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243페이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던 인물이 염영숙이다. 죽어가는 상권이지만 편의점을 하나 가진 그녀가 노숙자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게, 선뜻 가능한 일일까? 아무리 도움을 받은 상황이라고 해도, 나는 그녀의 결정이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염영숙은 기차 안에서 자기 파우치가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파우치 안에는 그녀의 신분증과 지갑, 통장 등 모든 것이 담겼다. 어디서 잃어버린 것일까 궁금할 무렵에 그녀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녀가 기차를 타기 전 머물렀던 서울역으로 되돌아가서 만나기로 한 분실물 습득자. 통화상으로 가늠할 수 없던 상대방은, 막상 만나고 나니 노숙자였다. 그녀의 파우치를 끌어안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숙자의 면면을 살핀 그녀는 타이밍 좋게 그만둔 편의점 야간 알바 자리에 그를 배치한다.


그럴 수도 있지. 외모 말고 내면을 본다면, 노숙자 이력이 있어도 성실하다면, 노숙자 독고 씨를 고용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 잠깐을 보고 사람을 판단할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염영숙의 선택을 아직도 의심한다. 독고 씨의 현재를 봤기에, 오랫동안 서울역에서 노숙자로 살아왔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옷에 외모를 가진 그의 첫인상이 좋을 리가 없지. 그것도 물건을 팔고 편의점을 맡기면서 혹시나 하는 의심을 거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기다려 봤다. 그녀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걸 따지려면 독고 씨의 모습을 더 지켜봐야지.


점점 이상해지는 이 기분은 뭔가 싶을 정도였다. 독고 씨는 말을 더듬을 정도로 어수룩한 사람이었고, 덩치만 컸지 누구에게 당하는 것이 일상인 것처럼 보였는데. 처음 편의점에 등장했을 때도 모두의 혐오스러운 시선을 받았던 그가 점점 변해간다. 편의점 알바 사수가 된 시현 씨는 배움이 느린 그에게 천천히 일을 가르쳐준다. 독고 씨는 나름의 성실함으로 금방 일을 배우고, 사수의 감탄을 끌어내고야 만다. 아침 교대 알바인 오 여사는 여전히 독고 씨는 경계하고 무시하지만, 그녀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 앞에 있어 준 것은 독고 씨뿐이었다. 어디 동료들뿐이랴. 편의점의 손님들 역시 이상한(?) 독고 씨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점점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도대체 독고 씨, 당신의 능력은 무엇인가요?


오지라퍼 독고 씨가 한마디 할 때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뜨끔거리는지 모르겠다. 느리고 버벅대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고 싶게 하는 건 그의 진심 때문이겠지. 기억을 잃은 그가 되찾으려고 했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놓친 것, 그가 후회하는 것, 그가 이제야 다시 찾고 싶은 것이 그의 어눌한 참견에 다 담겼다. 그렇다고 그의 참견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도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느낌이 드는 건, 그의 더듬거리는 말투 때문이 아닐까.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고 살았던 그가 잃어버린 말을 되찾아가는 기분이었다. 그가 마주한 사람들도 무언가를 찾아가야만 했던 마음을 내비친다. 서로 윈윈하는 모양새다. 독고 씨는 잃어버린 기억의 퍼즐을 맞추면서 하나씩, 그에게 마음을 내비친 이들은 상처의 조각들을 맞추면서 하나씩. 독고 씨의 오지랖이 고마운 건 답을 알려주지 않아서이기도 한다. 이렇게 해보세요 하면서 그의 의견을 슬쩍 얹어놓는 것. 그가 눈여겨봤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전달하는 방식에 의미가 있다.


그가 놓친 것을 이렇게 되찾는 건가? 등장인물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다. 타인에게 선뜻 꺼내지 못한 마음을 끌어안고 산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여간 가슴 아프고 답답한 게 아니다. 염영숙은 수시로 아들의 전화에 시달린다. 편의점을 팔고 자기 사업에 투자해 달라고. 성실하게 일해서 먹고살 생각은 안 하고 허황한 꿈에 부풀어 사는 아들이 괘씸하고 안타깝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편의점 알바로 일하는 시현 씨는 정말 자기 목표가 공무원시험 합격이 맞는 건지 궁금하다. 지금도 나쁘지 않은데, 이대로 있자니 불안하기만 하다. 오 여사는 생계를 위해 편의점 알바를 뛴다. 알바가 아니라 생업인 거다. 몇 년째 시험 준비한다면서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게임만 하는 서른 살의 아들을 보는 게 괴롭다. 어디 이들뿐이랴. 편의점에 찾아와 매일 참참참 메뉴를 고르는 영업사원의 비애는 외로움이었다. (참참참 메뉴가 뭐냐고? 참깨라면에 참이슬에 참치김밥) 등단하면 다 된다고 여겼던 희곡작가에게는 절필 선언을 할 마지막 기회가 생겼고(작가 후기 보니 아마 이 부분은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건을 훔치던 소년에게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어떻게 이들의 괴로움을 없애고 삶의 희망을 되찾을까 싶었던 그때, 독고 씨의 한 마디가 답을 알려주었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죠? 너무 힘들어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독고 씨가 들어줘서 좀 풀린 거 같아요. 고마워요.”

