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여행하는 초심자를 위한 안내서 - 방황하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필수 심리 실용서 세상 안내서 1
김현철 지음 / 마호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왜 대부분 문제에서 용서와 화해가 당연하게 언급되는 걸까.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된다. 이미 상처받았는데, 그 상처가 지워지지 않을 건데, 왜 자꾸 그러는지... 시간이 흘렀으니까, 지나갔으니까, 상처를 준 이가 용서를 구했으니까, 하는 이유로 화해와 용서를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드는지 알 수 없다. 문학을 읽다 보면 대부분 그 화해로 마무리 되는 글이 많더라.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 특히 엄마가 즐겨 보는 아침, 저녁, 주말드라마도 그렇더라. 가슴을 후비고 도려내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 말들과 경제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준 사람들을 결국에는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하면서 끝나는 드라마가 거의 다였다. 아마도 그 문학이나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 그런 결말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길 염원해서일까. 그렇다 치자. 나 역시도 그런 바람이 있으니까. 다만, 그런 바람을 빌미로 그 화해와 용서를 강요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얼마나 부담이 되고, 분노로 승화하는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거의 1년 정도를 상담 받았고, 그 기간 동안 담당 선생님이 한번 바뀐 것 말고는 동일한 내용의 진료였다. 처음 진료했던 선생님은 환자의 말을 아주 잘 들어주었다. 네, 그렇군요. 네. 네, 잘하셨네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질문을 하는 것보다 환자에게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었고 대부분의 진료 시간을 환자의 대답을 듣는 것으로 채웠다. 반면, 바뀐 선생님은 환자의 말을 들어주되, 잘 한 것은 잘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따끔하게 혼을 냈다.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건 상대방을 다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건 옳지 않습니다.

 

어떤 진료방식이 좋은 것일까. 무조건 환자의 말을 들어주는 것? 아니면 환자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옳고 그른 방식을 인지하게 해주는 것? 결과만 말하자면 그 환자는 선생님이 바뀌고 나서 한두 번 더 진료를 받다가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았다. 바뀐 선생님은 자기 말을 안 들어준다면서, 자꾸 자기에게 틀렸다고 한다면서, 짜증이 난다면서 병원에 가기 싫다고 했다. 처음 선생님한테는 자기 말을 아주 잘 들어준다면서, 말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다면서 별 투정을 부리지 않았는데 두 번째 선생님에게는 화를 내면서 병원에 안가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변하지 않았다.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자신이 왜 진료를 받기 시작했는지를 잊고,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 후 그 환자의 모습을 보면 병원 진료를 받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는지 이유조차 모른 채로 다들 자기만 싫어한다고 했다. 엉뚱한 공상이 정신을 갉아먹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 환자는 그렇게 살면서, 늙어가고 있다.

 

오래 전에, TV를 통해 저자를 본 적이 있다. 기존에 봤던 전문의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는 게 맘에 들어서 이름을 기억했다. 라디오에 고정출연하는 방송도 들었다. 그동안에는 늘 ‘지나간다, 다 그런 거다, 이해해라, 참아라, 화해해라, 용서해라...’ 했던 말로 답을 전했던 문제들을, 저자는 직설적으로 말하곤 했다. 그게 이 책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저자의 사이가 같은 말이 그리워서 펼쳤다. 아닌 건 아니라고, 나를 아프게 한 사람과 싸워도 된다고, 내 안의 상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좋았던 글이다.

 

신경정신과. 흔히 정신병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질병의 치료를 요하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마음의 문제라고 읽어도 괜찮을 듯하다. 그 마음의 문제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뒤따른다. 저자의 다른 작품보다 일부러 이 책을 먼저 읽어보고 싶어서 펼쳐들었던 이유다. 무조건 들어주기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현실 속에서 적절한 충고를 하고 있을까.

 

내가 읽어본 바로는, 저자는 후자 쪽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현실 속 살아가는 모양에 맞게 충고한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을 처방전처럼 내놓는다. ‘명절의 본질은 ‘화목’이지 ‘만남’이 아니기에 안 내키면 안 가는 것이 상책.‘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하는 말들 중의 하나다. 너희 집에 갔는데 우리 집에는 왜 안가냐고 싸우지 말고, 각자의 집안 경조사에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 단, 상대방에게 의사는 물어볼 수 있되 강요하지는 말라고. 가기 싫다는데 복화술처럼 입에 욕을 달고 몇 시간을 고생하면서 가지 말고, 가기 싫다는 사람에게 당연함 운운하면서 강요하면 안 된다고. 저자의 저 말은 결혼이란 제도 안에서 행해지는 마음의 폭력을 방지하는 처방인지도 모른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의무감으로 행해지는 일들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화가 어려울 때, ‘소귀에 경을 읽어줄 땐 소의 언어로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나만의 언어로 얘기하면 백번 천 번을 얘기해도 상대가 못 알아듣는다. 상대가 소라면 나도 소가 되어 얘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이걸 모를까? 아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화를 내고 분노의 감정을 표출한다.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방식, 몰라서 제대로 인지하는 못하는 응대, 자칫 예의를 벗어난 일이 될까봐 주저하는 일. 그런 일들로 내 안의 감정은 분노를 쌓고, 용서가 어렵게 되고, 화해는 제스처를 하지도 못하게 되면서 마음의 병을 쌓아가는 일을 멈추게 하려고 한다. 마음을 숨기고 아닌 척 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일들을 들추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게 하고, ‘싫으면 하지 마.’ 라고 말하는 듯한 한마디로 쿨한 해석을 내놓는다. 그렇다고 어린애 말장난 같은 소리가 아니다. 적어도 내 안의 감정 쌓임으로 힘들어질, 숨어 있던 마음의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시간과 관계가 아무리 혼자 발버둥 쳐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나 자신과 서로의 한계를 받아들’이라는 저자의 말은 우리 마음이 평화롭게 여행할 수 있는 길임을 안내한다.

