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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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흔들 타이밍을 저격한다. 『댓글부대』

 

지난번에 본 영화 <내부자들>은 강했다. 동시에 아픈 영화였다. 정의와 진실이 이기기 위한 과정이 너무 험난했다. 권력자들의 욕심에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만들어진 진실에 거짓은 가려졌다. 끝내 그 진실이 드러나기 어렵다는 걸 보게 했다.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안상구는 자기 자리에서 끝없이 몸부림쳤다. 온갖 편법을 저지르고서라도 오르고 싶던 그의 인생은 노력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믿었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를 배신했다. 그 배신자들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언론을 주름잡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듯 모든 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던 장면은 어떻게 여론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여론이 어떤 힘을 가지게 되느냐, 이었다. 힘 있고 언론을 쥐락펴락하는 자에 의해 철저하게 사람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대중은 개, 돼지라며... 이런 내용의 영화가 비단 <내부자들>뿐이겠냐 마는, 언제 봐도 답답했다. 화가 나고, 정의가 실현되는 게 불가능할 거란 절망만 거듭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하게 되는 건, 그 여론이 어떻게 흔들리고 조작되어 한쪽으로 몰리는 힘을 가지는가 하는 거다. 그 배경에는 여론을 주도하려는 자들이 인간의 심리를 치밀하게 연구하는데 있다. 인간의 마음이 흔들리는 건 인간의 심리를 잘 알고 계획하여 흔들어버리고자 작정하는 또 다른 인간이 있어서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가도 금방 사라진다. '그게 가능하니까 이런 소설이 생기는 거 아닌가?' 라는 답을 끌어내고 있으니까. 궁금했다. 불분명하게 들어왔던 이런 이야기가, 허구라는 소설로 진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소설 『댓글부대』는 나의 그런 호기심에 대한 답을 더 분명하고 또렷하게 보여준다. 삼궁, 찻탓캇, 01査10. 이 세 사람이 ‘팀-알렙’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여론 조작은 놀라울 정도였다. 막연하게 그럴 것이다, 어딘 가에서부터 시작된 ‘카더라 통신’의 진실이 여기 있다. 조작된 진실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여론몰이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심리전의 고수가 어떤 표정으로 그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밑바닥은 다 똑같은 겁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인정 투쟁. 모두 가슴에 단도 한 자루씩 숨기고 있다가 기회만 생기면 팍! 그런데 저희들은 언제 사람들이 미쳐서 그 칼을 휘두르는지 그 타이밍을 알아낸 거죠. (77페이지)

 