그거예요.”

뭐가요?”

들어주면 풀려요.”

선숙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자기 앞에 선 사내의 말을 경청했다.

아들 말도 들어줘요. 그러면…… 풀릴 거예요. 조금이라도.” (108페이지)


진심을 기본으로 장착한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 그 문제 해결의 답이었다. 이들 모두 자기만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지만, 듣다 보면 눈에 보인다.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고, 누구도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여기는 순간 차단 스위치가 올라간다. 집에서, 사회에서, 자기 마음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가장 당황했을 이를 당사자였을 텐데, 옆에서 윽박지르듯 다그치는 말에 소통의 부재가 시작된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다니까 왜 그만둬? 어디서 그런 자리 구하겠어? 그런 사기에 빠져들지 말고 일하라니까?! 그거 아니니까 내 말을 들어!’ 근데 정말, 저렇게 생각하고 말하면서 우리는 당사자의 생각을 듣고 말한 적 몇 번이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상처받고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자기 의견만 말하고 그게 옳다고만 하면, 내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더 상처를 주게 되고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순간 멀어진다. 그렇게 점점 멀어지는 우리가 되겠지. 그러다 보면 우리는 이제 우리가 아닌 게 되고, 서로의 가슴을 더 할퀴는 일만 남는다.


그런데 독고 씨는 이 방식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조금씩 그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독고 씨는 자기가 놓친 것을 알아채고, 그의 이력만큼이나 똑똑한 머리로 이들에게 답을 던져준 것이다. 지금 틀어진 이 관계를, 더 늦기 전에 더 놓치기 전에, 마치 자기가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되돌려 놓으려고 애쓴다. 동료와 손님에게 꺼낸 말들은 아마 독고 씨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거다. 자기가 회복해야 할 관계의 주문이었을 테다. 그가 자기 과거에서 놓치고, 노숙자가 되기까지 절망했던 시간에, 그가 간절히 되찾고 싶었던 것은 실패한 관계였다. 누구나 바랐던 위로 한마디에, 제발 한 번만 들어달라는 간절함을 지나쳤던 순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후회는 또 다른 후회만 남길 뿐, 이제는 그가 타인에게 건넨 위로와 그가 타인에게 받은 위로와 믿음으로 다시 길을 나서야만 한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지난가을과 겨울을 보낸 ALWAYS 편의점에서, 아니 그 전 몇 해를 보내야 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 그들을 보며 혼잣말하며 서성였고 괴로워했으며, 간신히 무언가를 깨우친 것이다. (252~253페이지)


김호연의 동네 이야기 시즌 2’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소설이, 이렇게 따뜻할 줄 몰랐다. 시리즈의 첫 번째 도서인 망원동 브라더스를 아직도 읽는 중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 외 작품들을 다 읽었지만, 너무 강렬한 이미지가 더 많이 남아서 그런가. 이 작품 읽고 나니 미처 다 읽지 못한 망원동 브라더스를 빨리 완독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힘든 오늘을 위로받고, 불편하게 만들면서 은근 츤데레 스타일을 뽐내는 독고 씨를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웃음이 나고, 따뜻해지고, 무심하게 건넨 위로에 희망을 꿈꾸는 곳. 불편한 편의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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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1-06-07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이 작가의 <고스트라이터즈>를 재밌게 읽은 적 있어요.^^

구단씨 2021-06-08 22:46   좋아요 2 | URL
그쵸? 다른 작품도 재밌어요. 의미 있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요. ^^

초딩 2021-07-08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1-07-09 22: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이 작가분 책 재밌어요. 기회 닿으시면 한번 만나보셔도 좋을 듯해요.
 



