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푸가 - 파울 첼란 시선
파울 첼란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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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많이 들은 시인. 파울 첼란. 유대인으로 태어나 학살을 경험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를 쓴 사람.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아우슈비츠를 바탕으로 서정시를 쓴 사람으로 알려진 시인.

 

그러나 독일어로 쓰인 시를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의미만이 아니라 시가 주는 울림도 제대로 전달되기 힘들다. 시를 번역하는 것이 그만큼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첼란은 시를 유리병 편지에 비유했는데, 유리병 속에 담긴 사연은 길 수가 없다. 짧다. 그 짧음을 해석해 내는 것. 바로 시를 읽는 사람의 역할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이 시집 역시 마찬가지다. 바다 건너 저 편에서 온 유리병 편지를 읽어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언어는 어떤 울림을 준다. 그냥 자신의 마음에 들어오는 시들이 있다. 우선 파울 첼란이 시에 대해서 한 말을 보자.

 

시는, 언어의 한 현상 형태로, 그 본질상 대화적이기 때문에 일종의 '유리병 편지' 같습니다. -분명 희망이 늘 크지는 않은 - 믿음, 그 유리병이 언젠가, 그 어딘가에, 어쩌면 마음의 땅에 가 닿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유리병에 담아 띄우는 편지요. (223쪽)

 

시는 하나의 타자에게로 가려 합니다. 타자를, '마주 섬'을 필요로 하지요. 시는 그걸 찾아갑니다. 자신을 그것에게 줍니다.

타자를 향해 있는 시에게는 사물 하나하나, 사람 하나하나가 그대로 타자의 형상입니다. (240쪽)

 

이 말들을 통해서 그의 시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 시선집에 실린 마지막 시 제목이 '시 닫고, 시 열고'이다.

 

시집을 닫으면서 시는 열리고 있는 것이다. 닫힘과 열림이 함께 있다.

 

시(詩) 닫고, 시(詩) 열고

 

여기서 빚깔들은

보호받아 본 적 없는

맨이마

유대인에게로 간다

여기 떠오르고 있다

가장 무거운 사람이.

여기 내가 있다. (218쪽)

 

또 한 편의 시가 있다.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 말들을 막아서도 안 되지만, 말도 안 되는 말들이 나돌아 다니게 하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 첼란이 의미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이 시가 해석될 수도 있다.

 

우리는 말이 칼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파리 하나, 나무도 없이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위하여

 

이 무슨 시대란 말인가

대화가

거의 범죄이니

그 많은, 이미 말해진 것을

포함하기에. (208쪽)

 

유리병 편지가 오는 동안 시대가 바뀌었고, 말에 대한 판단이 바뀌었다. 정말 이 무슨 시대란 말인가. 말이 아닌 말들이 말이라는 탈을 쓰고 돌아다니고 있는 이 시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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