온라인을 통해 어떤 이야기들이 얼마나 빠르게 멀리 퍼져나가는지 안다. 그런 방식을 알고 있는 이들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걸 건드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건의 흐름을 몰아간다. 그들에게 여론 조작은 쉬운 일이었다. ‘팀-알렙’은 처음, 특정 기업의 상품평과 후기를 거짓으로 작성하며 푼돈을 벌고, 점점 그들이 하는 일의 규모는 커진다. W전자 생산직으로 일하다 백혈병으로 죽은 노동자의 죽음을 그린 영화의 흥행을 방해하는 일을 의뢰받는다. 삼궁은 처음 의뢰받은 내용의 방향을 틀어 영화판을 배경으로 삼은 악성 루머를 퍼트리고, 영화 흥행 방해 작전에 성공한다. 그때부터 그들은 달라진다. ‘팀-알렙’ 멤버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들에게 힘이 생겼다고 믿는다. 위험한 생각이 이렇게 시작되고 고정된다. 그들에게 이런 일을 의뢰한 ‘합포회’와의 고리는 더 굳건해지고, 그들의 작전은 더 교묘해지고 위험해지며, 두려움과 죄의식까지 밀어내기에 이른다. 점점 커지는 의뢰들, 더 과감해지는 여론 조작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소설은 그들의 행보와 인터뷰 장면을 교차로 보여준다. 그들이 여론 조작을 어떻게 계속해나가고 있는지 서술하면서, ‘팀 알렙’ 멤버 찻탓캇이 신문 기자에게 폭로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면서 독자의 눈을 꽉 쥐고 놓지 않는다. 그들이 여론을 조작하며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계속되면서 섬뜩함을 붙잡고, 반성의 시간을 걷는 듯한 찻탓캇의 폭로는 결말이 기다려지는 안달을 부른다. 한 덩어리로 똘똘 뭉쳐 여론을 흔드는 재미와 돈을 챙긴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찻탓캇의 폭로가 시작되었나 하는 궁금증에 눈을 뗄 수 없다. 상당한 속도감으로 읽힌다. 이 소설을 읽기 바로 전에 봤던 영화 때문에라도 읽고 싶은 동기는 충분했다. 물론 내가 봤던 영화와 이 소설의 결론이 같진 않았지만, 그 맥락은 비슷하다. 정의도, 진실도, 모두 힘 있는 자들의 필요로 어떤 그림으로든 그려질 수 있다는 것. 진실을 조작하고 사람들을 교란하여 휘저어버린다. 그 중심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춤을 출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또 하나의 세상에서 권력이 생기고, 진실과 거짓이 무엇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어느 조종자의 손에 휘둘리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조종하는 사람, 이용당하는 사람, 폐기물처럼 버려지는 사람. 그 안 어디에도 진실은 없을 거라는 불신이 가득하다. 먹이사슬처럼 또렷하게 보이는 권력구조가 혀끝에 씁쓸함을 맛보게 한다. 여전히 정의를 본다는 건 희망적이지 않고, 진실이라 말하는 것들을 수도 없이 의심하게 될 것이다. 아니,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믿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앞으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보이는 것의 판단 기준을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누군가의 조작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두려움은 계속될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의심을 버릴 수 없다. 계속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이 소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생각해본다. 어디까지 믿어? 아닐 거로 생각해? 왜 그런 시도를 하는 건데? 언제까지 그 거짓이 통할 거라고 생각해? 언젠가는 정의가 이길 거라고? 2012년 국정원 여론조작 의혹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라고 선을 그을 수도 없다. 동시에 허구라고 불리는 이 소설이 허구에서 머물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좀 조용해지나 싶었던 댓글 알바의 의심은 지난번 모 구청의 사건에서 다시 불거지기도 했다. 끝이 아닌 거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을 거란 의혹은 계속된다.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는 그 믿음을 줄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 남은 것은 불신뿐이다. 쉬지 않고 던지는 질문을 떠올려보면서, 그 불신이 신뢰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찾고자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된다. 반전, 반전, 반전을 기다리면서... 그래서 이 소설이 그 불신을 지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느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다. 읽어보면 알겠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그 후의 이야기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이 소설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의 답은 아직 다 나오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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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의 50가지 그림자
F. L. 파울러 지음, 이지연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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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갑자기, 치킨이 고급지게 보인다... 『치킨의 50가지 그림자』

 

가끔 요리 프로그램 볼 때, 진짜 배가 고프다. 아니, 방금 밥 먹고 포만감이 느껴지는데도 그런 방송 보고 있으면 자꾸 뭔가 더 먹고 싶어진다. 뱃속이 꽉 찼다고 아우성치는데 그런 소리는 무시하고 일단 입속에 뭐를 집어넣어야만 풀릴 것 같은 갈증. 그래서 웬만하면 밤에 요리 프로그램 안 보려고 하는데 그게 또 잘 안 되네. '야식'이란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거다. 낮이 아닌 밤에 입맛 돋우는 장면들이 더 찾아온다. 이 책도 밤에 보면 침이 질질 흐를 것 같다. 닭 한 마리로 온갖 요리를 해댄다. 제목처럼 50가지 요리법이 등장하는데, 기름기 줄줄 흐르는 장면에 느끼할 것 같으면서도 손이 저절로 책으로 뻗어진다. 하아... 또 배가 고프다. 치킨을 마지막으로 먹은 게 2월이다. 비닐장갑 하나 끼고 매콤한 소스가 발라진 닭 다리 하나 들고 와구와구 뜯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더 마음 아픈 건 치맥의 계절이 왔다는 거... 치맥을 즐기는데 계절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유독 여름날 치맥이 더 당기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한낮의 시원한 맥주 한 잔과 치킨... 흐엉...

 

그 유명한 그레이 시리즈를 패러디한 게 많이 나왔지만, 유독 이 책이 궁금했던 건 영상 때문이다. 거의 2년 전쯤에 온라인에서 닭을 묶고 요리하는 영상 하나를 보고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이었다. 먼저 말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고 요리책이다. (내가 이 책을 요리가 가미된 소설인 줄 알았다는 건 안 비밀. ㅠㅠ 도서 분류에도 문학이라고 되어 있다.) 각각의 요리를 2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처럼 서술하고, 바로 이어서 요리 레시피가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런 문장에 혹해서 읽었다가,

“이렇게는 처음이에요.”