혹시 점빵이라는 단어를 아시는지? 어렸을 적에 아빠가 점빵에 가서 뭘 좀 사 오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기억하는 걸 보면 아마 자주 들었던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구멍가게 관련된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이 나서 초록창에 찾아보니 이런 의미를 말해준다. ‘전방(廛房).(명사)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가게.(같은 말), 전포(廛舖).(비슷한 말), 점방(店房, 가게로 쓰는 방)’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마 점방을 센 발음으로 하다가 점빵이라고 불리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 실제로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가게가 일터였고 집이었다.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살림하곤 했다. 먹고 자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숙제도 하면서. 취미 삼아 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지는 공간이었을 테다. 책을 읽다가 새삼 알게 된 사실은 구멍가게를 운영한 대부분이 여성이었다니, 농사가 생업이던 시절에 부족한 수입을 채우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르겠고, 농사를 지을 수 없던 형편에 구멍가게라도 해야만 했을 테고, 어쩌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시도해볼 만한 생계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경 작가의 책을 보면서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하곤 했다. 어느 시골길에서 마주칠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 구멍가게는 버스정류장이 되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작은 포장마차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해소해주면서 군것질 천국이었고,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나의 성장기에도 다르지 않을 그곳이 있었다.


집에서 나오면 바로 골목이 있고, 그 골목은 조금 걸어가면 차가 다니는 큰길, 그 큰길 모퉁이 자리했던 00상회. 뛰어가면 5초도 걸리지 않을 그곳에 드나드는 게 즐거움이었다. 과자, 아이스바(그땐 하드라고 불렀지), 음료수, 각종 반찬거리. 요즘의 마트와 편의점의 기원이라고 해도 되겠다. 아이스바 하나에 50원을 내고 사 먹은 기억도 있다(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 나이가 참... ㅠㅠ). 지금이야 먹을거리가 다양해졌고, 그 다양한 먹거리를 접할 기회도 많지만, 어디 그 시절이야 그랬을까. 그냥 슈퍼마켓 운영하는 친구의 집이 부러웠고, 부모가 삼거리에서 짜장면집 하는 자식들이 부러웠다. 막연하게 생각했지. ‘, 쟤네들은 매일매일 가게에 있는,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니까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가난이 만든 바람이 아니었을까.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든 환상 같은 거 말이다. 지나고 보면 그땐 그랬지하는 라떼를 마시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생각할수록 가끔은 그리운 시절이다. 가난의 기억만 뺀다면 다시 돌아가도 좋은 시간.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20~23페이지>


이 책 세 권을 함께 읽으면서 처음 구멍가게를 바라보던 환상은 점점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경 작가의 책이 구멍가게의 추억과 즐거움을 소환하는 거였다면, 박혜진 심우장 작가의 구멍가게 이야기는 조금은 서늘한 현재의 풍경이 같이 담겼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의 속내와 사연들. 그들의 이야기 속 세월의 흔적으로 우리 현대사의 한 흐름을 본다. 어떤 물건은 저절로 기억하면서 오랜 역사를 이어왔고, 우리가 쓰는 말의 어원을 뜻밖의 곳에서 찾기도 했다. 많은 이가 먹고 살기 위해 구멍가게를 운영했고, 그마저도 운영이 쉬웠던 건 아니다. 이제는 변해가는 세상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 변화의 속도는 또 얼마나 빠른지. 구멍가게는 동네 슈퍼마켓으로 변하기도 하면서, 이제는 대형 마트나 편의점으로 그 모습을 바꿨다. 요즘에 가끔 지나가다 보면, 시골 마을 안쪽 구석에도 편의점이 있더라. 얼마나 놀랐던지. 어느새 구멍가게는 몇십 년의 세월을 건너와 편의점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구멍가게였던 때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로 말이다. 내가 아무리 변하지 않기를 바라더라도 꿋꿋하게 그 변화는 계속되면서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다.


