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충격이다. 이런 시를 읽으며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2005년. 소위 민주 정부가 두번째로 들어서 있을 때. 그동안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감춰져 있던 일들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형식적 민주주의 다음에는 실질적 민주주의. 세상은 그렇게 순차적으로 가지 않는다. 특히 정치는 직진하지 않는다. 정치는 오히려 후진을 더 좋아한다.

 

  과거가 더 좋은 정치인들이 많으므로. 마찬가지로 형식적 민주주의라도 쟁취하기 위해서 그동안 감싸놓았던 일들 역시 그대로 묻어버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들의 치부를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므로. 또 자신이 윤리적으로도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하므로.

 

이때 그런 치부를 보여주는,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시인이다. '괴물'이란 시로 문단에 파란을 일으킨, 문단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최영미 시인이 쓴 "돼지들에게"란 시집을 알라딘 중고로 구했다. 우선 제목이 자극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돼지'란 결코 좋은 의미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욕심, 더러움, 추함 등을 대표하는 동물로 언급되는데, 사람에게 "야, 이 돼지야!"라고 하면 넌 더러운 욕심쟁이야 라는 의미로 쓰니, 돼지들에게란 제목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한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들을 무시한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시와 시인을 분리해야 한다고, 시는 시일 뿐이라고 아무리 강변해도 시를 읽으며 시인이 살아온 삶을 무시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시에서 사실을 찾으려고 한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도 그렇다.

 

시에 표현된 낱말들을 통해 특정 사람을 연상하기도 한다. 시에서 특정 사람이 명확하게 떠오른다는 것은 표현을 잘한 것일까? 그것은 비유도, 상징도 아니다. 그냥 직설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그래서 충격이었다.

 

넌, 돼지야! 인정해!!! 라는 외침. 그런데 시에서 말하는 '너'를 그렇게 표현한 것에 반감을 지닐 수밖에 없다. 시인은 좀더 다른 표현을 쓸 수 없었을까? 이 점에서 불편해졌다. (돼지의 변신. 18-19쪽)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니, 시인은 시는 시일 뿐이라고. 결코 특정한 누군가를 지칭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 시에서 표현된 것은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일반적인 것, 그러함 직한 것을 뽑아내 표현하는 것이겠지.

 

돼지들로 상징되는 부패한 사람, 위선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 하고, 또 보지 못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당신들은 이런 모습을 지니고 있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 다만 시를 읽다보면 아무런 거름망도 없이 특정 사람이 떠오르니, 그것은 좀 표현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시에서는 한번 거른 표현이었으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시라면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 시로 인해 최영미 시인이 고소를 당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요즘 같으면 아마 명예훼손으로 소송에 휘말렸을지도 모르는데... 소송 천국, 대한민국) 

 

하지만 이 땅의 돼지들에게 너희들은 돼지야 라고 말해주는, 돼지들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는 시들은 의미가 있다.

 

돼지 사회에만 있으면 자신이 돼지인지 모르고, 여우 사회에만 있으면 자신이 여우인지 모른다. 그들에게 다른 존재도 있음을 알려주는 역할, 최영미 시인이 하고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 이후 실질적 민주주의로 가야 하는 때, 시인의 시들은 남들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비춰보게도 한다. 그런 역할을 하는 시들이다. 바로 이 시. 나는 얼마나 이 시에서 벗어나 있는가 생각해 본다.

 

 돼지의 본질

 

그는 자신이 돼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훌륭한 양의 모범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신분이 높고 고상한 돼지일수록 이런 착각을 잘한다.

 

그는 진주를 한번 보고 싶었을 뿐,

두번 세번 보고 싶었을 뿐……

만질 생각은 없었다고

해칠 의도는 더군다나 없었다고

자신은 오히려 진주를 보호하려 왔다고……

 

그러나 그는 결국 돼지가 된다.

그들은 모두 돼지가 되었다.

 

최영미, 돼지들에게. 실천문학사. 2005년 초판.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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