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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전설과 마주하다 - 우리 시대 작가 25인의 가상 인터뷰
장영희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 잊혀져 가는 그들을 불러내다. 기억은 사랑이니까.
나흘간 홀로 지냈다. 인터넷도 TV도 없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뉴스와 메여있던 일상들에서 자유롭지 못할까봐 두렵기도 했다. 지내보니, 익숙하지 않는 리듬에 적응되자, 오히려 편해졌다. 문자로 소식을 주고받고, 전화통화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외로운 마음이 많이 따뜻해졌다.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는 건, 그를 더 기억하겠다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인이 된 문학가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문학가들이 나눈 가상의 대화 25편을 읽었다. 말을 건다는 건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은 사랑이니까.
저자들은 문학 작품의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작품을 쓴 작가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편지와 대담 등 대화의 방식도 자유롭다. 만남의 공간도 묘지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다. 문학의 전설들이 왜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라는 기대를 했었다. 두 번, 세 번 읽어보니, '전설'보다 전설에게 말을 거는 '현재를 살아가는 작가'가 바라보는 전설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하게 드러남을 알게 되었다. 가상 대화이기에, 현실의 작가가 모든 글을 채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 '전설'과 현실 작가를 겹쳐보다.
거인이 남겨놓은 발자취에서 살아간다고 할까. 지금 글을 쓰는 문학 작가들에 영향을 미친, 소설 속의 등장인물과 작가들이 누군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학의 전설이 남긴 실마리를 붙잡고 동굴속으로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 탐색하는 작가의 모
습이 보였다. 둘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사람은 명이 다하면 세상을 떠나지만, 작가는 작품이 있기에, 그의 흔적들은 작품으로 남아, 그 작품을 읽는 누군가가 다시 글을 이어나가면서 세상에 영원히 지속된다는 생각을 했다. 책이 수명이 끊기지 않고 오래 살아남는 이유를 확인했다.
눈에 익은 작가인 장영희 선생님이나 고미숙, 유용주 작가들을 통해서는 가상대화의 대상에 대해 더 알 수 있어 좋았고, 임화, 백석, 카프카 등은 익숙하지 않는 작가들이 거장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작가의 삶에 주목했던 작가도 있었고, 작품의 특성에 의미를 주는 작품도 있었다. 백석시인과 카프카는 두 명의 작가들이 다른 시각으로 가상의 대화를 시도해서, 비교하기도, 나라면 어떤 질문을 던질까 고민하게 만들어서 좋았다. 한 작품을 읽더라도 사람마다 강하게 기억되는 부분이 다른 것처럼, 다양한 시각들이 공존한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 진지하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와 가상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가상의 대화를 건다는 건, 독자가 진지하게 작가의 작품과 대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 에 주목할 수도 있고, '작품''에 주목해서 등장인물이나, 작품 자체에 말을 걸 수도 있다. 생존하고 있는 작가는 다음에 어떤 작품으로 이야기를 걸지 기대하는 즐거움이 있고, 전설이 되어 버린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말을 걸고,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다. 끊임없이 소통하며, 그를 기억하는 일은, 그의 작품을 읽고 생각을 전개하는 일이란 생각을 했다.
말을 걸어보고 싶은 한국 문학의 거정들이 있다. 이청준, 이문구, 최명희 등 잊고 살았던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을 떠올릴 수 있었던 점이 가장 좋았다. 던지는 질문은 늘 우문이지만, 질문을 던지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나만의 현답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자연과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좋고, 비와 눈이 많이 내려 밖을 나가지 힘든 시간에는 잔잔한 음악과 함께, 책장에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있는 작가들과 대화를 나눠보기로 결심했다. 귀기울여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다시 맑은 햇살이 다가올거라 믿는다.