<구멍가게 이야기 33페이지>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156~157페이지>


이상하게도 이 책들에 삽입된 사진과 그림을 보면서 뭔가 공통점을 느끼지 않았나? 바로 보이는 어떤 것들이 있더라. 구멍가게 옆의 우체통과 공중전화, 가게 문 앞이나 가게 앞 커다란 나무 그늘에 놓인 평상, 대부분 동네 어귀에 자리하면서 버스정류장의 역할을 했던 곳. 나에게도 즐거운 기억은 아니지만, 외상의 경험까지. 10대의 조카들에게 물으면 그게 뭐냐고 반문할만한 것들이 작가가 전하는 세월 속에 있었다. 지금 공중전화나 우체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말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사용할 수 있게 어느 거리 어느 자리쯤에 있는 공중전화. 이제는 우체국 앞에나 있는 빨간 우체통. 동네 슈퍼나 구멍가게가 사라져가고 있으니 그 앞에 자리했던 장판 깔린 평상을 더는 볼 수 없다. 편의점의 파라솔이 예쁘게 자리하고 있지. 분명 우리 생활은 편해졌고 불필요한 시간 단축하며 살아갈 방법은 많아졌지만, 세월 속에 자리한 어떤 느낌은 사라져갔다. 계속 사라질 것이다. 조급한 일상에 쉬어가는 느낌으로, 때로는 아날로그레트로를 찾곤 하겠지만, 그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겠지. 우리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갈 사람들이기에, 지나간 그 시간에 많은 부분 할애하며 살아가기에는 그 불안과 조급증은 심해질지도 모르니까.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에 같은 시대를 읽게 하는 책들이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로 위기를 느끼기도 하고, 추억하는 것들로 그리움을 쌓기도 한다. 이미경 작가의 글이 자라던 시절의 모습을 그리고 추억을 새기고 싶은 동화를 생각한다면, 박혜진 심우장 작가의 글은 쇠락해가는 골목의 현실과 생존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동시에 두 이야기 모두 사람 사는 냄새를 맡게 한다.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된다. 작가들이 직접 그곳에 가서 보고 들은 것들은, 그리고 쓰고 찍어낸 것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살아가는 이야기,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공간의 깊이를 더한다. 거기에 우리의 시간이 더해져 추억이라는 것을 불러내기에 이르곤 하지. 그 추억이 꼭 좋은 것만 담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립고 애틋하고 그렇더라. 나이 먹어가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암튼, 읽다 보면 기분 묘해진다.


숨어있는 듯이 시골 마을의 구석에 자리한 구멍가게들은,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남겼다. 작가들 역시 하루 이틀이 아닌 오랜 세월 찾아다녔던 구멍가게들을 소개하면서 감성에만 푹 빠져들지 않게 삶의 치열함을 불러온다. 심심풀이가 아닌, 시골에 살면서도 농사를 생업으로 할 수 없는 이들이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수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상을 주고도 돈을 못 받거나,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는 이들도 상대해야 하는 극한 직업. 그러니 구멍가게는 추억이나 감성에만 젖어있을 수 없는 모습도 갖고 있던 것이다. 약국이나 식당에서 팔던 담배가 이제는 구멍가게에서 살 수 있게 되고, 라면을 팔면서 가게 수입도 올렸지만 라면의 전성기를 함께 이뤄냈다고. 가게의 지붕 모양을 보고 건축의 변화도 가늠한다니. 구멍가게가 단순한 가게 이상의 존재로 남았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떤 구멍가게의 날들 164~165페이지>


건축은 시대를 반영한다. 내가 말하는 건축은 그 시대에 살았던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집과 공간이다. 과거의 터전이 낡고 오래되었다고 스스로의 터를 죄의식 없이 갈아엎고 부순다면 진짜 사라지는 것은 우리의 과거요, 추억이요, 고향이요, 자아일 수 있다. 반세기동안 근대화와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낡고 오래된 옛것을 우리의 삶에서 지우고 감추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이전보다 따뜻하고 배부른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도 많다.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복원과 보존으로 우리 삶의 근본과 맥락을 찾아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164페이지)


무슨 박물관에 전시된 역사의 한 장면처럼, 구멍가게도 그 역사를 가진 존재가 되었다. 찌그러진 막걸릿잔에 이야기가 배었고, 출입문 문턱이 닳은 만큼 사람들의 시간이 녹았다. 동네 택배 업체가 되고, 돈이 오고 가는 거래소가 되고, 어른들의 놀이 공간도 되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이다. 시골 마을의 구심점이 되어 그 역할이 다양했다고 하니, 그런 공간이 점점 사라져서 거의 볼 수 없게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다양해지는 삶만큼 각자의 인생이 우선이 되는, 타인과의 교류 시간을 갖는 것보다 나를 위한 시간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굳이 한 공간에 모이지 않아도 가능한 교류의 방식이 얼마나 다양해졌던가.