“지금까지 아무도 당신을 바삭하게 구워 주지 않았다고?”

바삭하게 구워지는 닭요리 하나를 알게 되는 거다. ㅎㅎ 냉장고 신선실에서 뚝 떨어져 칼잡이 씨의 눈에 띈 영계 한 마리는 온갖 형태의 닭요리로 주인공이 된다. 요리사 칼잡이 씨는 자기 주방을 통제하는 걸 상당히 좋아하니, 그의 입맛에 맞게 행동을 취하면, 요리사님(그레이)의 애정을 듬뿍 받는 영계 아가씨(아나스타샤)가 되는 거다.

 

소설 형식을 빌린 닭 전문 요리책이다. 총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장마다 호기심 돋는 설명에 먹음직스럽고 보기 좋은 닭 요리가 채워졌다. 순진한 영계(처음 요리사님에게 발견된, 냉장고에 방치되었던 영계 한 마리), 산산이 조각나다(토막 친 닭 요리와 부분육 요리 소개), 거침없이 막 나가는 치킨(닭을 이용한 여러 가지 업그레이드 요리 고급 기술 편). 첫 번째 장에서는 닭을 통째로 이용한 요리가 대부분이고, 두 번째 장에서는 닭을 조각내서 하는 요리, 세 번째 장에서는 닭을 조각내거나 다져서 하는 요리(내가 보기에 손이 많이 가는 요리여서 고급 기술 편인 것 같다. ^^)가 등장한다. 요리가 하나씩 진행되는 과정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과정과 수량을 적어 넣은 기존의 요리책과 같은 구성이 아니라, 아무래도 유명한 소설을 패러디한 설명 때문에 웃으면서 볼 수 있다. 뭔가 야릇한 장면을 연상하듯 끌어가는 이야기가 알고 보니 닭의 몸매라던가, 통제 운운하면서 소유욕 쩔은 남자를 말하는 듯하지만 결국 요리사의 프로페셔널한 마인드를 읊는 거였다거나... 분명 닭 요리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들으면 그만인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게 한다. 왜냐고? 난 이미 그레이 씨를 다 읽어버린 몸이거든!!

 

일반인이 하기에는 좀 더 전문적인 닭 요리 레시피가 아닐까 싶긴 한데, 닭 요리를 좋아하거나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뭐든 관심 두면 잘할 가능성이 열려 있으니까. 푸드포르노라는 소개 글에 어울리는 요리책이기도 하지만 특히 한국식 닭 요리가 아닌 서양식 닭 요리여서 그런지 색다른 입맛을 돋운다. 닭이 간식이나 메인 요리로 나오는 여러 가지 레시피가 흥미롭기도 하다. 곁들일 수 있는 샐러드나 사이드 메뉴도 알 수 있고, 일단 사진부터 먹음직스러운 건 당연하고... 누드 상태의 영계와 그 영계를 어떤 식으로든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버리고야 마는 요리사님의 썸과 밀당의 연애 요리다. 후훗~

 

 

"눈썰미가 좋은 닭이로군. 그가 말한다. 또 그 표정이 된다. "이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내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지. 내가 쓰는 재료들은 정확해야 해." (15페이지)

 

 

"당신을 요리하고 싶어." 그가 속삭인다. "통째로."

아, 어쩌면 좋아. 내 몸이 속에서부터 뜨거워진다.

그는 내 몸 너머로 손을 뻗어 향신료 병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커다란 조미료장을 연다.

"말해 봐, 어떻게 해줄까? 골라 봐."

(중략)

"전 밑간은 처음 당해 봐요." 내가 풀이 죽어 중얼거린다. "아니, 아예 재료 밑손질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의 입이 한일자로 꾹 다물어진다. 그가 받은 충격을, 크나큰 실망감을 느낄 수 있다.

"한 번도?" 그가 속삭여 묻는다.

"이렇게는 처음이에요." 내가 고백한다.

"지금까지 아무도 당신을 바삭하게 구워 주지 않았다고?"

