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별것 아니다. 그냥 따스한 밥 먹고, 따뜻한 방에서 잠들 수 있으면 된다.
함께 밥 먹으며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사람들과 같이 끼니 걱정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세상살이다.
그런데 별것 아닌게, 별것이 된다. 너무도 특별한 것이 된다. 실업, 실업, 청년 실업, 장년 실업, 넘치는 자영업자들, 금방 문 닫는 자영업자들.
대를 이어줄 가업은 재벌들 밖에는 없는지, 그렇게 밥을 얻는 투쟁 속에서 하루하루 지쳐만 가는 세상이다.
그 밥도 얻지 못하고 굶주리는, 밥을 먹기 위해 일을 가져야 하는데, 일을 갖기가 너무도 힘든 세상.
그렇게 밥을 위한 투쟁이 극심한 세상이 되었는데... 신현림의 이 시집을 읽다가, '밥'에 관한 두 시를 읽고 밥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 도처에서 밥이 모자라고 있는데, 식당이나 아니면 단체 생할을 하는 곳을 보면 밥을 먹은 뒤에 나오는 온갖 남은 음식물들. 그것들이 갈 데를 잃고 음식쓰레기가 되어버리는 현실.
누구는 없어서 못 먹고, 누구는 남아서 그냥 버리고, 음식이 이렇게 버려지는 세상이 과연 행복한 세상일까?
신현림의 시를 읽는다. 밥에 대한. 그렇게 우리는 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내 몸 속에 들어오는 밥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끼고, 그것을 모두 내것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밥 한 사발
아버지가 괴로와서 따뜻한 밥을 지고 오신다
어머니 손길로 더욱 부푼 우리 식구의 밥
폐허에서 일군 뜨끈뜨끈한 천국의 열매다
밥 한 사발엔
해뜨는 바다와 조상의 살냄새와 단비가
매일 일하다 저무는 쓰라린 손그림자가 있다
나날은 밥상을 준비하는 의식이다
아버지는 기쁨을 봉헌하는 사제
어머니가 나르는 숭늉에는 언제나
황혼의 논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으로 가득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우리는 사라진 메뚜기와 수억 개의
촛불처럼 밤하늘을 밝히는 벼이삭을 떠올렸다
불안한 밥 한 사발을 얻기 위해
우리의 등덜미는 산처럼 구부러지지만
흰빛의 밥알을 씹으며 폐허에서도 웃을 수 있으리라
땅굴 같은 가난 속에서도 펄펄 살아날 수 있으리
신현림,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계사. 1998년 1판 5쇄. 57쪽.
이 시와 더불어 이 시집에 있는 '한솥밥 궁전으로 당신을 초대한다'도 역시 밥에 대해서, 우리에게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도 더불어 먹는 밥이 얼마나 좋은지를 잘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먹다 버린 밥, 누군가는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밥일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내 눈 앞에 있는 밥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먹고, 이 밥을 다른 사람들, 다른 존재들도 함께 먹을 수 있기를 바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