<구멍가게 이야기 252페이지>


실제로 마을을 답사하며 담아낸 이야기에 구멍가게 고유의 역할을 듣는다. 구멍가게가 구판장, 00상회, 슈퍼마켓, 마트, 편의점이 되어가는 흐름도 읽는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생존의 방식을 이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마을의 중심이 되어 머물 거로 여겼던 구멍가게는, 어느 날 다시 찾아가니 사라져버린 곳도 많았다고 한다. 굳이 작가의 말이 아니어도 그 사라짐의 순간은 우리가 자주 본다. 내가 자란 곳에서만 해도, 집 앞의 슈퍼마켓은 사라져 빈 가게가 되었다. 정육점은 폐점했고, 노인이 운영하던 약국도 사라졌다. 이 약국은 의료분업이 되면서 동네 어르신들의 경로당 역할을 했었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니 다른 이가 다른 가게를 운영한다. 생각해보니 거의 다 사라져가는 것들뿐이네. 아쉽고 그립다. 필요한 게 있으면 아무 때나 가면 되는 편의점도 가까이 있고, 대형 마트에서 카트 한가득 장을 보고 오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그 자리에 머물기 바라는 것들이 사라질 때면 그 빈자리가 가슴에 생긴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건, 남아 있기를 그렇게 바라면서 정작 그 장소를 이용할 생각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서, 자꾸 깨끗하고 편한 것만 찾아다니곤 했지. 하아...


구멍가게의 과거와 현재는 이제 어떤 미래로 흘러갈지 궁금하다. 그 미래의 시간에 우리는 또 어떤 기억을 소환하며 오늘을 추억하게 될까. 어떤 모습을 마주하더라도 미래에 기억할 오늘의 시간이 씁쓸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속되는 삶에서 고단한 시간에 위로가 되는 기억으로 남아주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 우리 옆에 있는 것들을 더 들여다보게 된다. 이것들이 나중에 어떻게 남아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소소하지만 의미 있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아름답게 빛바래져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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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01 12: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구멍가게의 기능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편의점들만 있어서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드네요. 점점 삭막해지는 거 같은 ~~ 그래도 이렇게 글로 보니까 좋네요^^

구단씨 2021-06-01 13:57   좋아요 5 | URL
얼마전에 시골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자리에서 편의점 불빛이 반짝반짝...
구멍가게나 동네 슈퍼마켓이 사라져가는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오다니.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는 걸 새삼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붕붕툐툐 2021-06-01 2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골 가다 저런 점방을 만나면 완전 반갑더라구요~ 이제 진짜 몇 안 남았겠죠? 아쉽..ㅠㅠ

구단씨 2021-06-08 22:47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거의 다 사라져가는 느낌입니다.
저부터도 저런 가게 만나면 반가우면서도 선뜻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scott 2021-07-07 1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이달의 당선 추카!
요책들 찜했놨는데
7월의 땡튜로~*

새파랑 2021-07-07 16:43   좋아요 2 | URL
멋진 구멍가게 이야기~! 구단님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07-07 16: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구멍가게 이름이...^^

구단씨 2021-07-09 22:35   좋아요 1 | URL
제 연식이 나오는 건가요? ^^
어릴 적에 어른들에게서 많이 듣던 단어였어요. 단어의 어감이 세서 그런가 기억에 남네요.

서니데이 2021-07-07 16: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1-07-09 22:3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더운 주말인데, 즐겁게 지내세요.

초딩 2021-07-07 2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1-07-09 22:3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07-08 0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1-07-09 22:3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모나리자 2021-07-08 1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구단님~^_^

구단씨 2021-07-09 23:0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책 많이 만나고 싶어요. ^^

thkang1001 2021-07-08 14: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7월도 좋은 시간 되세요!

구단씨 2021-07-09 23: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더운 주말인데요. 편한 날 만드시길 바랍니다. ^^

황후화 2021-07-08 14: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박~~ 축하드려요 ~~

구단씨 2021-07-09 23: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얄라알라 2021-07-21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글이네요.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1-07-24 11:2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지금도 가끔 시골길 가다 보면, 지금은 볼 수 없는 장소들 만나면 너무 반가워요. ^^

맘속풍경 2021-07-2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골길 삼거리 앞 구멍가게의 마루에서의 여유로움이 문득 그립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그리운 점빵..
글 감사합니다~

구단씨 2021-07-24 11:29   좋아요 0 | URL
정말 그 가게 앞의 평상이 언제나 있었어요. 거기 앉아서 땀도 식히고, 어르신들 술도 한잔씩 하시고... ^^
그립네요.
 
















신간 알림 문자를 받고 소개 글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이 작품이 녹여낸 인간 본성을 또 한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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