 

마음이나 세상이나

시간이 갈수록 꼬이지만

이 모두를 리셋 하는 건

이전의 그와 또 다른 그들의 희생이다. (본문 중에서)

 

읽다보면 특별한 것 없는 처방전 같다. 하지만 시원하게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많은 감정들과 예의들로 상처받고 힘들어한다. 감정의 문제, 곧 마음의 문제가 많은 정신적인 아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니까 저자가 단 한 문장, 혹은 몇 줄의 문장으로 상담을 이어가고 있는 듯한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음이 주관하는 일, 그 안에 생기는 상처, 애도, 상처를 만드는 가족, 사회, 연애, 행복을 향하고자 하는 성공, 생존의 방식을 둘러싼 문제까지 여덟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은 맨 처음 제시했던 마음의 문제로 돌아간다. 마음이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총체인 것이다. 헛된 망상 같은 것에 기대기에는 우리 사는 세상이 바로 현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그 현실 속에서 부딪히면서 쌓여가는 마음의 병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다면 더 없는 명의겠지만, 적어도 그게 아니라면 그 마음의 병을 조금은 덜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내 안의 마음이, 상처나 아픔이 가벼워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방법이 하나의 문장이라는 게 좀 의아할 수도 있지만, 읽고 보니 충분하다. 그 한 문장에 모든 마음의 문제가 담겨 있고, 뜻밖의 해결이 함께 있다.

 

얼마 전에 진맥을 받을 적이 있다. 한약을 잘 먹지 않으니 진맥 받을 일도 없지만, 나는 진맥 받는 일 자체를 싫어한다. 진맥을 받다 보면 상대가 한의사가 아니라 점쟁이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육체적인 병도 짚어내지만, 결국 마음의 병을 먼저 알아채기 때문이다. 그런 알아챔이 싫어서 진맥 받는 것도 싫어하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다른 이를 따라가서 진맥을 받고 보니, 한의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겠더라. 그 사람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진맥이 끝나고 종이에 뭔가를 한참 적더니, 나에게는 한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대신 마음의 분노를 먼저 뿜어내야 한다고 했다. 마음 속 분노를 터트려야 내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했다. 시기상으로 보면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내 안에 어떤 마음과 감정의 상처가 내재하고 있었는지를 내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다 같은 말이었다. 저자의 이 책을 읽고 보니 더 잘 알겠더라. 사람이 늙고 병들어 육신의 아픔을 가져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마음이 병들어 정신적인 아픔을 가져오는 것은 풀어내야할 숙제 같은 것이다. 그 숙제만 풀면 병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게 쉽지 않으니 그 병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런 책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겠지.

 

지금 부모와 화해한다 해서

과거에 받았던 상처가 치유되진 않는다.

상처를 준 사람들은 과거의 그 사람들이지

늙고 기운 없는 현재 이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가 용서라 착각하며 행하는 대부분은 애도다. (본문 중에서)

 

가르치려만 드는 책보다 이런 글이 좋다. 예의상 하지 못했던 표현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참아야 했던 일들이, 감정을 숨기느라 곪는 줄도 모르고 억눌렀던 마음을, 다 터트려도 될 것만 같다. 변해가는 시대에 변해가는 감정이 맞는 거다. 이런 처방전을 오래 전 사람들이 봤다면 예의에 어긋나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 변해가는 치료의 모습도 인정하자. 이게 정답이 아니라, 이런 방법도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돌직구를 던지는 듯한 저자의 말투가 참 개운한 책이다.

 

