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이라고 했다. 문익환 목사 호가 바로 '늦봄'이다. 봄이 오는데 천천히 온다는 뜻인가. 아니면 늦더라도 봄은 온다는 뜻인가. 그도 아니면 남보다 앞서서 봄을 즐기지 않고 남들이 즐긴 뒤에야 봄을 즐긴다는 뜻인가.

 

  하여간 봄은 봄이다. 문익환 목사가 꿈꾸었던 통일이 봄이라면, 참으로 늦게 온 봄이다.

 

  통일을 위해 노력하다가 스러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통일은 여전히 오지 않고 있는데, 그럼에도 통일이 어느 날 우리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면, 통일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오는 것이 아니라면, 열매를 맺기 위해 겨울이 주는 혹독함을 견뎌야 하고, 봄에 겨울의 상흔을 씻고 준비를 하고, 여름 더위와 비바람을 견뎌야만 하듯이 통일은 그렇게 천천히, 느지막히 오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 사이를 돌아다니다 문익환 목사 시집을 보게 됐다. 그러고 보니 문익환 목사가 태어난지 년 100년이 되는 해다. 1918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2018년은 탄생 100년이 되고도 한 해가 지난 해다.

 

그가 살아간 해를 생각해 보면 일제시대를 거쳐 분단과 전쟁, 독재와 민주화 시대를 두루 거쳤다. 한마디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살다 간 분이다.

 

목사였기에, 목자가 되기 위해서 민중을 위해서 앞장 섰던 분이기도 하다. 시인 윤동주의 친구이기도 해서, 윤동주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노력한 분이기도 하다. (이 시집에 '동주야'라는 시가 실려 있다)

 

또한 통일을 위해 노력한 분이기도 하고... 통일을 위해서 북한을 방문하기도 해서 고초를 겪기도 했던 분.

 

이 시집 첫머리가 바로 '잠꼬대 아닌 잠꼬대'다. 이 시에서 북한에 가겠다고 선언을 한다. 단지 시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문 목사는 이를 실천했다.

 

시 첫부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생략)

 

문익환, 두 하늘 한 하늘, 창작과비평사. 1996년 초판 4쇄. 3쪽

 

그리고 정말로 방북을 했다. 통일운동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때였다. 비록 감옥에 가더라도, 북한에 갈 수 있음을 몸으로 보여줬다.

 

문 목사가 꿈꾸었던 일들이 지금 하나둘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 현실이 되고 있다.

 

훈데르트 바서가 했다고 했나, 혼자서 꿈을 꾸면 꿈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고...

 

문익환 목사의 꿈만이 아니라 우리들 꿈이 모이고 모여, 잠꼬대 아닌 잠꼬대들이 모여 이제는 우리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통일은 천천히 오고 있다.

 

'늦봄' 문익환... 여전히 봄은 오지 않았지만, 오고 있다. 늦더라도 봄은 온다는 믿음이 있다. 이 시집에 실린 것처럼 통일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업다.

 

      (전략)

통일이라는 것도 그러고 보면

별로 대단한 게 없군요

형님하고 나하고 오다가다

북청이나 단천쯤 어느 주막에서 만나

술자리 한판 떡벌어지게 차리고

마시다 마시다 곤드레가 되는 일이군요

       (생략)

 

문익환, 두 하늘 한 하늘, 창작과비평사. 1996년 초판 4쇄. '문석이 형님' 부분. 98쪽.

 

그렇다. 이런 게 통일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평양냉면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평양냉면 분점이 서울에 생기거나 또는 평양이나 그 어디쯤 가서 북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통일 아니겠는가.

 

하여 시인은 자유를 이렇게 노래한다.

 

        (전략)

황주에서 꿀맛 같은 홍옥을 사 먹고

평양에 가서 냉면 두어 그릇 사 먹고

신의주에 가서 압록강 물에 참외를 씻어 먹는 맛 그게 자유란다

문석이형님을 모시고 목포에 가서 소주를 받아놓고

홍어 민어 광어 낙지회를 먹으며

회포를 푸는 일도 정말 눈물겨운 자유겠군요

       (생략)

 

문익환, 두 하늘 한 하늘, 창작과비평사. 1996년 초판 4쇄. '자유' 부분. 103쪽.

 

아직은 이렇게는 못하지만 이제 이산가족 상봉이 다시 시작된다. 만남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만남부터 점점 더 만남을 넓혀가면 된다.

 

한방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미 그것은 안 된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봄은 올테다. 분명 온다. 그러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냥 천천히 가면 된다.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

 

이것이 바로 '늦봄'이 바란 것 아니겠는가. 그가 있는 하늘은 이제 두 하늘이 아니라 한 하늘일 텐데, 우리도 한 하늘 아래서 살기를 그가 바라고 있지 않겠는가.

 

문익환 시집을 읽으며 요즘 한층 밝아진 남북관계를 생각하면서 봄이, 우리에게도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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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09: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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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1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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