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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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책. 그러나 읽지 않았던 책. 어렸을 때 읽었던 로마 관련 책들로 만족하며 지낸 시간이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그리스인 이야기를 읽고, 또다른 그리스인 이야기를 읽고, 여기에 우연찮게 그리스인인 카잔차키스가 쓴 자서전을 읽고, 그리스 신화에 대해서 한번 주욱 훑어보고, 이제는 로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리스 다음에는 로마다. 그리스-로마 신화라고 붙여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시대가 끝나갈 때 트로이 멸망이 나오고, 이 트로이에서 탈출한 아이네이아스가 이탈리아에 상륙해 로마인의 시조가 된다는 그런 서사시도 있으니, 로마에 대해서 읽어볼 차례다. 물론 예전이 읽은 로마 관련 책도 있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도 있었고, 어린 시절 너무도 감명 깊게 읽었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도 있었고, 기타 등등 여러 책이 있었지만,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는 또다른 세계로 날 인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스인 이야기'에서도 사람을 중심으로 역사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 책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가 인물을 중심으로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 역사를 좀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지 않은가. 지금 읽어도 그리 손해볼 것은 없는 책이지 않은가. 이제 천천히 올 한해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1권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렇다. 로마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겠는가. 온갖 우연들이 모여 필연이 되어 세계 최강대국이 되지 않았겠는가. 이탈리아 반도에서 아주 작은 도시 국가에 불과했던 로마가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제국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찌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겠는가.

 

시오노 나나미는 '아이네이아스' 이야기를 끌어들인 것을 로마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좀더 길게, 그리고 정통성 있게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이야기한다. 신화와 역사의 차이. 그러나 신화는 곧 역사가 된다. 사람들이 믿고 자신들 민족의 신념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로마인은 기원전 753년에 로마를 건국한 것은 로물루스이고, 그 로물루스는 트로이에서 도망쳐 나온 아이네이아스의 자손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리스와 교류를 갖기 시작한 뒤, 로마인은 트로이 함락이 기원전 13세기 무렵의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로마인은 400여 년의 공백을 메울 필요에 쫓겼지만, ...  (20-21쪽)

 

이렇게 표현한 것은 아이네이아스로부터 로물루스까지 수많은 왕들의 이야기를 로마인들이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신화를 역사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이 뭐가 중요하랴? 실질적인 로마 창건자는 로물루스이고, 그것은 기원전 753년이라고 하니...

 

로물루스로부터 시작한 로마는 약탈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아내들을 사비니 족으로부터 약탈해온 로마인들. 초기 왕들이 주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는 것 (참 신기하게도 이 시대에는 사람들 수명이 짧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로마 초기 왕들을 보면 재위 기간이 보통 30년이다. 왕이 될 때가 보통 30대일텐데... 기본적으로 70까지는 살았다. 고대 인간들의 수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처음 장면들이기도 했다) 은 이런 약탈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데 그럼에도 왜 로마는 계속 융성했을까?

 

약탈만을 일삼았다면 결코 융성할 수가 없었을텐데... 이 책에서는 플루타르코스의 말을 빌려 로마가 융성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패자조차도 자기들에게 동화시키는 이 방식만큼 로마의 강대화에 이바지한 것은 없다."   (39쪽)

 

이렇듯 로마는 개방성, 포용성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고 한다. 승리한 다음 무조건 죽이거나, 배제하거나 하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주거나 또는 살길을 열어주는 방식. 그러니 로마가 승리하더라도 패한 쪽에서는 로마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 노예조차도 해방시켜주고, 해방된 노예 자식들에서는 능력만 있다면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하니...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시대보다는 한참 뒤로 가지만 영화 "벤허"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노예로 잡혀간 벤허가 해방되어 유산을 물려받고 다시 행세하게 되는 그런 일들, 그것이 영화에서 만들어진 장면이 아니라 로마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정리한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갈리아인)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투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이들 민족보다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개방적인 성향이 아닐까. 로마인의 진정한 자기정체성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이 개방성이 아닐까.  ......

 

고대 로마인이 후세에 남긴 진정한 유산은 광대한 제국도 아니고, 2천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서 있는 유적도 아니며,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상대를 포용하여 자신에게 동화시켜 버린 그들의 개방성이 아닐까. (278-279쪽)

 

이렇게 로마인의 장점을 이야기한 다음, 현대인을 비판한다. 그래, 지금 현대 제국들은 어떤가? 그들은 개방을 표방하면서도 폐쇄를 택하고 있지 않은가. 말로는 지구촌이라고 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문을 꼭꼭 닫는 더욱 폐쇄적인 정책을 펴고 있지 않은가.

 

눈으로 보이는 장벽들 말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계가 하루에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음에도, 오히려 더 폐쇄적이 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이 말은 마음을 때린다.

 

우리 현대인은 어떠한가. 그로부터 2천 년 세월이 지났는데도, 종교적으로는 관용을 베풀 줄 모르고, 통치에 있어서는 능력보다 이념에 얽매이고,다른 민족이나 다른 인종을 배척하는 일에 여전히 매달리고 있다. (279쪽)

 

남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역사를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여기를 돌아보는 눈을 갖는 것. 지금-여기를 바로 파악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 로마인 이야기 1권은 이점을 더 생각하게 한다. 아주 먼 과거에서 현재를 보고, 미래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이 책은 로마 건국에서부터 약 500년의 세월을 다루고 있다. 책 제목답게 인물을 중심으로 로마 역사를 풀어가고 있어서 흥미진진하다. 다만 흥미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여기를 바라보게도 해주고 있으니, 지구촌 또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로마 건국 시기가 머언 과거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사적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 역할도 하고 있다.

 

또 인물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리스 민주정치와 로마의 정치제도를 비교하기도 한다. 지금 관점에서 옛날 정치체제를 판단하는 것이 의미가 없음을, 고대 역사학자들은 그리스 민주정치의 아버지라 불리는 페리클레스와 로마를 다시 제정으로 이끈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를 거의 동등한 업적을 이룬 정치가로 보고 있음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는 그리스에 어울리는 정치제도를, 로마는 로마에 어울리는 정치제도를, 그리고 그 시대 정치제도에 걸맞는 훌륭한 인물들이 등장했음을, 그것이 바로 한 나라가 융성하기 시작할 때쯤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이런 우연들이 결국은 역사라는 필연으로 이끌었음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다음 권으로 계속 여행을 하자...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그러나 끈기있게. 로마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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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18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이 책 때문에 결국
로마까지 갔던 기억이 나네요.

오랜 시간을 들여 완독한 기억입니다.

팔라티노 언덕에서 감회가 무량했다는.

지금은 작가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아예 끊게 되었지만요.

kinye91 2019-02-18 19:40   좋아요 0 | URL
저도 천천히 완독해 볼 작정입니다. 그냥 제목만 알고 넘기기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카알벨루치 2019-02-18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카이사르 이후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멈춘 기억이 납니다 레삭매냐님 로마까지 움직이시다니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