이모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집안 일로 몇 가지 처리해야 할 일 때문에 일주일 정도 시간을 잡아놨는데 차질이 생겼다. 여기 저기 전화해서 몇 가지를 미루고 다시 날짜를 잡았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남겨진 사람은 현실을 산다. 죽어간다는데, 곧 숨이 끊어질 거라는데, 나는 이모부의 죽음에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이모부는 좋은 사람이 아니므로. 다만, 그 죽음에 슬퍼하며 손을 놓지 못하는 그 가족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모에게는 딸만 셋이다. 이모부는 이모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면서, 아들을 낳아오겠다며 밖으로 돌았다. 자식들에게 어떤 아버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모에게 좋은 남편은 아이었던 듯하다. 딸들이 자라고 이모에게 잘하면서 이모 마음이 좀 편해지나 했더니, 몇 년 전 이모부는 병에 걸렸다. 한 달 병원비가 천만 원이 넘게 들고, 퇴원 후에도 계속 큰 금액의 병원비를 지불하고 평소 하루 세끼를 모두 외식으로만 지낸다는 말을 들었다. 그 모든 돈을 딸들이 다 대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그렇게 무시하던 딸들 덕분에 목숨 유지한다는 말을 했다. 나는 지금 이모 마음이 궁금했다. 이모부와 살면서 좋았던 것도 있겠지만,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이모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사람을 보내는 마음이 어떨지... 이런 마음을 나도 곧 확인하게 될지 모르겠어서 더 무거운 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따뜻하게 다정하게, 가까이
하명희 지음, 김효정(밤삼킨별) 사진 / 시공사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가끔 꽂히는 드라마 한두 편을 보는 정도라 잘 알지 못했다. 그 당시 입소문으로 자꾸 퍼지던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를 중간부터 보게 되었는데, 이 드라마 은근 매력적이더라. 누구를 욕하고 누구 편을 들어줘야 하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눈에 뻔히 보이는 상황은 있는데, 각 캐릭터들에게 한 가지 마음만 보낼 수 없던 거다. '이럴 수도 있을까?' 싶었다가, '그래, 이 상황에서 이런 마음도 있을 수 있어.' 하는 온갖 감정이 왔다 갔다 했다. 마음속에 자리한 그 많은 말이 한마디로 쉽게 나오지 않았었다. '이거 뭐지?' 하는 어지러운 기분. 그 이후로 방영된 <상류사회>는 보지 못했지만, 대신 하명희의 글을 만났다.

 

드라마와 얼마나 다를까, 혹은 얼마나 비슷할까. 몰랐다면 백지에서 시작했을 텐데, 이미 저자의 드라마를 본 터라 비교 아닌 비교를 하면서 읽게 됐다. 드라마에서 직설적으로 표현되는 대사는 어쩌면 저자의 성격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에세이 <따뜻하게 다정하게, 가까이>를 읽다가, 드라마 <닥터스>에서 홍지홍(김래원) 선생이 유혜정(박신혜)에게 직선으로 드러내는 마음을 보는 듯한 시원함을 발견하곤 했다. 역시, 사이다 같은 기분은 잠시 잠깐 한 편의 드라마에서만 나온 건 아니었어, 하는 안도와 계속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동시에 심어준다.

 

 

저자는 살아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며,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일 중 하나가 에세이를 출간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저자의 다음 드라마는 뭐가 될까 궁금했던 정도로 이름을 기억했다. 저자의 드라마나 소설을 봤어도,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어도, 내가 이 책을 읽게 되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휘리릭 넘기던 페이지의 한 구절에서 시선이 멈췄다.

 

그 사람의 사정은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으면 정확히 모른다. 인간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며 모든 것에 한계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범위의 삶과 다른 삶에 대해선 공부해야 알 수 있다.

상대방을 위한다고 충고하는 것보단 밥 한 끼 사주는 편이 낫다. (81페이지)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으면 정확히 모르는 것들. 때로 상대방에 대해 다 안다고 자만하는 것들. 우리는 같지 않다. 비슷하게 보이고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완전히 같을 수가 없는 거다.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거, 아닌가.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어쩌면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 못 한 채로 보고 있는데, 마치 다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경험해본 바, 말이 많아지면 실수를 하더라. 사람을 상처 내는 것도 말로 시작한다. 마치 그 사람에 대해 경험하지 않은 부분까지 다 아는 것처럼 말이 나올 때는 부담스럽고 불편해진다.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그냥, 아는 만큼만 보고,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면 안 되는 건가. 내가 아는 만큼만 이해하고, 다가가면 정말 안 되는 건가. 다 알면 좋겠지만 굳이 그게 아니어도 괜찮잖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적당한 거리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아니었나? 살아온 시간과 과정이 다른데,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 안에 자신만의 상처가 있다. 개인의 상처는 객관적인 게 아니다. 얼굴만 봐서는 그 사람이 뭐로 아파하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어려운 거다. 어려운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선 우선 자신이 어떤 말을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말조심만 해도 인간관계 절반은 성공이다. (62페이지)

 

저 부분을 한참 들여다보다, 책의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읽었다. 분량도 짧아서 읽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새삼스러운 말도 없었다. 그저, 저자의 말투가 이렇구나, 하는 정도. 그런데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하고자 하는 말의 방향을 가만히 살펴보니, 타인을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하고 있는 거였다.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짜증 냈던 거, 내가 알 수 없어서 부담스럽고 귀찮았던 것들을 꺼내며 말하는 듯했다. 차마 말하지 않은 것들을 대신 들려주는 기분. 대부분 내가 경험했던 순간들, 감정들이었기에 조금만 더 들어보자, 하는 의미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겼다. 무조건 착하고 옳은 것만을 강요하는 위로가 아니라, 아닌 건 아니 거라고 말하는 그 고요한 독설이 좋았다. 독설이라고 하기에 민망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너무 착한 사람 흉내만 내면서 어설픈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니어서 좋았다는 거다.