"그런 적 없어요……, 하여튼 양념을 한다는 거 괜찮은 건지 전 잘 모르겠어요." (21페이지)

 

그렇게 밑간을 당하고, 묶이고 해서 완성된 귤과 세이지를 곁들인 로스트 치킨

 

 

그는 내 양발목을 합쳐 단단히 묶는다. 노끈은 꽉 묶여 있지만 살갗에 파고들 정도는 아니다. 나는 구속감고 함께 기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내 등골을 타고 전기가 오르듯 위험한 전율이 찌릿찌릿 치민다.

"당신은 매혹적인 꽁지를 가졌군. 완벽해, 암탉 아가씨. 요걸 물어뜯을 게 기대 되는 걸." (47페이지)

 

 

"당신을 오로지 나를 위해 담금액에 밑간 된 거야." 그가 음험하게 말한다. "오직 나만을 위해."

그래요. 나는 신음한다. 나를 먹어 주세요. 당신 혼자서. 그리고 바로 그때에야 나는 그가 뭔가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래디시인 것 같다. 그 빨간 래디시가 심장처럼 박동하기 시작한다. 내가 보는 광경이 흐릿해져 가고, 나는 미칠 것 같아진다.

"일어나, 베이비."

신선실 문을 열면서 그가 말한다. 우쭐하게 멋 부린 말투. 나는 현실로 돌아온다.

"브로일러에 들어갈 시간이야."

빌어먹을. (92페이지)

 

 

허브와 아몬드 페스토를 바른 나비 모양으로 벌린 통닭

 

 

"이제부터 당신을 납작하게 펴 놓을 거야. 활짝 벌려 놓을 거야. 있는 줄도 몰랐던 경지에 이르게 해 주지."

그의 미치광이 같은 기대와 흥분이 느껴진다.

내 몸은 전적으로 숙련된 그의 손 아래 맡겨져 있다. 그가 나를 옆으로 활짝 벌려 놓을 때 충격이 내 몸을 관통하여 흐른다. 그리고 그건 감미롭고 낯설고 관능적인 감각이다. 그가 나를 가슴이 위로 오도록 팬에 놓는다. 가금육이 이렇게 납작해도 될까. 이건 부자연스럽다. 이토록 쾌감이 밀려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팬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열기가 이렇게나 균일하게 내 몸을 관류하는데. 나는 녹아 버릴 듯 육즙으로 가득 차 말할 수 없이 맛있어진 느낌이다. (164페이지)

 

 

베이컨에 묶인 날개 - 메이플 시럽으로 윤이 나게 구운 닭날개 베이컨 말이

 

 

버터를 가져와 가슴살 - 향기롭게 갈색으로 만든 버터와 헤이즐넛으로 요리한 닭가슴살 소테

(이거 정말 먹고 싶게 생겼다. 침이 질질~~)

 

치킨 서브 - 모차렐라를 올린 치킨 서브마린 샌드위치

(샌드위치라는데, 위에 듬뿍 올려진 모차렐라에도 느끼함이 아닌 침샘이 먼저 고인다.)

 

 

꼿꼿이 일어선 치킨 - 매콤한 토마토 감자를 곁들인 직립 로스트 치킨

(요리가 보여야 하는데, 다른 게 먼저 보인다.

요리할 때는 꼭 상의 탈의 상태로 앞치마를 착용해야 눈에 들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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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레드 에디션, 양장)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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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자체가 배우는 것이겠지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성인이 되어 어릴 적 만났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은 때가 생기곤 했다. 가장 먼저는 『키다리 아저씨』였고, 드디어 몇 년 전 저비스 씨의 두드러진 활약(?)을 재밌게 읽었다. 아마 어렸을 적에 봤으면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더 와 닿았던 듯하다. 『빨강머리 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추측했다. 추측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던 건, 아직 『빨강머리 앤』을 원작으로 읽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궁금증과 갈증을 풀어줄 거란 생각에 백영옥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그 의도가 확실히 드러난다. 앤의 모습에서, 앤의 그 문장들을 통해 다가오는 감각을 새롭게 느낄 수도 있다는 걸 말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예상과 크게 빗나가지는 않았다. 다만, 이 글을 쓴 이가 백영옥이라는데 사실에 반가움이 크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그냥, 나는 그녀의 에세이보다 소설을 더 좋아하니까... ^^

 

