대화 하는 쪽으로 몸을 이리저리 뒤틀기 때문이다. 오로지 남성의 시선에 만족감을 주기 위한 구도.

 

많은 그림에서 누워 있는 누드화가 많다. 그것도 종교가 유럽을 지배하던 시대에는 여성의 나체를 그리기 힘들었지만 성서에 나오는 인물이나(유디트, 수산나) 신화에 나오는 인물(비너스,다나에 등)의 누드화는 가능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들을 남성 작가가 표현했을 때는 남성의 시선에 알맞게 표현했다는 것, 적장을 죽이는 유디트가 지나치게 연약하고 아름답게 표현이 되어 있다든지, 하녀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표현이 되었다는 것. 수산나 역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점이 잘 느껴지지 않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르테미스라는 여성 화가에서는 주류 남성 화가들과는 다른 면을 볼 수 있기에 그 그림을 예로 들어서 왜곡된 시선으로 표현된 여성들을 설명하고 있다.

 

(한 가지를 더 덧붙이면 저자는 단지 남성의 시각에서 왜곡된 여성의 몸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그림이나 조각을 통해 주류의 시각이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남성-백인-귀족'을 중심으로 하는 관점이 미술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음을)

 

신화에서 미의 여신이라는 비너스를 많이 그리는데, 어느 순간 누워 있는 비너스를 그리기 시작하고 그런 유형의 그림이 대세를 차지하게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에는 성적 환상을 갈구하는 남성들의 시선에 부응하고자 하는 화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한다.

 

'성적 대상화를 위해 곡선을 강조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균형 잡으며 서 있도록 그리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럴 때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비너스를 눕히는 것입니다.' (112쪽)

 

바로 이것이다. 비너스가 누운 이유는, 비정상적인 몸을 그릴 수 있는 방법, 그것이 바로 눕히는 것이다. 세계 명화라고 별 생각없이 보는 그림에도 이처럼 주류 시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비판적인 관점을 지니지 않으면 그런 관점을 자신의 관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뒷부분에서 저자가 만든 '충열 테스트'를 제시한다. 같은 나체 그림이라고 해도 남자의 시선에 복무하는 누드와 자연스럽게 그런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 네이키드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충열 테스트'는 세 가지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필연적인 노출인가?

② 표정과 동작의 의도가 명확한가?

③ 직업, 나이, 성격, 등 개인적 특성을 알 수 있는가?

 

이 중에 아니오가 두 개 이상이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 '누드'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필연적이지 않고 의도도 명확하지 않고 개인적 특성을 알 수 없는 그림은 남성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목적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그림을 세계 명화라는 이름으로 어릴 적부터 보아 왔다.

 

그렇다면 이런 누드화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제시된 네이키드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벌거벗음인데, 그것은 자연스레 옷을 입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네이키드는 단지 옷을 입지 않은 몸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옷을 입지 않은 것처럼, 옷이라는 껍데기를 걸치지 않은 상태. 어떤 꾸밈 장치도 없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중요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몸을 바로 네이키드라고 정의하고자 합니다. 네이키드는 숨기거나 가리거나 치장하지 않기 때문에 삶의 흔적과 현재가 드러납니다.' (157쪽)

 

우리에게 필요한 그림은 바로 이런 성을 왜곡한 누드화가 아니라, 네이키드화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알아야 대응을 할 수 있다. 모르고 왜곡한 시선과 관점을 계속 지니고 있다고 면죄부가 발행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잘못이다.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어느 한 쪽 성이 다른 성들을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정한 성의 관점에서 다른 성들을 해석하고, 그들의 눈에 비치도록 미술 활동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특정 성의 관점을 포함하여 주류의 사고가 우리 세상을 왜곡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이 책은 미술 작품을 통하여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실전문제까지 제시하면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진단 테스트가 있는데 많이 알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에서 아담의 탄생이라는 부분이다. 이 그림을 제시하면서 저자는 이런 질문을 한다.

 

진단 테스트 1

 

  이 그림은 르네상스 '3대 천재' 중 하나로 불리는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 중 일부입니다.

 

1. 그림에서 하나님의 성별과 피부색, 연령대는 어떠한가요?

2. 성경에 하나님이 백인 노년 남성으로 정의되거나 묘사된 부분이 있나요?

3. 성경에 2번과 같은 묘사가 없다면, 미켈란젤로는 왜 하나님을 백인 노년 남성으로 그렸을까요?

(14-15쪽)

 

이렇게 그림을 다른 시각에서 보도록 알려주고 있다. 읽어보면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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