 

삶의 특별함은 시간이 흐른 후, 혹은 어느 날의 느낌표로 알게 되는 듯하다. 불행한 삶이 괴롭고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는 것도 시선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행복하기만 하면 그 외의 불행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항상 옳은 선택이라고만 믿는다면 잘못된 길을 알지 못할 것이기에. 일상에서 치고받는 순간들이 가져오는 것이 꼭 나쁘게만 작용하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런 시선과 감정의 다양성은 인간관계로 이어져 삶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과 이어져 나아가는 중에도 우리가 미처 짚어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표현하는 많은 것,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가리는 이중성, 사랑을 둘러싼 사람의 마음.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고 다 알 수 있는 게 없어서, 때로 그 순간이 죽을 것처럼 아프지만 또 그렇게 받아들이며 흘러간다. 그렇게 겪으며 무심코 알게 되는 것들. 사람이, 사랑이, 그 순간의 아픔을 상쇄시켜주기도 하고...

 

인류가 시작되면서, 사랑이 만들어지면서, 사랑도 함께 시작됐다. 사람에게 사랑은 유전자에 깊숙이 박힌 본능이다. 더 많이 사랑한다는 건 사랑하는 능력을 더 많이 가졌다는 의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능력은 굉장히 좋은 성품을 만든다. 좋은 성품은 다른 사람들도 기쁘게 하고, 자신도 기쁘게 한다. 사랑을 유지하는 건 사랑에 빠지는 거보다 훨씬 더 어렵다.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거다. (109페이지)

 

인생 뭐 별거 없다고 생각하지만, 살면서 겪게 되는 감정들이 특별해지고 문득 알게 되는 것들이 쌓여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할 때, '별것 있는' 인생이 될 것만 같다. 저자가 드라마와 글을 통해서,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일을 하게 되는 것에서 그걸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살아보면서 알 수 있는 일이 그 순간 하나둘씩 늘어갈 때, 자신에게로 향하는 별것 있는 순간들이 하나둘씩 쌓여간다는 것을, 저자의 짧은 글에 함축된 말을, 이렇게 듣는다.

 

 

드라마 속의 대사가 저자의 에세이에 그대로 묻어 있다. 독설 같지만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직선으로 향하는 말들이 듣기 좋다. 그래서 이번 드라마 <닥터스>를 더 집중해서 보고 싶어진다. 4회에선가, 진서우(이성경)가 부원장 김태호(장현성)에게 유혜정을 디스하면서 했던 말에 김태호는 '말씀드릴 수 없는 사생활은 말할 수 있는 사생활보다 더 인신공격'이라고 했다. 그게 얼마나 사람을 상처 입히고, 비열한 공격인지 전한다. 유혜정과 진서우 사이에 필요한 건 페어플레이다. 의사로, 인간으로 살아가는 올바른 태도. 너무 무겁지 않게 흐르는 이 분위기가 좋아서 4회까지 본방사수했다. 앞으로 이 드라마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계속 보게 될 듯하다. 의학드라마이지만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더 눈에 들어오고, 이미 시작된 유혜정과 홍지홍의 로맨스가 더 '심쿵'하게 하지만, 의학에 관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하명희 특유의 그 인간적인 이야기가 돋보여도 괜찮을 듯하다.

 

 

그나저나, 나는 배우가 나이 들어가는 게 참 보기 좋더라. 김래원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을 봐도 비슷하다. <옥탑방 고양이>가 인기였을 때도 김래원이 좋다는 생각 못했는데, 이번 드라마에서는 확실히 김래원은 나이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도 그는 그때보다 나이가 더 들었겠지만, 이번 드라마에서 나이 마흔으로 등장하는 설정이 괜히 기분 좋다. 인간미 넘치고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 보여줬으면 좋겠다. 현실에서 경험한 병원이나 의사를 생각하면 홍지홍 쌤 캐릭터는 판타지에 가깝지만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듯해 유감이지만)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 건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만나고 싶은, 인간적이고 마음 쏟아 붓는 의사로 남길 바라면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후를 견디는 법 현대시 시인선 119
오명선 지음 / 한국문연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누군가가 나랑 어울릴 것 같다면서 작은 소설을 한 권 보내줬다. 오명선의 시집과 같은 제목의 소설이었다. 바닥까지 내려간 인생을 겪는 남자와 여자가, 우연히 같이 머물게 된 공간에서 만들어가는 이야기였다. 결말은 두 사람 모두 바닥치고 일어서기로 해피엔딩. 꼭 두 사람이 연결되지 않아도 좋은 마무리였을 거다. 서로 잡은 손이 끊어지고 각자의 길을 가더라도, 아닌 걸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자꾸 다른 쪽을 보게 되는 시선이 좋았다. 그동안 자기가 봐왔던 게 버려야 할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필요했던 것. 두 사람 모두에게.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던 그때. 그 소설의 3분의 1쯤 읽었을 때 궁금해지던 게, 각 챕터의 소제목으로 쓰인 글귀였다. 어떤 마음을 드러내는 한 줄인 것 같기도 했고, 하고 싶은 많은 말을 단 한 문장으로 축약한 것 같기도 했다. 소설을 읽다 말고 뒷부분 작가의 말을 펼치고 나서 알았다. 오명선의 시를 소설 각 장의 제목으로 인용한 것. 그때부터, 그 소설보다 이 시집이 더 궁금해진 거다. 쓸데없는 호기심이 생긴 건지 어떤 건지. 시 한 편이 아니라 시인이 이 시집에 담아놓은 시들을 보고 싶어져 그 소설을 읽다 말고 이 시집을 주문했다.

