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가 살던 별 문학동네 청소년 36
김선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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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요즘 심심찮게 뉴스에 오르내리는 동물이다. 산 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사람이 사는 도심지까지 내려와 사람들을 위협하는 동물. 그래서 허가 받은 사람들에 의해 사살되거나 포획되는 동물.

 

메나 뫼라는 말이 산이라는 말이니, 멧돼지는 산돼지라는 말이다. 사람이 길들여서 집에서 가축으로 기르는 돼지가 아니라 산에서 자유롭게 사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이런 멧돼지가 사람 사는 곳으로 내려온다? 이유는 단순하다.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왜 먹을거리가 없을까? 그 이유도 명백하다. 사람들이 모두 치워버렸기 때문이다. 멧돼지가 살아가는 공간을 인간들이 하나하나 침범하고 그곳에 건물을 세우고, 숲을 밀어버리기 때문이다.

 

멧돼지도 인간들이 좋을 리가 없을텐데도 사람 근처로 내려오는 이유는 그들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 길을 막아놓아 살기 위해 내려오는데 유해동물이라고 피하고 또 죽이기까지 한다.

 

완전히 인간의 관점에서 보는 멧돼지다. 그런데 이런 관점을 사람에게 투영한다면 어떻게 될까? 힘있는 자들이 약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우리가 멧돼지를 바라보는 관점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잡아서 가두거나 눈에 띄지 않게 하거나 아니면 죽여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하는 생각. 그 이외에 다른 생각은 해보지도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이것이 이 소설 "멧돼지가 살던 별"을 읽으면서 멧돼지 취급을 받고 사는 '유림'이란 아이에게서 느낀 점이다.

 

아버지 홍기수는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한다. 자기가 아이에게 뭘 잘못했느냐고... 보호자로서 아이가 잘되게 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 것 밖에 없다고.

 

그 폭력이 철저히 자기 입장에서만 판단한다는 점을 생각지도 않는다. 그는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폭력을 휘둘러야지만 더 잘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이를 패면서 아이에게 쓰게 하는 것이 바로 '명심보감'이다.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마치 독재정권이 어떤 독재를 해도 국민들 먹고 살게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것처럼, 지금도 누구가 경제개발을 이루었다고 그가 저지른 폭력들은 별것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처음에 유림이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아빠에게 맞으면서 지내듯이, 그렇게 국민들도 지낼 수 있음을... 결코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면.

 

눈 뜨고 행동하는 사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다행히 유림이 곁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 유림이는 캄캄한 세상에서 밝은 빛을 보게 된다.

 

밝은 빛을 본 사람은 시커먼 어둠 속에서만 살 수 없다. 이제 그 어둠에서 나와야 한다. 유림이가 목숨을 걸고 아빠에게서 탈출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런 유림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물, 멧돼지 산바가 등장한다. 소설의 처음-중간-끝에 산바는 유림이와 또 유림이를 돕는 주호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동물로 등장한다. 그 역시 유림이 아빠 홍기수에게 자식을 잃고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슬픔들이 모여 서로 공명하여 관계를 이룬다. 이들은 공존할 수 있다. 서로를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것.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이들은 서로 마음이 통한다. 마음이 통하니 대화를 할 수 있다.

 

대화가 없는 곳에서 폭력이 이루어진다.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정권이 독재를 하듯이, 대화가 없는 집에서 폭력이 일어나듯이, 홍기수 역시 대화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대화를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이용당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런 폭력, 홍기수와 같은 직접적인 폭력은 이 사회에선 더이상 용납이 되지 않는다.

 

홍기수가 죽음으로 사라지는 이유는 그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더 큰 권력 '박대령'은 어떻게 되는지 나오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도 않지만 그래도 그는 세련된 폭력으로 살아남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런 세련된 폭력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경제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있는지도 모른다.

 

또다른 주인공 류화신은 홍기수와 같은 드러난 폭력에는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숨어 있는 세련된 폭력과 싸우기는 힘들다. 그래서 어쩌면 이를 피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는 일. 유림이 일을 통하여 류화신은 변한다. 아마도 그는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도 하겠지만, 세련된 폭력과 맞서는 일에도 참여할 것이다. 그것은 사랑으로 공존하는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류화신은 지금 삼청교육대로 추정되는 정화학교에서 3개월을 교육받는다. 무참한 폭력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류화신이 쓴 것도 바로 '명심보감'이다. 공권력이 얼마나 이런 책들을 이용했는지. 좋은 말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얼마나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명심보감'이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에게 쫓겨나는 멧돼지, 아빠의 폭력에 죽어가는 아이, 가정이 해체되어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년, 그리고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어른이 함께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소설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결국 멧돼지별로 가버린 산바지만, 그래서 멧돼지가 살던 별이 된 이곳이지만, 이제는 사랑으로 함께 공존하는 그런 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대화를 하지 못하는 상황, 얼마나 비극적인지, 그리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서로가 마음을 열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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