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 신야, 여행의 순간들
후지와라 신야 글 사진,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여행자는 자신이 머물던 장소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 있다. 새로운 경험을 위해 떠나기도 하고, 여행의 삶이 자신의 옷에 더 잘 맞아 떠나는 이도 있다. 치기어린 행동이던지, 어쩔 수 없이 떠나던지, 여행은 감정의 변화와 함께 시작된다.
 
  막상 떠나보면, 생각과 다른 체험을 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편안한 휴식을 위해 떠났는데,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기도 하고, 죽음과 전쟁같은 긴장감 넘치는 일과 대면하기도 한다. 관광이 아닌, 정처없이 떠나는 여행에는 그만큼 새로운 감정들이 마음에 들여찰 일이 가득하다.
 
  날 것의 경험을 담은 책이다. 오랜 시간 많은 나라를 떠돌아 다닌, 저자가 잘 다듬어진 경험이 아닌, 여행기라고 하기에 뭔가 부족하지만, 감성이 살아 넘치는 작은 에피소드를 모은 책이다. 월간지에 기고한 글이라서, 5페이지정도의 짧은 사진과 에피소드의 장소를 떠올리게 하는 사진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 나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끌림』과 함께 읽은 책이기 때문일까. 여행을 하고 싶은 욕망보다, 여행자가 느끼는 다양한 감성과 독특한 체험이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미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음식점에서 빵을 팔던 멕시코 부부와의 만남에서 생긴 이야기이다. 굶주림에 빵을 사고 싶은데, 냉정하게 NO라고 거절당하자, 운전을 하고 나왔던 저자는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생각에, 차를 돌려, 음식점 문을 발로 차며 "차별하는 놈은 차별받는 놈보다 못하다는 것을 명심해!"라고 외친다. 노인은 서글픈 표정으로, "용서해줘요, 젊은이... 아,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 내가 사정을 자세히 설명해줬어야 하는 건데. 이봐, 코이. 이리 와서 설명해줘."라고 말한다. 코이가 부끄러워하듯이 얼굴을 붉히며, 도넛을 주지 못한 이유는 어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중한 사과를 하고 한가득 채워준 도넛을 가슴에 안은 저자에게 코이는 따스한 스프를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며 건넨다. 할 말이 없던 저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코이의 얼굴 그저 바라보며, "오늘 저녁은 내 인생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행복한 일, 아니 사건일 거에요."라고 말하고, 코이는 "그럼 난 하루 지난 도넛을 준비하고 손님을 또 기다려야겠군요."라고 답한다.
 
  인종차별을 수없이 겪었던 저자의 분노도, 오해로 어긋날 뻔했던 코이와의 만남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디에서건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공간에서 오래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이해할 수 없기에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과 이해할 수 없으니 빨리 포기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아졌다.
 
  똑같은 사건을 겪더라도 사건을 바라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꽃으로 물고기를 낚은 이야기, 힌두교만이 있는 반음양인까지 차별의 틀 안에서 모두 포용하는 세상 등, 세계는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지금, 이 곳에서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헤라자드처럼, 이 작가의 이야기는 그 다음이 늘 궁굼해진다. 전작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과 그가 걸었던 여행지를 다른 시선으로 걷고 싶다는 생각이 책을 읽고나면 생긴다. 같은 공간을 같은 방식으로 여행하고 싶지 않다. 그의 여행기는 읽을수록, 여행지에 대한 동경보다는 여행자의 내면과 더욱 대화하고 싶어진다. 다음 여행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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