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가 여기까지 치고 나올 줄은 몰랐다. 교육을 말한다는 잡지들 가운데 이런 주제까지 다룰 정도라면, 그것도 이런 식으로 다룬다면 민들레는 100호가 넘는 지금까지도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고 해야 한다.

 

  이번 호 기획은 '아이돌'이다. 사실 아이돌에 대해서는 상반된 입장이 있다. 아이돌을 열렬히 옹호하는 청소년 집단과 아이돌에 대해서 상업화된 상품에 불과하다고 폄훼하는 몇몇 어른 집단, 그리고 아이돌이 뭔데? 하며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집단.

 

  민들레가 표방하고 있는 이념이 무엇인가.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 아니던가. 스스로 서는데, 과연 아이돌은 스스로 섰는가라는 질문을 하면 예전에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아이돌 초창기에는 기획사를 통한 만들어짐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아무리 학생들을 틀에 맞춰 만들어내려고 해도 어디 그런가. 학생들은 그런 학교에서 탈주를 감행하지 않았던가. 자기들만의 삶을 찾아서.

 

탈주를 감행한 학생들로 인해 공고했던 학교의 틀도 어느덧 유연해지고 있지 않았나. 그렇다면 기획사가 만들어냈다고 하는 아이돌들은 어떤가. 이들이 내내 기획사 의도대로만 움직이는가. 아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기획사의 음악을 넘어 자신들의 음악을 하는 존재로.

 

이런 성공사례로 방탄소년단을 들고 있다. 단지 방탄소년단만이 아니다. 요즘 아이돌은 스스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선 다음 이제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서로를 살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요즘 아이돌이다.

 

그런 아이돌을 기존 잣대로만 평가한다든지, 자기가 지니고 있는 선입견의 틀에만 집어넣고 본다면 문제가 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학생-학부모-교사가 교육의 주체라고 하면서 학생을 소외시켜왔던 것이 현실 아닌가. 그런 현실에서 학생들은 자기 목소리를 스스로 내기 시작했고, 학교에서 더이상 할일이 없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나가 생활하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아이돌들 역시 자기들 음악을 하게 되었고, 그런 아이돌들을 편견을 지니고 보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아이돌을 아이돌이라고, 그들을 하나의 음악인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번 호를 읽으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갈 것이다.

 

함께 사는 사회에서 어느 특정 집단을 특정 집단으로만 규정짓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학생이라고 말하기 전에 사람임을 먼저 인식하고 행동해야 하듯이, 아이돌이기 이전에 음악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가 지닌 편견을 많이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편견을 씻어내도록 하는데 민들레 118호가 도움을 주었다. 단지 아이돌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대안학교가 20년이 지났는데, 그런 대안학교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 모색에 대해서 고민을 한 글(양희규, 대안학교의 진화는 가능할까)과 학교 밖 아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글(양영희, 학교 밖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등등이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능 개편안 때문에 시끌시끌하다. 어떤 개편안이 나와도 아마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하리라. 지금과 같은 교육제도가 지속된다면... 지금과 같은 사회가 지속된다면 말이다.

 

그래서 수능 개편안은 사회와 교육제도의 변화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교육 변화, 사회 변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잡지가 바로 '민들레'이기도 하고.

 

민들레 읽기 모임이 꽤 있나 보다. 책에 보면 많은 지역에서 읽기 모임을 하고 있으니... 이런 읽기 모임이 더 번져 나간다면, 교육 개혁이 단지 수능개편으로만 치우치지 않는 그런 정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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