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243페이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던 인물이 염영숙이다. 죽어가는 상권이지만 편의점을 하나 가진 그녀가 노숙자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게, 선뜻 가능한 일일까? 아무리 도움을 받은 상황이라고 해도, 나는 그녀의 결정이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염영숙은 기차 안에서 자기 파우치가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파우치 안에는 그녀의 신분증과 지갑, 통장 등 모든 것이 담겼다. 어디서 잃어버린 것일까 궁금할 무렵에 그녀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녀가 기차를 타기 전 머물렀던 서울역으로 되돌아가서 만나기로 한 분실물 습득자. 통화상으로 가늠할 수 없던 상대방은, 막상 만나고 나니 노숙자였다. 그녀의 파우치를 끌어안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숙자의 면면을 살핀 그녀는 타이밍 좋게 그만둔 편의점 야간 알바 자리에 그를 배치한다.


그럴 수도 있지. 외모 말고 내면을 본다면, 노숙자 이력이 있어도 성실하다면, 노숙자 독고 씨를 고용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 잠깐을 보고 사람을 판단할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염영숙의 선택을 아직도 의심한다. 독고 씨의 현재를 봤기에, 오랫동안 서울역에서 노숙자로 살아왔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옷에 외모를 가진 그의 첫인상이 좋을 리가 없지. 그것도 물건을 팔고 편의점을 맡기면서 혹시나 하는 의심을 거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기다려 봤다. 그녀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걸 따지려면 독고 씨의 모습을 더 지켜봐야지.


점점 이상해지는 이 기분은 뭔가 싶을 정도였다. 독고 씨는 말을 더듬을 정도로 어수룩한 사람이었고, 덩치만 컸지 누구에게 당하는 것이 일상인 것처럼 보였는데. 처음 편의점에 등장했을 때도 모두의 혐오스러운 시선을 받았던 그가 점점 변해간다. 편의점 알바 사수가 된 시현 씨는 배움이 느린 그에게 천천히 일을 가르쳐준다. 독고 씨는 나름의 성실함으로 금방 일을 배우고, 사수의 감탄을 끌어내고야 만다. 아침 교대 알바인 오 여사는 여전히 독고 씨는 경계하고 무시하지만, 그녀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 앞에 있어 준 것은 독고 씨뿐이었다. 어디 동료들뿐이랴. 편의점의 손님들 역시 이상한(?) 독고 씨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점점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도대체 독고 씨, 당신의 능력은 무엇인가요?


오지라퍼 독고 씨가 한마디 할 때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뜨끔거리는지 모르겠다. 느리고 버벅대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고 싶게 하는 건 그의 진심 때문이겠지. 기억을 잃은 그가 되찾으려고 했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놓친 것, 그가 후회하는 것, 그가 이제야 다시 찾고 싶은 것이 그의 어눌한 참견에 다 담겼다. 그렇다고 그의 참견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도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느낌이 드는 건, 그의 더듬거리는 말투 때문이 아닐까.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고 살았던 그가 잃어버린 말을 되찾아가는 기분이었다. 그가 마주한 사람들도 무언가를 찾아가야만 했던 마음을 내비친다. 서로 윈윈하는 모양새다. 독고 씨는 잃어버린 기억의 퍼즐을 맞추면서 하나씩, 그에게 마음을 내비친 이들은 상처의 조각들을 맞추면서 하나씩. 독고 씨의 오지랖이 고마운 건 답을 알려주지 않아서이기도 한다. 이렇게 해보세요 하면서 그의 의견을 슬쩍 얹어놓는 것. 그가 눈여겨봤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전달하는 방식에 의미가 있다.


