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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자카파 - 미니앨범 스틸(STILL)
어반자카파 (Urban Zakapa)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그 뮤지션을 잘 몰라도, 노래 한 곡 때문에 마치 그 뮤지션의 분위기를 다 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요즘 어반자카파의 노래가 그렇게 들린다. 그들의 첫 앨범부터 집중해서 계속 들어오진 않았다. 그저 귀에 들릴 때마다 흘려듣곤 했던 게 전부다. 부담스럽지 않고 잔잔하게 흐르는 분위기가 좋아서, 이름이 특이해서 그냥, 그런 뮤지션이 있나 보다 했다. 일부러 찾아 듣진 않아도, 들려오는 대로 듣는 것도 그냥 괜찮은 것 같아서 기억했던 이름이다. 그런데 이번 노래는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다. 한 달 전부터 무한 반복으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단순한 가사 같았는데, 너무 솔직하고 적나라해서 멜로디만 귀에 담을 수가 없다. 어딘가 찔리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결국엔 슬퍼질 수밖에 없는...
무슨 말을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개만 떨구는 나
그런 날 바라보는 너
그 어색한 침묵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 라는 말. 사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우리가 하는 이별 방식에 어느 정도의 포장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너에게 내가 부족해서, 부모님의 반대로, 지금은 사랑할 여유가 없어서, 다른 이가 생겨서... 온갖 이유를 갖다 대지만 결국 그 모든 이유의 기저에 존재하는 건, 그 진심은 단 한 문장일 뿐이다. 널 사랑하지 않아서 더 만날 수가 없는 것. 상대를 향했던 감각이 다 죽어버린 상태에서 무엇을 더할 수 있을까. 눈물을 흘리고 있는 너의 모습에도 더는 아프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거냐고.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야
이게 내 진심인 거야
널 사랑하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모든 일에는 전조가 있다. 이별도 마찬가지. 상대를 향해 세웠던 온갖 촉이 무뎌지고 관심 없어지는 흐름을 무시하면서, 또 다른 기대로 시간을 보내는 거다. 이 위기가 넘어가지는 않을까, 남들도 다 그렇게 겪어내는 건지도 모른다는, 괜찮아질 거라는 바람으로 건너가는 시간.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그때 이미 알아채고 있었던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너와 내가 더는 아무 이유 없이도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님을, 함께하면서 어색해지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음을, 이런 만남이 의미 없어지고 있다는 감각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거라고...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 몇 줄로 거짓과 위선으로 대했던 이별의 방식을 불러왔다. 나쁜 역할을 하기 싫어 차라리 이별 통보를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일,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붙여 어쩔 수 없는 이별을 고함으로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일, 얼마 동안 연락을 끊은 채로 있다가 자연스러운 이별로 만들었던 일... 그냥 그게 전부일 뿐이라고, 널 사랑하지 않는 게 나의 진심일 뿐이라고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듣는 순간에는 아프겠지만, 어쩌면 가장 정확하고 솔직한 이별은 그런 말이 오가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그냥,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한마디면 충분히 전달되었을 진심을 가린 채로 상대를 더 상처 입히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지독한 폭염에 숨이 턱턱 막히는 이 여름에 겨울을 지내는 기분이다. 그런데도, 강한 음색의 조현아, 부드러운 목소리 권순일, 좀 더 두꺼운 감각을 불러오는 박용인, 이 세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만드는 색깔이 너무 좋아서 듣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동안 이들의 노래를 흘려듣던 것을 후회했다. 조금만 더 관심 두고 들어볼 것을... 노래를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만드는 데도 감각이 좋은 이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줄 것 같다. 이 시간 이후로 나는 이들의 다음 음반을 기다리는 마음을 품을 것 같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출간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오랜만에 노래에서 그 간절함을 경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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