원작 『빨강머리 앤』을 읽지 않고 드라마로 방영되던 걸 봤을 때, 나는 앤이 싫었다. 드라마 속에서 보이는 앤은 내 취향이 아니다. 말이 너무 많고 시끄러워서 나는 오히려 다소곳하고 조용한 다이애나를 눈여겨보곤 했다. 이 드라마를 집중해서 봤던 건, 어린 나이에도 궁금했던 앤과 길버트의 사랑이 이루어지느냐 하는 결말을 궁금해서였다. 소설에서, 설레게 하면서도 뻔한 설정이 오해인데, 그걸 참 맛있게 살려내는 게 관건인 것 같다. 어릴 적의 나는 그런 감정이 뭔지도 잘 몰랐으면서, 앤에게서 그런 걸 찾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앤의 시끄러운 말투도 제쳐놓고 볼 수 있을 만큼 두 사람의 관계 변화를 내 머릿속에서 내내 그리며 봤던 거다. 알다시피 앤과 길버트는 다시 만났고, 오해에 관해 화해도 했고, 연인이 되었다. 그게 끝. 아주 오래전 앤의 이야기를 보고 내가 생각한 건 그게 전부였다.

 

저자가 들려주는 앤의 문장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였을 때 본 앤의 모습과 몇십 년이 지난 후에 다시 보는 앤의 이야기는 너무 달랐다. 그때도 느꼈지만 앤은 참 긍정적인 아이다. 남자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시 고아원으로 가야 하는데도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아이라니 이보다 더한 무한긍정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의 나는 앤의 마인드 하나하나를 다 소화하지 못한다.

 

 

 

앞으로 알아낼 것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 같아요!

만약 이것저것 다 알고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럼 상상할 일도 없잖아요! (18페이지)

 

이런 말들에서 앤의 성격이 그대로 보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앤은 이런 자세로 살아간다. 누가 봐도 화가 나고 절망의 순간인데, 그때그때 긍정의 상상력이 발휘되어 오늘을 참 재밌고 웃음 나게 한다. 빨강 머리가 싫어서 염색했는데 초록 머리가 되었을 때, 그동안 빨강머리가 최악인 줄 알고 살았다며 자기 머리카락 색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앤. 그렇게 앤은 변한다. 성장한다. 꿈을 위해 도시로 떠나고, 매튜의 죽음을 슬퍼하며 앞으로 견딜 일들의 워밍업을 하는 것처럼, 마릴라의 간호를 하면서 진심을 듣게 되는 순간 가족의 사랑을 좀 더 배우게 된 것처럼.

 

앤은 원하는 직업을 얻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랑하는 아줌마, 아저씨와 익숙했던 고향을 떠나는 슬픔을 겪을 것이다. 다이애나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연애의 괴로움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망설이는 이유는 그 결정으로 지불해야 하는 몫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우리이며, 그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몫이다. (171~172페이지)

 

이런 거였다. 내가 그때는 알지 못했던 앤의 이야기는 새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게... 내가 설렜던 길버트와의 일화는 그저 앤의 모든 시간 중의 일부였을 뿐이다. 앤의 인생이란 커다란 그림의 한 조각의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앤이 그곳에서 자라면서, 사람을 겪으며 채운 시간의 축적은 5년이란 시간이 흘러 길버트와 오해를 풀고 화해할 수 있는 마음의 성장을 가져왔던 거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아니었으면 갖지 못할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길버트의 놀림을 영영 용서하지 못할 화로 기억했을 것이고, 한 번의 사랑을 놓쳤을 것이다. 헤어지는 것을 배우며 이별을 감당하는 방법을 알아갔을 거고, 어떤 선택을 함으로써 놓아야 할 것도 있음을 배웠을 거다. 그렇게 하나씩 잃어가면서 채워지는 것들을, 앤은 알았을 거다. 노력해도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 누군가와 죽음으로 헤어질 수 있다는 것, 오롯이 내 몫으로 존재하며 내 판단과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있다는 걸...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인제 와서 앤이 하는 말이 뭐 그리 특별하다고, 라는 생각을 했었다. 재미로 보던 이야기에서 뭘 또다시 발견하겠다고, 하는 비꼬임 비슷한 감정을 가졌더랬다. 저자가 풀어내는 자기의 에피소드와 연결된 앤의 문장들은 위로를 건넨다. 앤의 실수담, 시행착오가 불러오는 공감이 있다. 그건 몇십 년 전 앤이 처음 소설로 태어났을 때와 2016년을 사는 우리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참 닮은꼴이었다. “인간이 언제 위로받는 줄 알아? 쟤도 나처럼 힘들구나! 바로 비극의 보편성을 느낄 때야.(156페이지)” 라고 소리치듯 말하는 저자 지인의 말이 생생하게 들린다. 앤을 통해 느낀 것도 그 비슷한 맥락이다. 좋은 일에는 진심을 담아 축하를 건네면 되지만, 슬픈 일에는 좋은 일을 축하했을 때보다 더한 감정을 동반한 한 마디가 건네진다. 앤이 고아가 아니었다면,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고아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었다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순탄하기만 했다면, 이런저런 이별을 겪지 않았다면... 수도 없는 ‘만약’을 불러보지만, 그 ‘만약’의 순간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앤이다. 앤이 이런 모습이라서, 이런 아픔을 가진 아이라서,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란 씩씩함이라서 공감하는 거다. 거기에 보태어지는, 긍정이 아닌 상황의 배움마저 공감이 되는 거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알게 되는, 누군가를 좋아하려고 노력해도 좋아할 수 없다는 걸 배우는 앤이어서 다행이다.

