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의 50가지 그림자
F. L. 파울러 지음, 이지연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갑자기, 치킨이 고급지게 보인다... 『치킨의 50가지 그림자』

 

가끔 요리 프로그램 볼 때, 진짜 배가 고프다. 아니, 방금 밥 먹고 포만감이 느껴지는데도 그런 방송 보고 있으면 자꾸 뭔가 더 먹고 싶어진다. 뱃속이 꽉 찼다고 아우성치는데 그런 소리는 무시하고 일단 입속에 뭐를 집어넣어야만 풀릴 것 같은 갈증. 그래서 웬만하면 밤에 요리 프로그램 안 보려고 하는데 그게 또 잘 안 되네. '야식'이란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거다. 낮이 아닌 밤에 입맛 돋우는 장면들이 더 찾아온다. 이 책도 밤에 보면 침이 질질 흐를 것 같다. 닭 한 마리로 온갖 요리를 해댄다. 제목처럼 50가지 요리법이 등장하는데, 기름기 줄줄 흐르는 장면에 느끼할 것 같으면서도 손이 저절로 책으로 뻗어진다. 하아... 또 배가 고프다. 치킨을 마지막으로 먹은 게 2월이다. 비닐장갑 하나 끼고 매콤한 소스가 발라진 닭 다리 하나 들고 와구와구 뜯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더 마음 아픈 건 치맥의 계절이 왔다는 거... 치맥을 즐기는데 계절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유독 여름날 치맥이 더 당기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한낮의 시원한 맥주 한 잔과 치킨... 흐엉...

 

그 유명한 그레이 시리즈를 패러디한 게 많이 나왔지만, 유독 이 책이 궁금했던 건 영상 때문이다. 거의 2년 전쯤에 온라인에서 닭을 묶고 요리하는 영상 하나를 보고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이었다. 먼저 말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고 요리책이다. (내가 이 책을 요리가 가미된 소설인 줄 알았다는 건 안 비밀. ㅠㅠ 도서 분류에도 문학이라고 되어 있다.) 각각의 요리를 2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처럼 서술하고, 바로 이어서 요리 레시피가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런 문장에 혹해서 읽었다가,

“이렇게는 처음이에요.”

“지금까지 아무도 당신을 바삭하게 구워 주지 않았다고?”

바삭하게 구워지는 닭요리 하나를 알게 되는 거다. ㅎㅎ 냉장고 신선실에서 뚝 떨어져 칼잡이 씨의 눈에 띈 영계 한 마리는 온갖 형태의 닭요리로 주인공이 된다. 요리사 칼잡이 씨는 자기 주방을 통제하는 걸 상당히 좋아하니, 그의 입맛에 맞게 행동을 취하면, 요리사님(그레이)의 애정을 듬뿍 받는 영계 아가씨(아나스타샤)가 되는 거다.

 

소설 형식을 빌린 닭 전문 요리책이다. 총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장마다 호기심 돋는 설명에 먹음직스럽고 보기 좋은 닭 요리가 채워졌다. 순진한 영계(처음 요리사님에게 발견된, 냉장고에 방치되었던 영계 한 마리), 산산이 조각나다(토막 친 닭 요리와 부분육 요리 소개), 거침없이 막 나가는 치킨(닭을 이용한 여러 가지 업그레이드 요리 고급 기술 편). 첫 번째 장에서는 닭을 통째로 이용한 요리가 대부분이고, 두 번째 장에서는 닭을 조각내서 하는 요리, 세 번째 장에서는 닭을 조각내거나 다져서 하는 요리(내가 보기에 손이 많이 가는 요리여서 고급 기술 편인 것 같다. ^^)가 등장한다. 요리가 하나씩 진행되는 과정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과정과 수량을 적어 넣은 기존의 요리책과 같은 구성이 아니라, 아무래도 유명한 소설을 패러디한 설명 때문에 웃으면서 볼 수 있다. 뭔가 야릇한 장면을 연상하듯 끌어가는 이야기가 알고 보니 닭의 몸매라던가, 통제 운운하면서 소유욕 쩔은 남자를 말하는 듯하지만 결국 요리사의 프로페셔널한 마인드를 읊는 거였다거나... 분명 닭 요리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들으면 그만인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게 한다. 왜냐고? 난 이미 그레이 씨를 다 읽어버린 몸이거든!!