 

막상 이 시집을 펼쳐 드니, 내가 예상했던 마음과 비슷하기도 했고, 의외의 마음을 들을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나는 시도 잘 모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재주도 없는데, 한 사람의 일기 같은 마음이 시로 들려오는 듯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내 눈에 들어온 시 구절의 쓸쓸함이 그대로 나에게까지 묻어오는 듯했다. 시에서 드러나는 그 마음은 대개 아파지는 것들인데, 그 아픔을 어떻게 공감해야 할지 몰라서, 직접 그 상황이 아니고서야 다 알 수 없어서 뭐라 말하면 누가 될까 싶은 위로 같은 마음이었다.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생긴 슬픔과 고통이 묻어나는 이 구절 같은...

 

오른쪽 눈의 실명

20년 무탈한 내 기록들의 항의에도 나의 내일은 부적합 판정

당신은 우리의 입맛에 맞지 않습니다

다섯 개 보험회사가 단번에 나를 뱉어버렸다

남은 왼쪽 눈마저 캄캄한 벼랑으로 굴렀다

(「당신은 약관에 맞지 않습니다」 중에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채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일 텐데, 그 때문에 실수하며 아이를 다치게 한 것도 슬픔이 되고, 보험회사에마저 거부당한 육체가 아무 쓸모 없는 것처럼 여겨졌던 건 아닐까. 아,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나... 한순간 절망으로 추락한 것처럼 보여 순간 앞이 캄캄해졌다.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못 보고 못 느끼고 살아가는 게 많을 텐데, 한쪽 눈으로라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그대로 꺾어버리는 세상의 태도에 암울해졌다. 전에 어디선가 들은 얘기로는 장기 기증한 사람은 보험 가입이 안 된다던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좋은 일을 하고도 안위를 위해 접근한 보험마저 거부당하는 게 현실이었는데, 시인의 말을 듣고 보니 실명으로도 거부당하는 게 똑같은 것 같아서,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지는 기분까지 끌고 온다. 내일을 준비하겠다는 것조차, 남아있는, 아직 살아있는 육체에 힘을 실어주려는 것도 안 된다고 하니, 무슨 기대로 오늘을 버틸 수 있을까...

 

어느 정도 살아왔고, 또 살아온 만큼 비슷하게 남은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아직 세상을 다 안다고는 못 하지만 또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어떤 시기. 사람의 평균 수명을 놓고 볼 때 그 절반쯤 살아왔다고 생각되는 때의 감정과 생각, 경험들을 풀어놓는다. 언젠가부터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보다 누군가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되는 일이 많아짐을 느끼곤 했는데, 시인은 그 장면을 이렇게 말한다.

 

금방 떠난 자리에

또 다른 촉촉한 이별들이 와서 앉았다가

서둘러 근조화환의 환한 배웅을 받으며

문을 밀고 나간다

 

잠깐 다녀가는 이별들은 손수건을 준비하지 않는다

(「짧은 조문」 중에서)

 

바쁜 일정 처리하듯 누군가를 애도하는 풍경이 그려진다. 그 안에 나도 있다. 그런 적이 있다. 가서 얼굴은 비쳐야겠는데 그 자리는 불편하고, 시간은 많지 않고, 그래도 안 갈 수는 없고... 그래서 인사하고 얼른 일어나는 자리로 만들어버린 기억. 그나마 사람들이 많으면 상주가 바쁠 것 같다는 핑계라도 생겨서 다행이라는 마음마저 있었는데, 이 시 구절을 보니 이별의 의식을 너무 가볍게만 생각한 듯해서 미안해진다. 손수건까지는 준비하지 않더라도, 떠난 사람에게 전하는 안녕과 남은 사람에게 전하는 진심이 느껴질 수 있는 마음(그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으로 그곳을 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우리도 언젠가 그 이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누군가 나에게 진정으로 말하는 안녕의 인사를 받고 싶지 않을 텐가...

 

여러 시가 실려 있지만, 내가 이 시집을 펼치고자 했던 이유는 바로 이 시 때문이다.

 

오후를 견디는 법

 

몇 겹으로 접혀

낡은 소파에 누웠다

 

며칠 현관문이 ‘외출 중’을 붙잡고 서 있는 동안

나는 세상에서 방전되었다

 

익숙한 풍경이 커튼처럼 걸리고

빛이 차단된 몸에서 수많은 눈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화창한 오후는 그림자를 둘둘 담요처럼 감는다

 

뱉지 못한 문장 뒤틀린 서술들

나는 오래전 어둠에 길들여진 어긋난 문법,

나를 필사하는 오후의 손가락이 한 뼘 길어졌다 흐린 지문으로 나를 한 술 떠먹는다

 

적막의 두께로

낡은 하루가 완성되었다

 

가끔 손을 넣어 가라앉은 나를 휘저어 본다

(「오후를 견디는 법」)