 

“앤, 내가 살아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328)”라고 말하고 싶었다던 저자의 생각을 바뀌게 한 건, 아마도 이런 바람이 있어서일 테다. ‘살아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너의 마음을 듣던 그 바람대로 살아가고 싶은 거라고.’ 

 

 

 

지금도 어디선가 그린 게이블 그 집의 다락방에서 세상을 보던 것처럼 무한 긍정 에너지를 뿜어대는 자세로 살아가는 앤이겠지만, 그 긍정 에너지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님을 알아서인지 앤이 바보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의 경험들로 세상 살아가는 노하우를 참 많이도 배웠을 듯하다. 책임감과 융통성을 가진 현명한 사람으로 오늘도 어딘가를 씩씩하게 달리고 있을 앤을 그려보게 하는 이야기다. 여전히 실수하고, 시행착오를 하면서도 잘 견디고 있을 것이라고 바라는 마음도 어쩔 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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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원 지음 / 작가와비평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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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수 없는 답을 앞에 놓고 한없이 소리 높여 얘기하는 것만 같다. 실제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없는데 내 목은 진즉에 쉬어버린 것 같다. '누가 말 좀 해줘. 이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란 말이야!' 여기저기서 이런 말을 끊임없이 쏟아내는데, 정작 대답을 해야 할 사람들은 말이 없다. 벽을 보고 얘기하는 기분. 그럴 때는 말이 안 통한다면서 금방 뒤돌아서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다. 한 사람의 목숨이 거기 있다. 그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그 안에 갇힐 수 있는 일이었다. 분명하게 해결해야만 다른 희생이 없는 거다. 책임을 회피하며 모른 척하는 일이 대답인 것처럼 행동하고, 안전에 대한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욕심에 눈먼 자들의 배가 불러오는 만행이 더는 없어야만 했다. 왜 그들이 일으킨 사고에 엉뚱한 희생자만 계속 나와야 하는 걸까...

 

주말부부로 지내던 이정수는 그날도 어김없이 아내와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딸의 생일이었고, 생일케이크를 차에 싣고 달리는 길이었다. 그 길에서 마주한 터널을 통과하던 중, 터널은 무너졌고 그는 무너진 터널 안에 갇혔다. 그의 차 앞뒤가 돌덩이로 꽉 막힌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구조 작업이 시작되었으나 더디게 이뤄지고 있었다. 터널을 뚫어야 할지 무너진 돌덩이들을 하나하나 걷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동시에 언론은 쉬지도 않고 터널 붕괴 사건을 내보냈다. 시공사와 관계자들은 터널 공사를 설계대로 진행하지 않았으며, 뒷돈 거래가 있었다. 하청업체 누군가는 양심선언을 했다. 불과 6개월 전에 완공된 터널이 무너진 건 예정된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생존을 빌었으며 하루빨리 구조작업이 이뤄지기를 바랐다. 그의 바람 역시 마찬가지. 곧 구조될 거로 믿으며 그 안에서 생존하려는 사투를 벌였다.

