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김경주 지음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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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극, 낯선 장르다. 요즘은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장르가 아닌가 싶다. 사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연극을 보러 가는 사람도 줄어들었는데, 시극이라니...

 

시와 극이 합쳐진 말이라고 하겠지만, 그런 말보다는 오히려 시적인 극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작품이다. 연극으로 공연이 되지 않고 읽히는 작품이기도 하고.

 

폐허가 된 해수욕장에 있는 파출소. 이미 낡아가고 무너져 가는, 잊혀가는 존재다. 여기에 근무하는 파출소 직원, 나이도 지긋하다. 그 역시 점점 소멸되어 가고 있다. 그가 업어온 김씨. 다리가 없는, 다리에 고무를 달고 땅을 기어다니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머무르는 사람이다. 그에게 땅은 자신의 온몸과 맞닿아 있는 곳, 하늘을 보며 별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는 땅에 붙어 살 수밖에 없다.

 

또 정체불명의 사내. 소년이기도 하고 청년이기도 한 사내. 그 역시 사회에서는 멀어진 사람. 즉 이 시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쇠락한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가장 아름다울 때는 언제였을까? 그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 가장 아름다울 때는 서로가 서로를 받쳐줄 때다. 그럴 때 사랑하는 이는 없었다. 아니 사랑하는 이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기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핍된 존재들이 서로 기대며 서로를 인정할 때 가장 아름다울 때일 수 있다. 이렇게 시극은 빠르게 진행된다. 짤막한 대사들로 눈 내리는 날, 파출소에서 각자 떠밀린 삶을 산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서로에게 기대게 된다.

 

결핍을 서로 보듬으며 이들이 가는 곳, 그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곳이 가장 낮은 곳일테니...

 

이런 대사가 나온다.

 

김씨 : 사람은 바닥에 닿으면 그때서야 자신의 가슴이 가장 따뜻하다는 걸 배우죠. (129쪽)

 

자신이 가장 낮은 곳, 가장 힘든 상황에 있을 때에도 자신의 가슴은 따뜻하다는 것, 그렇게 서로를 보듬을 수 있다는 것, 사람에게는 어쩌면 잘 나갈 때가 아니라, 그 시절을 지나 쇠락에 접어들었을 때 따스한 자신을 찾고, 느끼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무거운 분위기임에 분명한데, 작품은 경쾌하게 읽힌다. 작품을 읽으면서 장면을 머리 속에 그리고, 그리고 낮은 곳에서 따스함을 발견하게 된다.

 

김씨의 얼굴에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 밑을 보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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