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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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흔들 타이밍을 저격한다. 『댓글부대』

 

지난번에 본 영화 <내부자들>은 강했다. 동시에 아픈 영화였다. 정의와 진실이 이기기 위한 과정이 너무 험난했다. 권력자들의 욕심에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만들어진 진실에 거짓은 가려졌다. 끝내 그 진실이 드러나기 어렵다는 걸 보게 했다.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안상구는 자기 자리에서 끝없이 몸부림쳤다. 온갖 편법을 저지르고서라도 오르고 싶던 그의 인생은 노력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믿었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를 배신했다. 그 배신자들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언론을 주름잡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듯 모든 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던 장면은 어떻게 여론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여론이 어떤 힘을 가지게 되느냐, 이었다. 힘 있고 언론을 쥐락펴락하는 자에 의해 철저하게 사람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대중은 개, 돼지라며... 이런 내용의 영화가 비단 <내부자들>뿐이겠냐 마는, 언제 봐도 답답했다. 화가 나고, 정의가 실현되는 게 불가능할 거란 절망만 거듭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하게 되는 건, 그 여론이 어떻게 흔들리고 조작되어 한쪽으로 몰리는 힘을 가지는가 하는 거다. 그 배경에는 여론을 주도하려는 자들이 인간의 심리를 치밀하게 연구하는데 있다. 인간의 마음이 흔들리는 건 인간의 심리를 잘 알고 계획하여 흔들어버리고자 작정하는 또 다른 인간이 있어서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가도 금방 사라진다. '그게 가능하니까 이런 소설이 생기는 거 아닌가?' 라는 답을 끌어내고 있으니까. 궁금했다. 불분명하게 들어왔던 이런 이야기가, 허구라는 소설로 진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소설 『댓글부대』는 나의 그런 호기심에 대한 답을 더 분명하고 또렷하게 보여준다. 삼궁, 찻탓캇, 01査10. 이 세 사람이 ‘팀-알렙’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여론 조작은 놀라울 정도였다. 막연하게 그럴 것이다, 어딘 가에서부터 시작된 ‘카더라 통신’의 진실이 여기 있다. 조작된 진실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여론몰이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심리전의 고수가 어떤 표정으로 그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밑바닥은 다 똑같은 겁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인정 투쟁. 모두 가슴에 단도 한 자루씩 숨기고 있다가 기회만 생기면 팍! 그런데 저희들은 언제 사람들이 미쳐서 그 칼을 휘두르는지 그 타이밍을 알아낸 거죠. (77페이지)

 

온라인을 통해 어떤 이야기들이 얼마나 빠르게 멀리 퍼져나가는지 안다. 그런 방식을 알고 있는 이들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걸 건드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건의 흐름을 몰아간다. 그들에게 여론 조작은 쉬운 일이었다. ‘팀-알렙’은 처음, 특정 기업의 상품평과 후기를 거짓으로 작성하며 푼돈을 벌고, 점점 그들이 하는 일의 규모는 커진다. W전자 생산직으로 일하다 백혈병으로 죽은 노동자의 죽음을 그린 영화의 흥행을 방해하는 일을 의뢰받는다. 삼궁은 처음 의뢰받은 내용의 방향을 틀어 영화판을 배경으로 삼은 악성 루머를 퍼트리고, 영화 흥행 방해 작전에 성공한다. 그때부터 그들은 달라진다. ‘팀-알렙’ 멤버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들에게 힘이 생겼다고 믿는다. 위험한 생각이 이렇게 시작되고 고정된다. 그들에게 이런 일을 의뢰한 ‘합포회’와의 고리는 더 굳건해지고, 그들의 작전은 더 교묘해지고 위험해지며, 두려움과 죄의식까지 밀어내기에 이른다. 점점 커지는 의뢰들, 더 과감해지는 여론 조작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소설은 그들의 행보와 인터뷰 장면을 교차로 보여준다. 그들이 여론 조작을 어떻게 계속해나가고 있는지 서술하면서, ‘팀 알렙’ 멤버 찻탓캇이 신문 기자에게 폭로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면서 독자의 눈을 꽉 쥐고 놓지 않는다. 그들이 여론을 조작하며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계속되면서 섬뜩함을 붙잡고, 반성의 시간을 걷는 듯한 찻탓캇의 폭로는 결말이 기다려지는 안달을 부른다. 한 덩어리로 똘똘 뭉쳐 여론을 흔드는 재미와 돈을 챙긴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찻탓캇의 폭로가 시작되었나 하는 궁금증에 눈을 뗄 수 없다. 상당한 속도감으로 읽힌다. 이 소설을 읽기 바로 전에 봤던 영화 때문에라도 읽고 싶은 동기는 충분했다. 물론 내가 봤던 영화와 이 소설의 결론이 같진 않았지만, 그 맥락은 비슷하다. 정의도, 진실도, 모두 힘 있는 자들의 필요로 어떤 그림으로든 그려질 수 있다는 것. 진실을 조작하고 사람들을 교란하여 휘저어버린다. 그 중심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춤을 출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또 하나의 세상에서 권력이 생기고, 진실과 거짓이 무엇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어느 조종자의 손에 휘둘리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조종하는 사람, 이용당하는 사람, 폐기물처럼 버려지는 사람. 그 안 어디에도 진실은 없을 거라는 불신이 가득하다. 먹이사슬처럼 또렷하게 보이는 권력구조가 혀끝에 씁쓸함을 맛보게 한다. 여전히 정의를 본다는 건 희망적이지 않고, 진실이라 말하는 것들을 수도 없이 의심하게 될 것이다. 아니,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믿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앞으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보이는 것의 판단 기준을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누군가의 조작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두려움은 계속될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의심을 버릴 수 없다. 계속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이 소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생각해본다. 어디까지 믿어? 아닐 거로 생각해? 왜 그런 시도를 하는 건데? 언제까지 그 거짓이 통할 거라고 생각해? 언젠가는 정의가 이길 거라고? 2012년 국정원 여론조작 의혹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라고 선을 그을 수도 없다. 동시에 허구라고 불리는 이 소설이 허구에서 머물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좀 조용해지나 싶었던 댓글 알바의 의심은 지난번 모 구청의 사건에서 다시 불거지기도 했다. 끝이 아닌 거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을 거란 의혹은 계속된다.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는 그 믿음을 줄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 남은 것은 불신뿐이다. 쉬지 않고 던지는 질문을 떠올려보면서, 그 불신이 신뢰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찾고자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된다. 반전, 반전, 반전을 기다리면서... 그래서 이 소설이 그 불신을 지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느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다. 읽어보면 알겠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그 후의 이야기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이 소설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의 답은 아직 다 나오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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