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
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 지음, 이도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플'이라는 말과 '악플러'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어떤 글에 상대를 비방하는 댓글을 악플이라고 했다. 악플을 다는 사람들을 악플러라고 했고.  이 악플로 마음 고생한 사람들뿐이 아니라 목숨을 끊은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악플에 대항하는 운동인 '선플'운동도 벌이고 했었는데...

 

인터넷,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다. 자신의 존재를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람들 사이에 소통의 폭을 넓혀줄 매체로 인터넷을 이야기한 이유다.

 

하지만 모든 발명품은 사람들 뜻대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핵폭탄을 전쟁을 끝내기 위한 평화를 위한 수단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어디 그런가? 오히려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너무도 공포스러운 무기가 되지 않았던가.

 

해충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해 주어 먹을거리 걱정 없게 해주었다는 농약은 어떤가. 생태계를 파괴해 해충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에게도 재앙이 되고 있지 않은가. 특히 암을 유발하거나 온갖 질병을 일으키고 있으니...

 

여기에 유전자조작식물들은 어떤가? 우리들 먹을거리 걱정을 해소해 주기는커녕 다국적기업만 살찌우고, 우리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게 만들었지 않은가. 기술발전이 인류를 꼭 좋은 방향으로만 이끌어가는 것이 아님을 많은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는데.

 

인터넷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기도 하다. 소통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인터넷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무기로 바뀌기도 하는 세상이니.

 

온갖 정보들이 날아다니는 인터넷에서 자칫 잘못하면 애매한 사람이 고통받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잘못이 없더라도 그 사람을 바보 만드는데 인터넷만한 매체도 없다. 순식간에 퍼지고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

 

좋은 의도로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고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러나 시작이 잘못되었다. 자, 학생들을 어떻게 이 사이트에 들어오게 하지?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학생들이 방문하지 않으면 학생들을 위한 사이트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다고 학생들은 이런 사이트에 별로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으면 또다시 사이트는 의미가 없어진다. 좋은 의도로 만들었지만, 학생들 방문이 신통치 않을 때, 이 때 할 수 있는 일이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내용을 싣는 것이다.

 

최악의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투표를 하게 한다. 조금 흥미가 생긴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간 사이가 좋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좋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게다가 교사-학생 간에는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많고 또 어느 정도 인기투표 역할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가 있다.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 나쁜 선생님을 투표하게 했다. 첫 시작을 그렇게 하면 남을 트집잡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

 

곧 '릴리'라는 여학생을 공격하는 글이 올라온다. 한 사람에 대한 공격이다. 판단을 어떻게 해야 할까? 표현의 자유를 무한히 허용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글을 삭제해야 할까? 그것이 검열일까?

 

이런 갈림길에 선 사이트 운영자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기로 한다. 표현의 자유, 이것이 곧장 '혐오 표현의 자유'로 넘어가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불구경과 남 싸움 구경이라고 하겠는가. 그만큼 남을 비방하는 글은 쉽게 퍼진다.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는데.

 

혐오 표현까지도 표현의 자유라고 허용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아니라고 한다. 아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는 상대에게 악의를 지니고 또는 악의를 지니지 않더라도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것은 범죄다. 분명 혐오 표현은 범죄다. 이런 인식을 하면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된다.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혐오 표현... 그것이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한 복수라고 해도 정당할 수는 없다. 그것도 과거에 살이 쪘다는 이유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비방을 하니, 이는 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이를 운영자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내버려둔 것도 문제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서 결국 피해자는 견딜 수 없어서 도망치고, 경찰이 개입하게 된다. 경찰이 개입하더라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이 될까?

 

그렇지는 않다. 다만 소설은 해결이 될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성격의 사이트를 만드는 것. 여기서는 토론 사이트를 만든다. 토론을 하게 하고, 운영자들은 혐오 표현이 들어가나 들어가지 않나를 살피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인터넷을 떠나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하는 것. 자고로 사과는 서면으로는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터넷으로도 마찬가지고. 방송으로도 마찬가지다. 직접 가서 얼굴을 맞대고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다음 관계를 만들어갈 수가 있다.

 

읽으면서 우리나라 '서동요'가 생각난 것은 왜일까? 서동이 선화공주와 결혼해 잘 살았다더라로 끝나는 설화, 설화, 아주 옛이야기니까 망정이지, 사실 선화공주 처지에서는 비방을 당하고 쫓겨나는 계기가 바로 서동요 아니던가. 그야말로 잘못된 사실이 또다른 악플들과 만나 인생을 바꾸게 되는 계기. 그만큼 사람들 입은 무섭다.

 

익명의 공간인 인터넷에서는 더 무섭다. 그들은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거의 스마트폰 속에서 사는 요즘 세대. 한 번 읽어보면서 자신은 어떤 스마트폰 생활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