 

일반인이 하기에는 좀 더 전문적인 닭 요리 레시피가 아닐까 싶긴 한데, 닭 요리를 좋아하거나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뭐든 관심 두면 잘할 가능성이 열려 있으니까. 푸드포르노라는 소개 글에 어울리는 요리책이기도 하지만 특히 한국식 닭 요리가 아닌 서양식 닭 요리여서 그런지 색다른 입맛을 돋운다. 닭이 간식이나 메인 요리로 나오는 여러 가지 레시피가 흥미롭기도 하다. 곁들일 수 있는 샐러드나 사이드 메뉴도 알 수 있고, 일단 사진부터 먹음직스러운 건 당연하고... 누드 상태의 영계와 그 영계를 어떤 식으로든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버리고야 마는 요리사님의 썸과 밀당의 연애 요리다. 후훗~

 

 

"눈썰미가 좋은 닭이로군. 그가 말한다. 또 그 표정이 된다. "이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내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지. 내가 쓰는 재료들은 정확해야 해." (15페이지)

 

 

"당신을 요리하고 싶어." 그가 속삭인다. "통째로."

아, 어쩌면 좋아. 내 몸이 속에서부터 뜨거워진다.

그는 내 몸 너머로 손을 뻗어 향신료 병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커다란 조미료장을 연다.

"말해 봐, 어떻게 해줄까? 골라 봐."

(중략)

"전 밑간은 처음 당해 봐요." 내가 풀이 죽어 중얼거린다. "아니, 아예 재료 밑손질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의 입이 한일자로 꾹 다물어진다. 그가 받은 충격을, 크나큰 실망감을 느낄 수 있다.

"한 번도?" 그가 속삭여 묻는다.

"이렇게는 처음이에요." 내가 고백한다.

"지금까지 아무도 당신을 바삭하게 구워 주지 않았다고?"

"그런 적 없어요……, 하여튼 양념을 한다는 거 괜찮은 건지 전 잘 모르겠어요." (21페이지)

 

그렇게 밑간을 당하고, 묶이고 해서 완성된 귤과 세이지를 곁들인 로스트 치킨

 

 

그는 내 양발목을 합쳐 단단히 묶는다. 노끈은 꽉 묶여 있지만 살갗에 파고들 정도는 아니다. 나는 구속감고 함께 기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내 등골을 타고 전기가 오르듯 위험한 전율이 찌릿찌릿 치민다.

"당신은 매혹적인 꽁지를 가졌군. 완벽해, 암탉 아가씨. 요걸 물어뜯을 게 기대 되는 걸." (47페이지)

 

 

"당신을 오로지 나를 위해 담금액에 밑간 된 거야." 그가 음험하게 말한다. "오직 나만을 위해."

그래요. 나는 신음한다. 나를 먹어 주세요. 당신 혼자서. 그리고 바로 그때에야 나는 그가 뭔가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래디시인 것 같다. 그 빨간 래디시가 심장처럼 박동하기 시작한다. 내가 보는 광경이 흐릿해져 가고, 나는 미칠 것 같아진다.

"일어나, 베이비."

신선실 문을 열면서 그가 말한다. 우쭐하게 멋 부린 말투. 나는 현실로 돌아온다.

"브로일러에 들어갈 시간이야."

빌어먹을. (92페이지)

 

 

허브와 아몬드 페스토를 바른 나비 모양으로 벌린 통닭

 

 

"이제부터 당신을 납작하게 펴 놓을 거야. 활짝 벌려 놓을 거야. 있는 줄도 몰랐던 경지에 이르게 해 주지."

그의 미치광이 같은 기대와 흥분이 느껴진다.

내 몸은 전적으로 숙련된 그의 손 아래 맡겨져 있다. 그가 나를 옆으로 활짝 벌려 놓을 때 충격이 내 몸을 관통하여 흐른다. 그리고 그건 감미롭고 낯설고 관능적인 감각이다. 그가 나를 가슴이 위로 오도록 팬에 놓는다. 가금육이 이렇게 납작해도 될까. 이건 부자연스럽다. 이토록 쾌감이 밀려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팬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열기가 이렇게나 균일하게 내 몸을 관류하는데. 나는 녹아 버릴 듯 육즙으로 가득 차 말할 수 없이 맛있어진 느낌이다. (164페이지)

 

 

베이컨에 묶인 날개 - 메이플 시럽으로 윤이 나게 구운 닭날개 베이컨 말이

 

 

버터를 가져와 가슴살 - 향기롭게 갈색으로 만든 버터와 헤이즐넛으로 요리한 닭가슴살 소테

(이거 정말 먹고 싶게 생겼다. 침이 질질~~)

 

치킨 서브 - 모차렐라를 올린 치킨 서브마린 샌드위치

(샌드위치라는데, 위에 듬뿍 올려진 모차렐라에도 느끼함이 아닌 침샘이 먼저 고인다.)

 

 

꼿꼿이 일어선 치킨 - 매콤한 토마토 감자를 곁들인 직립 로스트 치킨

(요리가 보여야 하는데, 다른 게 먼저 보인다.

요리할 때는 꼭 상의 탈의 상태로 앞치마를 착용해야 눈에 들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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