 

괜히 쓸쓸해지는 기분에 이 말을 하는 누군가의 표정도 그려보고 그랬다. 하루를 보내며 무심코 떠올리는 어떤 날의 오후가 아니라, 견디듯 버티는 오후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있을까 싶은 마음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부유하는 먼지가 보이는 장면을 그리는 나른함이 오후의 풍경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먼지가 아닌 마음이 부유하는 상태를 보는 때가 많아졌다. 마음도, 시간도, 생각도, 그저 떠돌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붙잡아서 어디에 고정하고 싶은데 안 될 때, 결국 그 끝에서 마주하는 쓸쓸함이 보기 싫어지는. 어느 구절을 펼쳐도 세상 살아가는 모양새가 씁쓸해지게 말하는 시인의 솔직함에, 고요히 내려앉을 밤을 기다리고 있다. 햇빛이 사라지고 어두워지면 부유하는 마음도 보이지 않겠지 싶어서...

 

 

 


댓글(5)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쉰P 2016-06-1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저에게 좋아요 누르시지 않으셨나요? ㅋ 전 은근 좋아요 누르신 분들을 놓치지 않는 덕후력이 있습니다 ㅋ 처음 뵈요 ㅎ

2016-06-19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9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6-06-24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근차근 글을 읽어 보니, `오후를 견디는 법`이란 시가 무척 와 닿네요. 전 `고시원에서 견디는 법`을 연구 중이에요. ㅎ 사람들과 관계도 없고, 홀로 책상에 앉아 책을 보며 차단된 채 있으니 견디긴 견디는 데 이것만큼 최악이 없네요. ㅎ 대화라는 것이 참 중요하구나, 사람이 참 중요하구나 하고 이곳에 있으면서 생각을 많이 해요.

`견디듯 버티는 오후`란 표현 완전 제 심장을 찌르네요. 담담하면서, 촉촉한 문장이 너무 좋아요. 비도 오는 금욜이라서 그런 걸까요? ㅎ 더욱 감성적으로 다가 오네요. ㅎ
즐건 금욜 되세요. ㅎ

2016-06-25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누나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남자, 여자. 이해와 공감 사이에서... 『내 누나』

 

 

누나 다섯을 가진 내 동생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자매들을 ‘언니’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남자들의 세계(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언니라는 호칭이 점점 사라지더니 언젠가부터 누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제법 잘 어울려 놀았는데, 지금은 서로에게 소원하다. 떨어져 살고 있기도 하고, 자주 통화하지 않는 탓인지 가끔 어색하기도 하다. 서로에게 볼일이 없으면 대화를 하지 않는, 남동생과 나는 딱 그런 사이다. 거기에다, 이 녀석과 얘기하다 보면, 동생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남자 사람과 얘기하는 것만 같아서 답답할 때가 많다. 특히 요즘에 집안일로 계속 통화하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내가 이 녀석과 대화하는 시간은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오빠 없는 여자가 ‘나도 오빠가 있었으면’ 하는 로망을 키우듯, 남자도 누나의 로망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키운 판타지로 존재하는 오빠와 누나가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오빠와 누나는 피우지 못한 로망으로 접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래 알고 지내는 친구 녀석은 자기 누나를 보면서 ‘여자는 집에서 이런 모습으로 지낼 거야.’라는 환상이 사라졌다고 했다. 다른 녀석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단번에 기대를 깨주려고 필사적이었단다. ‘누나'에게 키우는 로망 따위 버린 지 오래라고 했다. 막상 누나를 가진 이들은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도 오빠를 가진 친구를 엄청나게 부러워했으니까. 그럴 때마다 친구는 절대 아니라고, 다 환상이라고 했다. 지금은 나도 오빠에 대한 판타지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사실 그런 기대는 사춘기 시절의 달콤한 성장제였던 듯하다.

 

마스다 미리의 『내 누나』는 이런 나의 경험과 많이 닿아 있었다. 나와 남동생, 내 주변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해서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남동생과 누나 사이의 대화가 평범한데, 그 평범함이 또 이상(?)하게 흘러간다. 또 그런 이상함은 익숙하다. 이들의 몇 가지 에피소드로 누나에 대한 환상이 깨짐과 동시에, 여자 남자 사이의 좁혀지지 않은 시선을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정말 가까이하기엔 먼 그대(여자, 남자)란 말인가. 누나와 남동생 사이를 차치하고, 성별의 차이로 보이는 내용이 웃음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만든다.

 

“그러면 뭣 때문에 그렇게 피곤한 건데? 그 여자애랑도 잘 지냈을 것 아냐.”

“표면상으로는 그렇지. 생각해보면 뻔하잖아? 그 자리에서뿐이지. 그런데 그이는 ‘우리 빼고 여자들끼리 둘이 만나도 되겠네.’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더라니까. 그 여자애도 지금쯤 엄청 열 받아 있을 걸? 앗, 이 순간은 그 여자애랑 공감할 수 있을 듯.”

