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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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쩨르부르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단편소설 다섯 편이 묶여 있다. '코, 외투, 광인일기, 초상화, 네프스끼 거리'라는 소설이다.

 

이 중에 '코와 외투'는 많이 들어봤다. 그렇지만 제대로 읽은 적은 없다. 이 참에 읽어야지 하면서 읽었는데... 고골이 쓴 작품 중에 '감찰관'이 희곡으로서 지금 상황에도 잘 들어맞는다고 한다면, 이 소설집에 있는 소설들은 상당히 환상적이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소설로 쓰고 있는데, 소설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쓰는 이유는 현실의 어떤 면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코'는 무엇을 드러내고자 하는지 생각해야 하는데... 어느날 코가 없어진다. 그 코가 자신보다 높은 계급이 되어 나타나고, 코를 찾고자 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날 홀연히 사라졌던 코가 다시 돌아온다.

 

참 별 내용 아니다. 코가 없어진 사람, 그리고 다시 코가 돌아온 사람. 무엇일까? 코가 하는 역할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코는 얼굴 중심에 있다. 코 없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무언가 허전할 것이다. 여기에 코는 냄새를 맡는 역할을 한다. 냄새만이 아니다. 코는 성기의 역할도 대신한다. 그렇다면 코는 욕망을 의미한다.

 

코가 사라졌다는 말은 하급관리가 자기 욕망을 추구하기가 힘들어졌다는 얘기가 아닐까? 러시아가 근대화 되는 시기라고 하지만 여전히 고착된 신분 사회다. 그런 신분 사회에서 다른 계급으로 신분 상승을 하려는 사람은 좌절할 수밖에 없음을 '코'를 통해서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것은 '외투'도 마찬가지다. 외투는 겉옷이다. 겉옷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하급관리가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새 외투를 장만했고 그것에 매우 만족하고 즐거워하지만 그는 곧 외투를 빼앗기고 만다. 그리고 죽는다. 죽은 그가 유령이 되어 나타난다는 설정.

 

외투, 계급을 상승시키려는 욕망, 좌절. 코가 없어지고 외투를 빼앗기고. 하급관리들은 그 자리에서 그렇게 살아가야만 한다. 다른 욕망을 품으면 죽거나 상실하고 만다.

 

아마도 코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그가 다른 계급을 욕망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테고, 외투를 빼앗긴 하급관리가 유령이 되어 다른 사람, 그것도 고급관리의 외투를 빼앗은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곪아버린 사회가 터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도 하지 못하는 하급관리는 미쳐버리고 만다. '광인일기'다. 그는 욕망을 실현할 수가 없다. 자신의 성적 욕망도 실현하지 못하고, 신분 상승이라는 욕망도 실현하지 못한다. 정신병원에 갇힐 수밖에 없다. 닫힌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단 생각이 든다.

 

이렇게 고골의 소설에서는 근대에 이른 러시아 사회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하급관리를 중심으로 소설을 이끌어가는데, 주로 그들은 파멸한다. 그것이 당시 러시아 모습이기도 하리라. 이런 혼란의 상태, 부패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 '네프스끼 거리'란 소설이다.

 

네프스끼 거리에서 일어난 일을 소설의 소재로 삼고 있는데, 창부에게 새로운 삶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자살한 화가와 독일인 유부녀를 유혹하려다 실패한 중위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아름다운 여자를 사이에 두고 일어난 일, 즉 젊은이들이 겪는 성에 대한 욕망, 여기에는 지성이 작동하지 않는다. 오로지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는 생각밖에 없다. 처녀든, 유부녀든 상관하지 않는다.

 

결국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하는 젊은이들이 개혁에 대한 열망이 좌절한 상태에서 육체적 욕망에 침잠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근대 소설에서 구한말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이 일제 시대에 들어서 개인적인 욕망 추구로 방탕한 생활을 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개혁이 좌절된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술과 여자 속으로 숨어든다. 그런 사회 모습을 고골의 소설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 성향이 다른 소설이 하나 '초상화'다. 인간이 지닌 욕망이 어떻게 작품에 나타나는가를 중심으로 소설을 읽을 수가 있는데,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2부를 읽으면 1부에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기가 더 쉬운데...

 

어쩌면 고골은 자본이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잠식하는지를 이 환상적인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초상화 주인공이 고리대금업자라는 사실이 2부에 나오니 말이다. 그리고 1부에서는 가난한 화가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서 얼마나 순수함에서 멀어지는지, 결국 그것이 자신을 파멸로 이르게 하는지, '자본'에 종속된 인간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화가와 초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은 사실이라기보다는 환상적이다. '카프카' 소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카프카 소설이 환상적이지만 거기서 우리가 끊임없이 현실을 불러낼 수 있듯이 고골의 소설들도 환상적이기에 읽으면서 오히려 현실을 환기할 수 있다.

 

현실과 멀어졌기에 현실을 바로볼 수 있게 한다고나 할까? 고골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사람이다. 그런 그는 자본주의 초창기에, 신분제가 강력했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 신분제가 서서히 붕괴되어 가는 시대에 살았던 그가 러시아 사회의 모습을 소설 속에 담았다고 할 수 있다.

 

공고한 신분제 사회에서 좌절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대두하는 자본의 횡포 앞에서 무력한 사람들의 모습을 이 소설집에서 만날 수 있다. 소설의 생명은 그 시대로 끝나지 않는다. 소설은 시대를 따라 유유히 우리 삶에 들어온다. 이것이 고골의 소설이 여전히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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