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인간. 이 시간을 거스를 수가 없다.

 

  시간을 거스르면서 살아남은 존재는 신이다. 성인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들. 그들에게는 시간조차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노자가, 장자가, 예수가, 부처가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존재가 되기에는 너무도 시간에 얽매여 산다. 시간은 우리 삶에 알게 모르게 들어와 우리의 일부가 된다.

 

  시간을 깨닫는 어느 순간, 그 순간은 우리 삶의 전환점이 된다.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시간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최승자 시집을 읽다가 시간이 시인에게 너무도 강하게 다가왔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다가오면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데...

 

죽음을 생각해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하지만 결국 죽음과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

 

  쓸쓸해서 머나먼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박삭이 살던 세계

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박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

 

(저기 기독교가 지나가고

불교가 지나가고

도가(道家)가 지나간다)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올시다

 

최승자, 쓸쓸해서 머나먼, 문학과지성사. 2013년 초판 10쇄. 7쪽.

 

이 세계가 먼 세계다.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하는 일상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런 존재에게 이 세계는 너무도 멀고 먼 세계다.

 

노자, 장자, 예수가 살았던 세계라고 하지만 우리 역시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세계이기도 한데, 이들이 도달한 세계는 아득해서, 너무도 멀어서 도달할 수가 없다. 이 세계에 가더라도 곧 돌아올 수밖에 없다. 

 

괄호 안에 있는 종교들이 지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 삶에 왔다가 가는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결국 성인들, 신적인 존재들에게 시간은 의미가 없겠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시간은 너무도 중요하다.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 시간 속에서 허우적대서는 안 된다. 시간은 잠시 우리가 다녀와야 할 곳, 그 다음에는 삶을 살면 된다.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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