그가 놓친 것을 이렇게 되찾는 건가? 등장인물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다. 타인에게 선뜻 꺼내지 못한 마음을 끌어안고 산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여간 가슴 아프고 답답한 게 아니다. 염영숙은 수시로 아들의 전화에 시달린다. 편의점을 팔고 자기 사업에 투자해 달라고. 성실하게 일해서 먹고살 생각은 안 하고 허황한 꿈에 부풀어 사는 아들이 괘씸하고 안타깝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편의점 알바로 일하는 시현 씨는 정말 자기 목표가 공무원시험 합격이 맞는 건지 궁금하다. 지금도 나쁘지 않은데, 이대로 있자니 불안하기만 하다. 오 여사는 생계를 위해 편의점 알바를 뛴다. 알바가 아니라 생업인 거다. 몇 년째 시험 준비한다면서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게임만 하는 서른 살의 아들을 보는 게 괴롭다. 어디 이들뿐이랴. 편의점에 찾아와 매일 참참참 메뉴를 고르는 영업사원의 비애는 외로움이었다. (참참참 메뉴가 뭐냐고? 참깨라면에 참이슬에 참치김밥) 등단하면 다 된다고 여겼던 희곡작가에게는 절필 선언을 할 마지막 기회가 생겼고(작가 후기 보니 아마 이 부분은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건을 훔치던 소년에게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어떻게 이들의 괴로움을 없애고 삶의 희망을 되찾을까 싶었던 그때, 독고 씨의 한 마디가 답을 알려주었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죠? 너무 힘들어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독고 씨가 들어줘서 좀 풀린 거 같아요. 고마워요.”

그거예요.”

뭐가요?”

들어주면 풀려요.”

선숙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자기 앞에 선 사내의 말을 경청했다.

아들 말도 들어줘요. 그러면…… 풀릴 거예요. 조금이라도.” (108페이지)


진심을 기본으로 장착한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 그 문제 해결의 답이었다. 이들 모두 자기만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지만, 듣다 보면 눈에 보인다.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고, 누구도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여기는 순간 차단 스위치가 올라간다. 집에서, 사회에서, 자기 마음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가장 당황했을 이를 당사자였을 텐데, 옆에서 윽박지르듯 다그치는 말에 소통의 부재가 시작된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다니까 왜 그만둬? 어디서 그런 자리 구하겠어? 그런 사기에 빠져들지 말고 일하라니까?! 그거 아니니까 내 말을 들어!’ 근데 정말, 저렇게 생각하고 말하면서 우리는 당사자의 생각을 듣고 말한 적 몇 번이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상처받고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자기 의견만 말하고 그게 옳다고만 하면, 내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더 상처를 주게 되고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순간 멀어진다. 그렇게 점점 멀어지는 우리가 되겠지. 그러다 보면 우리는 이제 우리가 아닌 게 되고, 서로의 가슴을 더 할퀴는 일만 남는다.


그런데 독고 씨는 이 방식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조금씩 그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독고 씨는 자기가 놓친 것을 알아채고, 그의 이력만큼이나 똑똑한 머리로 이들에게 답을 던져준 것이다. 지금 틀어진 이 관계를, 더 늦기 전에 더 놓치기 전에, 마치 자기가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되돌려 놓으려고 애쓴다. 동료와 손님에게 꺼낸 말들은 아마 독고 씨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거다. 자기가 회복해야 할 관계의 주문이었을 테다. 그가 자기 과거에서 놓치고, 노숙자가 되기까지 절망했던 시간에, 그가 간절히 되찾고 싶었던 것은 실패한 관계였다. 누구나 바랐던 위로 한마디에, 제발 한 번만 들어달라는 간절함을 지나쳤던 순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후회는 또 다른 후회만 남길 뿐, 이제는 그가 타인에게 건넨 위로와 그가 타인에게 받은 위로와 믿음으로 다시 길을 나서야만 한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지난가을과 겨울을 보낸 ALWAYS 편의점에서, 아니 그 전 몇 해를 보내야 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 그들을 보며 혼잣말하며 서성였고 괴로워했으며, 간신히 무언가를 깨우친 것이다. (252~253페이지)


김호연의 동네 이야기 시즌 2’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소설이, 이렇게 따뜻할 줄 몰랐다. 시리즈의 첫 번째 도서인 망원동 브라더스를 아직도 읽는 중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 외 작품들을 다 읽었지만, 너무 강렬한 이미지가 더 많이 남아서 그런가. 이 작품 읽고 나니 미처 다 읽지 못한 망원동 브라더스를 빨리 완독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힘든 오늘을 위로받고, 불편하게 만들면서 은근 츤데레 스타일을 뽐내는 독고 씨를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웃음이 나고, 따뜻해지고, 무심하게 건넨 위로에 희망을 꿈꾸는 곳. 불편한 편의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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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1-06-07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이 작가의 <고스트라이터즈>를 재밌게 읽은 적 있어요.^^

구단씨 2021-06-08 22:46   좋아요 2 | URL
그쵸? 다른 작품도 재밌어요. 의미 있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요. ^^

초딩 2021-07-08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1-07-09 22: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이 작가분 책 재밌어요. 기회 닿으시면 한번 만나보셔도 좋을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