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 미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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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많이도 들어본 제목이다. 여러 곳에서 필경사 바틀비가 하는 말이 인용되곤 했는데...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어떤 때는 노동자들의 주체 의식을 드러낸 말로 이 말을 인용하곤 했는데,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에서 자기 주장을 명확하게 하는 대사로 말이다. 그런데 읽어보니,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바틀비가 왜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지 소설 속에서는 별다른 개연성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바틀비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아서 그 말을 하고 일을 거부할 뿐이다. 어떤 설명도 없다. 합리성도 없고.

 

그가 그렇게 버티자 변호사가 견디지 못하고 사무실을 옮기지만 바틀비는 그 자리를 고수하다가 끌려가고 만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바틀비는 현대 노동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부터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싶었는데, 읽고 난 뒤에는 이상하게도 그리 큰 울림이 남지 않았다.

 

바틀비를 이 단편집 속에 있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 '진품'의 주인공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인간.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 자신들을 귀족의 모습을 담은 진품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림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사람들. '진품' 속 인물인 모나크 부부는 스스로를 '진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진품이 아니라 골동품에 불과하다. 그것도 현대에 보존할 가치가 없는 그러한.

 

여러 소설이 실려 있는데, 당시 미국의 상황을 짐작케 하는 소설들도 있고, 새로운 기법을 보여주는 소설들 도 있다. 총 11편의 소설이 시대 순으로 실려 있는데, 미국 단편 소설들을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그 중에 샬롯 퍼킨스 길먼이 쓴 '누런 벽지'는 현대 페미니즘을 미리 보여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성이 자기의 의사를 인정받지 못하고 남들에 의해 갇혀 지내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른 사람을 자기 관점으로 옭매이는 것, 지금도 자주 일어나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잘못된 일인지를 이 소설을 읽으면 깨달을 수 있다.

 

오래 된 소설이지만 소설을 통해서 내 관점이 아무리 좋고 올바르다고 하더라도 남에게 일률적으로 강요할 수 없음을, 그것도 주류에 속한 사람이 비주류에 속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면 재앙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여기에 미국 흑인 노예들에 관한 백인들의 관점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창스 W. 체스넛이 쓴 '그랜디썬의 위장'도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백인들의 위선, 그런 위선을 반전으로 까발리는 그랜디썬이라는 흑인의 모습이 통쾌하다.

 

이렇듯 이 단편집에서는 미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소설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소설도 있다. 거기다 공포물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같은 작품도 있고, 처음 읽는 작품이지만 검은 고양이와 비슷하게 결말이 괴기스러운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이란 소설도 만날 수 있다.

 

이 단편집에는 이밖에도 종교의 문제를 다룬 '젊은 굿맨 브라운', 표류하는 구명 보트에서 서로 돕고 지내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소형 보트' 등 다양한 경향의 작품이 실려 있어서 근대 미국 단편 소설을 한번에 읽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천천히 한 작품씩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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