 

"살아있단 말이야. 나는 지금 살아있단 말이야. 죽은 사람처럼. 희망 없는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내 남편은 죽어 가는데! 내 남편은 황당한 사고 속에서 죽어 가고 있는데! 국가가 잘못한 억울함으로 배고픔과 싸우며 죽어 가는데! 당신들은 뭐야! 내 남편에 대한 자료가 하나라도 있는 거야? 지금 뭐하는 거야! 당신들 뭐하고 있는 거냐고!"

 

하루 이틀, 이주, 한 달이 넘도록 이정수는 구조되지 못했다. 쉽지 않은 구조작업이었다. 구조작업만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아무것도 바랄 게 없었다, 고 생각하던 찰나. 또 다른 시선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구조를 이유로 통제했던 도로 때문에 근처 마을 노인이 사망하게 되고, 생사를 알 수 없는 한 명 때문에 다수의 희생과 손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의 휴대폰 배터리는 방전되었고 외부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생사를 알지 못했고, 그 역시 자기가 살아있다는 목소리를 외부로 전하지 못했다. 그에 사람들은 그가 죽었을 거라고 말하며 그의 구조가 계속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점점 그와 그의 아내를 향한 비난이 계속되고, 많은 사람이 그의 구조에 대한 결단을 하라고 종용한다.

 

답답했다가, 화가 났다가, 누군가를 이해도 했다가... 결국에는 아프기만 한 결말을 봐야만 하는 건지 묻고 싶은 순간, 또 하나의 '손가락 놀이'에 말문이 막힌 채로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아니, 어쩌면 이건 '답정너'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대중의 흐름이 어떻게 변할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가, 그래도 이건 아니겠지 싶은 마음으로 읽게 되면서 그 '답정너'를 피해가기를 바랐다. 적어도 우리 사는 세상에서 더는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담은 바람이었는데 여전했다. 계속되는 사고에는 늘 비슷한, 같은 원인이 있었다.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작업에서 재난은 이미 예견되어 있던 거다. 홍수나 쓰나미만이 재난은 아니잖아. 이런, 인간의 욕심으로 무시하고 버린 양심 때문에 늘 사고는 일어난다. '안전하게 설계했다고, 그 상태 그대로 확인받은 대로 시공했어야지, 왜 지시를 무시하고 당신들 맘대로 잘라먹고 주머니 채우면서 선량한 시민을 희생자로 만들어?' 그것뿐이었다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더 간단했을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뻔한 일에 책임자가 있으니까. 거기에 보태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손가락은 살인을 시작했다. 하나둘, 상처 입고 죽어가는 건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이정수는 믿었다. 터널 밖의 상황을 알 수 없고 전문 구조자의 말을 들었다. 오직 한 가지. 자기가 구출될 거라 믿으며 버텼다. (그 아이들도 그랬을 거다. 곧 구출될 거로 믿으며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 가만히 있었다) 매뉴얼대로 구조작업을 펼쳐도 별 진전이 없었다. (그때도 그랬다. 그렇게 구조에 힘을 쏟았어도, 구조되지 못한 수많은 생명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말이 많아졌고 비수를 꽂는 말들로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었다. 손가락이 무기가 된 일방적인 총격전이었다. 아무런 무기도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방어조차 하지 못하고 그 총알을 다 맞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그 방어가 가능하기나 했던 걸까? 다수의 공격 앞에서? 코너로 몰아가며 스스로 항복하라고 종용하는 그들의 잔인함에 대항할 수 없었다.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살아간다. 같은 상황을 두고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그걸 이중적인 모습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그런 이중성은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이다. 그걸 이해한다며 무조건 동조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런 모습을 가지고 사는 게 인간이라는 것은 안다. 다만, 이 소설에서처럼 희생자에게 판단과 선택을 강요할 권리가 그들에게 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여전하다. 그들이 심판할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의문은 계속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말하는 게 진정 정의인지 묻고 싶다. 그들이 말하는 게 정의라면, 그들이 내세운 정의는 살인 무기가 된다. '정의=살인'을, 당신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나? 당신에게 똑같이 적용된다고 해도?

