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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평점 :
# 여자의 삶에 친화적이고, 호의적인 저자가 쓴 여성 인물 이야기.
시대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의식이 먼저 변하고, 제도와 사회통념은 그 다음에 많은 갈등과 사건들을 거친 후 변화한다. 오랜 시간 남성우위의 문화에 젖어있기에, 남녀평등이 바른 방향이라는 걸 알지만, 현실에서는 동등한 조건에서 남성의 삶이 더 가산점을 받는 부분이 있고, 남자이기에, 기득권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많은 짐을 져야 할 때도 있다. 성은 남녀로 나뉘지만, 현실에서는 부와 건강, 재능과 노력의 차이로 다양하게 갈리기 때문에, 남녀의 우월함을 놓고 다투기보다 남녀의 역할과 방향설정에 대해 논의하는 걸 좋아한다.
역사의 영역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기는 쉽지 않다. 문자가 기록된 이후로 많은 남성들이 역사의 필자로 참여했고, 여성에게는 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기록되는 행운을 지닌 여자는 주로 극단의 역할을 맡았던 이라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하는 이유이다. 사회의 제도의 틀을 지나치게 순응하거나, 항거하여 벗어난 이만이 숭배와 매도의 대상으로 기록될 뿐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자의 삶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어머니에 대해서 강한 애정의 손길이 가득했다 생각한다. 남성을 낳아준 이가 어머니이기 때문일까? 충효를 강조했던 사상의 영향도 있다 생각한다.
역사인물만 다루었다든지, 예술가만 다루었다든지, 특정 장르의 여성 인물이 주인공인 책은 만나보았지만, 시대와 생존의 유무를 뛰어넘어 다양한 여성들을 다룬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역사속의 여성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영화, 소설에서의 여성도 작가의 눈길에 끈 여성은 에세이의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작가의 편향적인 시선과 여성 친화의 시선이 담기었지만, 예찬의 일색에서는 벗어난, 지나치게 편파적이여서, 공정함을 잃지 않은 에세이가 가득한 책이다. 편향적인 시선을 통해, 한 시대를 살았던 여성의 삶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도 함께 읽을 수 있다.
# 인물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녀들의 삶을 재조명하다.
비타협적, 혁명적, 국제주의적 사회주의자이면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유를 존중했던 로자 룩셈부르크를 시작해서, 강금실 변호사까지 34명의 여성이 책에 등장한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여성들을 저자의 글을 통해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권력의 반대파에게는 냉혹했지만, 민생과 권력의 기반을 다지는데는 능숙했던, 당의 전성기의 초석을 놓았던 무 측천과 펜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관점에 따라 역사상 최초의 소설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겐지 이야기의 저자 무라사키 시키부와 천일야화의 주인공 세헤라자데까지,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여성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여성은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계몽의 시선이 없는 점이 가장 좋았다. 역사적 이야기의 루머를 통해, 사치를 일삼으며 멍청했던 여인으로 낙인찍힌 마리 앙투아네트의 루머를 벗겨주고, 단두대와 혼란의 시대 폭동으러 변해버린 혁명의 잔혹함을 인식하게 하는 부분이 좋았다. 어떤 도덕적인 선을 정해서 인물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선택과 시대의 상황을 보여주며, 그 인물의 결을 드러나게 하는 이야기의 방식에 끌렸다.
# 동의하고 부정하다 보니, 지나가버리는 시간들.
책을 읽다보면, 그녀들의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가치관과 만나게 된다. 독선적인 마더 테레사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다른 점을 발견하였다. 신의 존재에 헌신하지 않고, 끊없이 회의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향해 투쟁한 그녀를 존경하는 그의 평가에는 동의하였다. 요네하라 마리에 문체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 점에서는 분노의 기운이 솟아났지만, 살아있었다면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충실한 독자라는 점은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하였음을 느꼈다. 진솔한 문체를 좋아하는 나와 상투적인 문체를 싫어하는 저자와의 차이를 통해, 한 인물을 대해 저자와 카페에서 논쟁하는 기분이었다. 서로 다른 시선을 통해, 각자의 현재의 위치를 바라보게 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게 되는 부분이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점이라 생각한다. 독자를 압도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방식에, 상대의 자유를 인정하는 자유주의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저자가 언급하지 못한, 많은 여성들이 있다. 여성 최초의 대통령, 여성 최초의 학장, 여성 최초의 검찰 등 여성 최초라는 말이 뉴스에 등장하지 않을 때, 진정한 남녀평등이 시대가 시작된다는 생각을 했다. 책과 자료조사를 통해,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여성들이 많아졌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서른 네명의 여자들에 대한 생각들이 독자들의 흥미를 끌고, 그 생각이 깊이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자의 생각은 흥미로웠다. 깊이는 앞으로 경험과 지혜가 쌓여갈수록, 조금씩 깊어질 것 같다. 다양한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여성 우월과 남성우월의 시각을 지닌 이가 아니라면,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