“다행이네...” (23페이지)

누나가 남자친구의 친구 커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들어왔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 남동생은 누나가 왜 그 시간을 피곤해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누나니까, 누나는 원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듣고 있는 듯하다. 남자친구 커플과의 모임에 참석할 수는 있다. 그 시간을 화기애애하게 잘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유감스럽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 가득하다. 여자끼리 따로 만날 수도 있다고?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그 자리가 시댁의 불편한 동서 사이가 만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여인들이 그러했다. 그런 마음인데 여자끼리 따로 만나도 되겠다고 선뜻 말하는 남동생의 말을 이해하기는 어렵잖아.

 

“다녀왔어~ 으~~~ 피곤해. 회사 그만두고 싶다.”

“지금 그만두면 앞으로 어쩌려고.”

“그래서 네가 인기가 없는 거야.”

“뭐가.”

“인기 비결은 결국 하나야.”

“뭔데?”

“공감력. 보라고, 너 같은 스테레오 타입의 남자가 해주는 조언이나 의견은 지겨울 정도로 듣잖아? 나 역시.”

“미안하게 됐네!”

“그런 것보다 그 순간의 공감력.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사랑해’가 아니라 ‘알아, 이해해’일지도.”

“진짜야?” (82~83페이지)

누나와 남동생의 대화는 대부분 이런 거였다. 같은 언어로 얘기하는데 전혀 다른 의미로 대화하는 듯하다. 일이 피곤하다, 그만두고 싶다, 하는 말의 숨은 의미를 봐야 한다. 하기 싫다고 바로 때려치울 수 없는 현실을 말하는 사람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입으로 그 피곤함을 표현하는 순간 따라오는 잠깐의 해갈을 찾는 거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런데 남동생의 대꾸에 인기 없는 이유까지 들먹이게 된다. 남동생은 그 '공감력'이란 결론에 무슨 별나라 구경하듯 신기해한다. 진짜야? 더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이상의 해석은 나에게도 무리다.

 

마스다 미리가 얘기하는 엄마나 다른 여자에 관한 것은 들어봤는데, 누나라 부르는 남자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세상의 모든 누나에게 존재하는 남동생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넓게 남자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아무리 읽어봐도, 그동안 무수히 들어오고 겪어왔던 여자와 남자의 생각과 태도의 차이를 거듭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게 언짢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남동생은, 동생이면서 남자다. 형제자매 사이의 다툼이나 생각, 살아가는 모양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내 누나』의 에피소드에서 그 차이와 함께 여자 남자의 차이도 같이 볼 수 있다는 거다. 그 안에서 내 남동생을 봤다.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짜증내는 내 모습을 봤다. 그래서다. 내가 이들의 이야기에 한참 끄덕였던 이유. 나는 이들의 이야기처럼 남동생과 둘이 살아본 적도 없고 친근하다고 느낄 정도로 가깝게 지내지도 않지만 공감했다. 서로 다른 별에서 사는 것처럼 대화하고,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어도, ‘내 누나’의 말과 행동을 차분한 눈으로 다시 보는 그녀의 남동생 모습이 애틋했다. 그래서 남매인가 싶으면서, 내 남동생과 나 사이에서도 그런 애틋함을 찾을 수 있으려나 싶은 궁금증과 기대가 남는다.

 

마스다 미리 작품의 매력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일상의 에피소드라는 점이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남동생의 등장은 색다른 맛을 더해준다. 얼마 전 다녀간 남동생과의 대화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이 녀석과 아주 후련한 대화 한 번 해보고 싶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유진은 악인인가?

읽는 내내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해 곱씹어보면서 생각했다. 살인은 범죄이자 악행이지만, 그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오랜 시간 자리하고 있던 감정들을 보면서, 어느 정도를 악인이라 불러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건 며칠 전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 때문이기도 하다. 엄마는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나에게 '냉정하다'고 말했다. 엄마의 입에서 나온 '냉정'이란 단어는 독하다는 말과 동의어다. 내가? 다른 사람들도 모른 척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엄마의 말에 '내가 정말 냉정한 사람이면 이 정도도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에 한마디 더 했다. 냉정해야 할 대상 앞에서는 한없이 냉정한 게 맞는 거라고. 그날, 날이 새도록 생각했다. 나는 정말 엄마에게서 냉정하다는 말을 들을 인간인가, 하고. 결론은, 그날 내가 엄마에게 했던 말만 반복할 수 있다는 거였다. 냉정해야 할 대상 앞에서 나는 한없이 냉정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그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선하고 악한 것으로도 구분할 수도 없다. 내 안에서 자리한 분노와 미움의 시발점을 찾아가야만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그 설명에서조차도 한마디로 결론 내릴 수 없을 일. 한유진의 행동을 보며 그 시작점을 따라가다가, 내가 그가 악인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게 되었던 기분과 비슷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려져 있던 일, 감정이 타인에 의해 조종되고 판단되어 살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상하게 그의 분노와 악행에 동조하고 있었다. 이 녀석, 절대 열어서는 안 될 것처럼 꾹꾹 눌러 담고 있던 것이 폭발하니, 이제야 숨 쉬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악인은 만들어지는 것인가?