 

터널이 무너지면서 재난의 경고로 시작된 이 소설은 얼굴 없는 살인자들의 살인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새삼스러울 것 없이 오랜 시간 동안 봐왔던 일이다. 그들이 내는 목소리, 그들이 쳐대는 자판의 소리가 어느 전쟁터에서 들려오는 총소리 같다. 살이 떨리게 무섭다. 이정수와 그의 아내 김미진은, 우리는 기적을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당연한 일상과 행복을 되찾으려는 것뿐이었다. 그게 얼굴 없는 당신들의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일이었던가?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된다고 해서 관심 두고 있었다. 영화의 예고편으로 느낀 것은 또 하나의 재난 영화가 새로 만들어졌나 보다, 하는 거였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재난 그 이상의 것을 들려주고 있었다. 내가 이정수라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내가 김미진이라면 어떤 행동을 취하고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내가 구조 전문가였다면 끝까지 그의 구조를 외칠 수 있었을까. 나 역시도 사람들에게서 보았던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모습 그대로 판단하지 않을까 싶어서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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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자카파 - 미니앨범 스틸(STILL)
어반자카파 (Urban Zakapa)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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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뮤지션을 잘 몰라도, 노래 한 곡 때문에 마치 그 뮤지션의 분위기를 다 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요즘 어반자카파의 노래가 그렇게 들린다. 그들의 첫 앨범부터 집중해서 계속 들어오진 않았다. 그저 귀에 들릴 때마다 흘려듣곤 했던 게 전부다. 부담스럽지 않고 잔잔하게 흐르는 분위기가 좋아서, 이름이 특이해서 그냥, 그런 뮤지션이 있나 보다 했다. 일부러 찾아 듣진 않아도, 들려오는 대로 듣는 것도 그냥 괜찮은 것 같아서 기억했던 이름이다. 그런데 이번 노래는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다. 한 달 전부터 무한 반복으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단순한 가사 같았는데, 너무 솔직하고 적나라해서 멜로디만 귀에 담을 수가 없다. 어딘가 찔리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결국엔 슬퍼질 수밖에 없는...

 

 

무슨 말을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개만 떨구는 나

그런 날 바라보는 너

그 어색한 침묵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 라는 말. 사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우리가 하는 이별 방식에 어느 정도의 포장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너에게 내가 부족해서, 부모님의 반대로, 지금은 사랑할 여유가 없어서, 다른 이가 생겨서... 온갖 이유를 갖다 대지만 결국 그 모든 이유의 기저에 존재하는 건, 그 진심은 단 한 문장일 뿐이다. 널 사랑하지 않아서 더 만날 수가 없는 것. 상대를 향했던 감각이 다 죽어버린 상태에서 무엇을 더할 수 있을까. 눈물을 흘리고 있는 너의 모습에도 더는 아프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거냐고.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야

이게 내 진심인 거야

널 사랑하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모든 일에는 전조가 있다. 이별도 마찬가지. 상대를 향해 세웠던 온갖 촉이 무뎌지고 관심 없어지는 흐름을 무시하면서, 또 다른 기대로 시간을 보내는 거다. 이 위기가 넘어가지는 않을까, 남들도 다 그렇게 겪어내는 건지도 모른다는, 괜찮아질 거라는 바람으로 건너가는 시간.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그때 이미 알아채고 있었던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너와 내가 더는 아무 이유 없이도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님을, 함께하면서 어색해지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음을, 이런 만남이 의미 없어지고 있다는 감각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거라고...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 몇 줄로 거짓과 위선으로 대했던 이별의 방식을 불러왔다. 나쁜 역할을 하기 싫어 차라리 이별 통보를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일,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붙여 어쩔 수 없는 이별을 고함으로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일, 얼마 동안 연락을 끊은 채로 있다가 자연스러운 이별로 만들었던 일... 그냥 그게 전부일 뿐이라고, 널 사랑하지 않는 게 나의 진심일 뿐이라고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듣는 순간에는 아프겠지만, 어쩌면 가장 정확하고 솔직한 이별은 그런 말이 오가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그냥,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한마디면 충분히 전달되었을 진심을 가린 채로 상대를 더 상처 입히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지독한 폭염에 숨이 턱턱 막히는 이 여름에 겨울을 지내는 기분이다. 그런데도, 강한 음색의 조현아, 부드러운 목소리 권순일, 좀 더 두꺼운 감각을 불러오는 박용인, 이 세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만드는 색깔이 너무 좋아서 듣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동안 이들의 노래를 흘려듣던 것을 후회했다. 조금만 더 관심 두고 들어볼 것을... 노래를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만드는 데도 감각이 좋은 이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줄 것 같다. 이 시간 이후로 나는 이들의 다음 음반을 기다리는 마음을 품을 것 같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출간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오랜만에 노래에서 그 간절함을 경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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