 

비로소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 스스로 부른 재앙, 발작전구증세였다. 운명은 제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건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불시에 형을 집행하듯, 운명이 내게 자객을 보낸 것이었다. 그것도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139페이지)

 

한밤중의 피 냄새. 유진이 마주한 장면은 거실에서 죽은 어머니와 자기 몸에 말라붙어있는 피의 흔적들이다. 2시간 반 동안의 기억이 없는 그는 어머니 죽음의 원인을 바로 알아채지 못한다. 어머니는 왜 죽었나, 누가 죽였나. 그의 기억 퍼즐이 하나씩 꿰어 맞춰지면서 시간을 역주행한다. 어머니의 죽음 시점에서 과거로 흘러간다. 그의 악의 시발점이 시작되었던 그때로.

 

유진에게 내재한 악이 무엇이기에 그런 인간이 되었나. 어머니 노트 속의 기록이 진짜일까. 오래전 기억들을 되짚는 그가 말하는 게 100% 진실일까. 유진은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가 가진 모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것뿐이다. 특히 분노나 미움 같은 것을 더 드러내지 못했던 듯하다. 흘러가는 이야기로 추측해보자면, 유진은 터트려야 할 감정을 제때 표현하지 못한 채로 사채 이자 불어나듯이 폭발지점의 압력이 점점 커졌을 것이다. 그렇게 터져 나온 게, 두려움을 보며 희열을 느끼거나 그 짜릿함으로 자신을 통제할 약을 대신하는 거였다. 이상하게 발작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면 맡아지는 냄새. 물비린내나 피비린내 같은 것이 맡아지는 방향으로 킁킁거리며 발을 뗀다. 누가 부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동이다. 한밤중의 달리기, 그 길 끝에서 두려움의 포식자가 되는 쾌감. 참지 않아도 되는 분노의 시간과 은근하게 내려다보는 듯한 지배자 같은 시선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 건 아니었을까.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준다면 그보다 더한 쾌감이 없었다. 타인이 느끼는 두려움이 그를 숨 쉬게 했다. 그의 안에서 꾸물거리던 무언가가 이런 황홀감으로 둔갑하여 모습을 드러낸다.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처럼 여겨지는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다. 답답한 방안의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고 숨을 들이마시는 느낌. 방법이 잘못되었지만, 그가 찾아낸 방법에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다. 오랜 시간 짓눌려온 그가 찾은, 그만의 생존방식이었다.

 

그날 밤, 오뎅과 발맞춰 걷기 시작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해독의 실마리를 찾았다. 더하여 내가 무엇에 끌리는가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겁먹은 것에게 끌렸다. (188페이지)

 

내 몸은 소리를 죽이기 시작했다. 숨 쉬듯 욱신대던 뒤통수가 평온을 되찾았다. 숨소리는 목 밑으로 잦아들고, 갈비뼈 안에선 심장이 느리게 뛰었다. 배 속에서 공처럼 구르던 긴장이 사라졌다. 오감이 날을 세웠다. 몇 미터 거리가 있는데도, 겁먹은 것의 축축하고 거친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세상이 엎드리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들이 길을 열고 대기하는 느낌이었다. (283페이지)

 

유진에게는 이모가 처방한 약이 아니라, 이모의 진단에 한없이 동조하는 어머니의 의견이 아니라,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 날'의 일을 드러내고 얘기하는 것, 강요된 선택이 아니라 한 번만이라도 그의 선택을 허용하는 것들이 필요했던 거라고. 악을 이야기하고, 그런 악을 행하는 유진이 악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알게 된다. 살인을 저지르고, 자기의 안위(어쩌면 생존까지도)를 위해 해서는 안 될 일까지 하게 되는 게 악인이라면, 유진을 악인이라 불러야 한다면, 악인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의심과 오해로 탑을 쌓아 가두면 악인이 될 거라는 걸. 우리 본성 어딘가에 존재할 그 악의 모습이 이렇게 드러나는 게 끔찍하지만, 유진의 이야기로 나는 한 번 더 내 안에 있을 그 본성을 생각하게 됐다. 그게 단순한 의심이든 오해든 명확해진 분노의 원인이든,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는 일이 분명 있었고, 살인이 범죄만 아니라면 저지르지는 않았을까 싶은 가정도 떠올려 본 적이 있다. 악은 유진처럼 특정한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 내가 다 발견하지 못한 내 안에 숨어있는 건지도 모른다. 단지 수면 위로,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던 것뿐이다. 끔찍하게도 말이다.

 

나를 불편하게 하고 거슬리는 일(사람)을 눈앞에서 제거하는 일. 저자는, 살인을 그 문제 해결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말로 대신했다. 살인이 문제 해결의 방법이라면, 그럴 수 있다. 말이 되지 않을 것도 없다. 그 후에 따르는 도덕적인 문제, '말이 되는 그림을 그리는 게 도덕'이라고 할지라도, 누가 봐도 유죄인 그의 살인이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도 분명한 일이다. 유진의 이야기를 통해 내 안의 악의 존재를 확인함과 동시에 악인을 결정짓는 그 지점을 보게 한다. 그가 자라온 환경과 진실은 그의 살인을 이해하는데 설명이 될 뿐이지 무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 마지막까지 나를 붙잡아줄 이성과 우리가 정해놓은 규칙 안에서 지켜야 할 도덕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